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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비스커스 시리아커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10-05 10:02:23
  • 조회수 : 951

요즘 이곳 뉴스는 온통 유럽으로 밀려들어가는 시리아 난민과 관련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집을 쑤신 건 미국인데 난민이 향하는 곳은 유럽이니 가끔은 조금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이 무고한 피해자라는 것이 아니라, 특파원을 연결한다, 난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오스트리아 국경 현장을 직접 연결한다, 하며 요란을 떠는 미국의 뉴스방송을 듣고 있자면, 중동과 북아프리카인을 가득 태운 쪽배가 미국의 동부 연안지역에 출몰하지 않는 한 난민문제는 유럽이 해결해야 할 숙제인 것처럼 들린다는 뜻이다. 유럽 정치인들의 난민대책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논평을 하면서도 미국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별로 들을 수 없으니, 미국의 미디어들은 더할 수 없이 극적인 휴먼스토리를 건지면서 유럽의 곤혹스러운 사정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약간은 빈정대며 나의 일상과는 무관한 난민뉴스 접하기를 여러 날, 드디어 꽁꽁 숨어있던 의문이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나의 냉소적인 이 태도, 이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미국을 빈정대지만 내게도 잘못된 생각이 어딘가에 깔려있는 건 아닐까? 시리아는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나라임에 틀림 없다. 시리아 출신 친구도 없고 시리아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다. 중동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건 서구열강이니 우리나라 역시 책임이 없다. 이 난리통에 나와 내 모집단이 둘 다 도덕적 안전지대에 놓여있다는 건 무척 다행한 일이고, 나와 시리아는 영원히 무관한 맘 편한 사이로 지낼 줄 알았다.

 

그랬는데. 하이비스커스 시리아커스 = 무궁화였다.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나와 시리아의 인연이 엮이기 시작했다. 아니, 뒤뜰 양지바른 곳에 줄줄이 심어놓은 저 무궁화가 시리아커스라고? 무궁화의 원산지는 동아시아인데 왠 시리아? 오리엔탈리즘적인 발상인가? 영어로는 무궁화를 흔히 ‘섀론의 장미’라고 부른다. 섀론은 히브리어로 평원이라는 뜻이고 장미는 비옥한 이 지역에 핀 꽃을 가리킨다.

 

내가 사는 미국 남부에서는 침습성이 강한 무궁화를 심기를 주저한다. 순식간에 스스로 씨를 퍼뜨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하니 내 뒤란의 저 무궁화들도 열정이 뻗치는 다이내믹 코리아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꽃잎이 겹으로 된 무궁화는 침습성이 없다는 속설도 있는데, 내 귀에는 마치 통일이 되어 덩치가 두 배가 되면 죽기 살기로 애쓰지 않아도 점잖은 정원수 반열에 오른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미국에서 무궁화가 ‘침략적인’ 나무가 되어버린 것 또한 묘한 인과응보인지도 모르겠다. 식탁 창문 옆에 심어놓은 미쓰킴 라일락을 볼 때마다 찾아오는 짠한 안쓰러움. 이 작고 강인한 한국 토종 라일락은 한국전에 참전한 엘윈 미드라는 미군 장교가 ‘발견’해 미국으로 가져오면서 자기 타이피스트의 성을 따서 미쓰킴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미쓰킴 라일락은 모양이 아름답고 추위와 더위를 잘 견디고 게다가 향기가 강해 미국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나무다. 그런데 전쟁난민처럼 미국에 들어온 한국 원산의 이 아름다운 라일락이 이제는 우리가 역으로 미국에 로열티를 물고 들여와야 하는 일급 정원수로 둔갑해버렸으니 전쟁을 탓하랴 잽싼 미국인을 탓하랴.

 

몇 해 전 우연히 들른 꽃가게 후미진 구석에 생강향이 짙은 묘목 하나가 놓여 있었다. 톡 쏘는 향기가 특이해 힐끗 이름표를 들여다보니, 빙고! 코리안 스파이스 바이버눔, 한국 분꽃나무였다. 물론 가격표는 확인도 않고 무조건 안고나와 내 작은 뜰에 안착시켰다. 인디언부족의 이름을 딴 미국 원산의 모헉 분꽃나무보다 체구는 작아도 향기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오죽하면 이름에 향신료라는 단어가 들어갔을까. 서로 의지하고 지내기를 바라며 미스킴 라일락 가까운 곳에 한국 분꽃나무를 심어주면서 살짝 물어보았다. 설마 너도 미쓰킴처럼 난민으로 들어온 건 아니겠지? 몸값 당당히 받고 초빙되어온 K-정원수지?

 

언젠가 스티브 잡스가 시리아계 미국인이라는 보도가 나와 약간의 수런거림이 있었다. 잡스의 친부는 난민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어릴 때 입양되어 양부의 성을 따르게 되었고 친부와는 끝까지 남남으로 살았다. 잡스의 양모인 클라라 역시 아르메니아 난민가정 출신이었다. 이들처럼 아니 우리의 미쓰킴처럼 또 다시 한 무리의 난민이 이곳에 들어올 것이라 한다. 이제 미국도 시리아 난민선의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흘러나온다. 무궁화보다 훨씬 더 지척인 내 손안의 아이폰에서.

 


이향순(미국 조지아대 비교문학과 교수, 아시아학 연구센터 센터장)

2015.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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