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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성의 책읽기『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10-12 09:52:45
  • 조회수 : 1267

The Remains of the Day (1989) |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지은이) | 송은경 (옮긴이) | 민음사


효도, 사랑, 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사람의 삶은 대개 이 세 가지 꼭짓점으로 구성되는 것 같다. 한 영국인 집사장인 스티븐스 씨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자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하녀장인 켄튼 양과의 사랑의 기회를 잡지 못한다. ‘영국산 집사장’(Butler Made in U.K.)은 직업정신에 투철한 프로로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과는 그 격이 다르다. 영국이 자랑하는 것으로는 민주주의, 버버리, 위스키 그리고 집사장일 정도니까.


35년 동안 귀족 저택인 달링턴 홀에서 주인(달링턴 경)을 모셨던 스티븐스 씨는 이제 새 주인인 미국인 패러데이 씨의 호의로 생에 처음으로 6일 간 영국 서북부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남아 있는 나날』은 스티븐스 씨는 여행기이다. 그런데 이 여행기는 아름다운 영국의 자연풍광에 대한 예찬과 친절한 시골 사람들에 대한 인상뿐만 아니라, 스티븐스 씨의 과거의 삶에 대한 반추와 영국의 현대사에 대한 성찰도 담고 있다. 여행은 늘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스티븐스 씨는 자신이 모셨던 주인이 영국 내에서 친 독일 인사 혹은 친 나치 인사로 낙인찍혀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과 충격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고통스럽고 허망한 질문을 한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의 전부를 헌신했던, 즉 태엽인형처럼 살았던 자신의 삶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제 남아있는 나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여행의 마지막 날 선창가에서 만난 퇴직한 집사장 앞에서 스티븐스 씨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농담'(bantering)의 기술을 익혀 미국인 주인을 즐겁게 해주려고 결의를 다진다. 그는 “일괄 거래에 낀 품목”(영국인 집사장으로 고용됨을 의미함)으로 미국인 주인의 취향에 맞춰 살아야 한다. 이렇듯 『남아 있는 나날』은 늙은 집사장의 슬픔을 담아낸 엘레지다.


일본계 작가인 이시구로는 포커페이스 영국인 집사장의 특징을 잘 그려냈다. 일본인 작가 특유의 예의바름과 세밀함이 영국인 특유의 감정의 절제와 격식 차리기와 결합된 이 소설은 좀 답답하면서 절제된 미학을 선보인다. 가령 “If I am forced to hazard a guess”와 “You will excuse my putting it so coarsely”같은 문장은 화자인 스티븐스 씨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소견을 밝히는 문장들로서 예의는 바르지만 좀 답답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스티븐스 씨는 주인, 아버지, 캔튼 양, 여행 중 만난 시골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거나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그의 억압된 욕망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 독자는 텍스트가 '말하고 있지 않는 것'(what is unsaid), 억압된 것, 결여된 것을 찾아내는 데 집중을 해야 한다. 소통의 어려움 혹은 감정의 절제를 보이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켄튼 양에 스티븐스 씨에게 “스티븐스 씨. 참 안 됐군요. 당신 아버님께서 약 4분 전에 운명하셨습니다.”라고 전하자 이에 대해 스티븐스 씨는‘알겠소’(“I see.”)라고 아주 간결하게 대답한다. 스티븐스 씨에게 연정을 품었던 켄튼 양이 그에게 자신이 다른 사람의 청혼을 받아들였다고 말하자 “아, 그래요, 켄턴 양? 그렇다면 축하할 일이군요” (민음사판, 271쪽/ “Ah, is that so, Miss Kenton? Then may I offer you my congratulations.”)라고 대답한다. 캔튼 양(벤 부인)과 재회 후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때 스티븐스 씨는 "자, 벤 부인, 부디 몸조심해야 합니다."라고 애절하게 말을 절제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 성취감과 자부심을 지녔던 스티븐스 씨는 점차 당혹감과 공허감으로 엄습을 당한다. 예컨대 그는 '집사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세상이라는 바퀴의 중심축”(the hub of this world's wheel)에 자신이 서 있다(이것은 명문가인 달링턴 홀에서 고매한 품성을 지닌 귀족 주인을 모시고 있다는 점을 의미함)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이를 위해 효도와 사랑을 버려야만 했다. 그가 감상적인 연애 소설을 읽다가 켄튼 양한테 들킨다든지 부친의 외로움과 힘겨움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은, 그도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데스마스크를 한 냉혈인간이다. 결국 선창가에 만난 퇴직한 집사장의 말이 그의 가슴을 후벼 파는 동시에 위로를 해준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300쪽; “'You've got to enjoy yourself. The evening's the best part of the day. You've done your day's work. Now you can put your feet up and enjoy it.”) 여전히 그는 자신이 모셨던 주인은 진정 고매한 천성을 지닌 전형적인 영국신사였다고 믿는다.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귀족 주인과는 달리, 그는 하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자본으로 영국의 전통과 저택을 산 미국인 새 주인을 모시며, 농담의 기술을 익혀 주인을 즐겁게 해주는 새로운 역할을 배워가면서 쓸쓸하게 남아있는 나날을 살아야 한다. 그를 몰락하는 대영제국의 은유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슬픔 때문에 권총으로 자살을 하여 독자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던 반면에, 이시구로의 늙은 집사장은 인생의 공허함 때문에 소리 없이 혼자 눈물을 흘리기에 독자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대단히 영국적인 소설이다.

 

글 박종성(충남대 영문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