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소개

조합원 게시판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조합원 게시판입니다.


“인간과 지구, 우주의 역사 그리고 미래”④(최종회)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1-11 11:11:29
  • 조회수 : 1010

  지구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우주와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 비하여 매우 짧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최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불확실하지만 미래의 시간을 내다보자. 인간의 역사도, 심지어는 생물의 역사도 심원한 우주와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턱도 없이 짧을 시간이다. 비유를 들자면, 45억년의 지구역사를 하루, 즉 24시간으로 설정하면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단세포생물, 최초의 생물은 처음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4시간 후, 즉, 새벽 4시에 나타났다. 지구역사 중 6분의 1의 기간 동안에는 생명이 없이 지내온 것이다. 지구 생성 이후 7억5천만년이다. 이 단세포 생물이 저녁 8시(37억5천만년)가 넘도록 아무 진전이 없이 단세포의 단순한 형태로 지내오다가 8시30분 이후에 다세포 해양생물이 처음 출현하게 된다. 즉, 지구 생성 이후 38억4천3백75만년이 지나서야 바다 속에서 다세포생물이 처음 출현하게 된 것이다. 저녁 8시50분(39억6백25만년)에 좀 더 복잡한 형태의 다세포 생물인 해파리류가 처음 나타나게 된다.

 

  밤 9시4분(39억5천만년)에 삼엽충이, 그리고 밤 10시(41억2천5백만 년) 직전에 육지식물, 밤 10시 직후에 육상동물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생물의 급진적인 번성은 당시 아주 짧은 10분(약 3천1백만 년) 간의 온화한 기후 덕분이다. 밤 10시 24분(42억년)에 석탄기의 거대한 숲이 전 지구를 덮는다. 날개 달린 곤충도 이때 나타난다. 공룡은 밤 11시 직전(밤 10시54분, 약 43억년)에 출현해서 약 45분(약 1억4천년간) 간 생존한다. 자정이 되기 21분 전(11시39분, 약 44억3천4백만 년)에 갑자기 멸절이 된 것이다. 인간은 자정을 1분 17초 남겨놓고(밤 11시 58분 43초, 약 44억9천6백만 년) 출현했으며, 역사시대(Recorded History)는 불과 몇 초에 해당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순간으로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짧은 것이다. 지구역사 45억년을 24시간으로 치환하면 1초는 5만2천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1)

 

  다른 재미있는 비유도 있다. 1년을 1초로 가정하면 지구의 긴 역사를 실감할 수 있다. 예수시대는 33.3분(2천년) 전이었고, 지구 최초의 인간은 3주(약 1백8십만 년) 전에 유인원에서 진화했다. 고생대 생물들이 번성했다는 캄브리아기는 20년(6억3천만년) 전이다. 길지 않은 이 비유가 이 정도라면, 세 번째의 비유는 더 실감난다. 지구역사 45억년을 보통 사람의 두 팔을 양쪽으로 크게 벌린 길이라고 한다면, 한 손 끝에서 다른 손 손목까지 거의 대부분의 길이(시간)가 단세포와 미발달 상태의 단순한 생물들이 존재했던 선(先)캄브리아기에 해당한다. 이후 고등동물들은 그 남은 손의 손바닥 안에서 생겨났고, 인간의 모든 역사는 손톱 다듬는 손톱줄로 손톱 끝을 한 번 그었을 때 떨어져 나오는 작은 손톱부스러기 한 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역사는 시간의 길이로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이와 같은 몇몇 비유를 통하여 우리 인류의 역사가, 그리고 근현대의 인간역사가 시간적으로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겠다. 최소한 시간의 절대길이로만 말이다.

 

  단 몇 초에 해당하는 역사시대를 인간은 어떻게 영위해왔을까? 그리고 첨단산업사회를 구가하고 있는 역사시대의 정점에서 우리 인류는 다음 시간을 향해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인가? 약 1만8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인 ‘뷔름빙하기’를 벗어나면서 지구대기가 서서히 따뜻해지는 가운데 당시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의 후퇴, 해수면의 상승이 일어나면서 지구의 환경은 전환기를 맡게 된다. 약 1만 년 전에 농업혁명을 통한 농업생산성의 향상과 농경의 지속을 위한 정주생활은 추후 인구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이미 1만2천 년 전부터 야생식물의 씨앗을 보관, 파종하게 됐고, 야생동물들을 길들여 가축(家畜)화하기 시작했다. 또한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지역에서는 최초로 보리를 농업작물로 키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유랑생활이 줄어들고, 공동생활이 가능하고 필요하기도 한 농경사회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된다. 농경활동으로 정주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취락지역이 생겨나게 된다. 농경 및 생활 관련 기술이 축적되는가 하면 인구증가의 국면을 맡게 되고, 추후 ‘청동기’의 발달은 더욱 상승작용을 부추기게 된다.2)

 

  사회적 분업이 등장하고, 그 일환으로 종교, 정치, 군사가 조직화 및 운영의 고도화를 추구하게 된다. 고대국가체계에서 이미 ‘불평등’과 ‘불균형’이 배태되기에 이른다. 농업은 관개(Irrigation)와 개간(Reclamation)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당시 나중에 산업사회를 폭발적인 힘으로 견인하게 될 ‘기호인식능력’이 생존의 관건으로 주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문자의 사용인 것이다. 역사시대가 문자로 기록한 역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자와 숫자의 사용은 과학적 사고와 기억의 저장 및 축적능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축적된 문명의 지능과 이기는 또 다시 기술과 산업의 충실한 자본으로 복무하면서 규모의 경제, 효율과 자본의 사용에 의한 잉여는 이미 자기증식적 궤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국가에서도 이미 원시적 자본주의가 형태를 완성한 것이다. 농경제의 확대를 단초로 일기 시작한 산업주의는 중세와 근세를 지나오면서 제품생산, 소비, 폐기, 다시 생산의 확대의 순환구조와 또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게 하는 자본의 되먹임(Feedback)은 무한궤도, 그러나 그 원지름에 빠르게 커지는 그런 잉여사회를 만들어 왔다.

 

  현대사회는 물질과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강고한 경제체제 위에 존립을 유지하고 있고, 이 산업주의체제는 외부로부터이든 내부로부터이든 존재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있는 듯하다. 적어도 이제까지는 그렇게 단단하고 확실한 존재감을 향유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는 멈칫하는 것은 필자 본인만의 위기감일까? 긴 설명할 것 없이 물질적 안정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높고, 모자람이 없으며 전도가 유망해 보이는 사회적, 경제적 진보(Progress)가 달성된 듯하나, 그렇지 않다는 역설적 반추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왜일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전한 사회에 살기를 바라는 희망은 왜 점점 더 커지는 것일까? 물질과 에너지의 남용이요 환경자원의 고갈은 이 위기감에 한층 더 힘을 싣는 듯하고, ‘감(感)’뿐만 아니라, 실제 위기의 사회, 위기의 경제체제는 일상이 된지 꽤 되었다.

 

  전 우주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이 또다시 없을 것 같은데, 발전과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지금 그리고 미래를 향해, 반영구적으로 유지해야 할 자연자산은 고갈되고 지적자산은 사유화를 통한 저급한 돈벌이의 쏘시개가 되고 있다. 가치의 발현은 화폐로만 측정되고, 지역과 가족과, 더불음에 대한 가치는 효율과 경제성의 잣대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 것들은 공간을 초월하고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는 걸림돌인 것이다. 탄소의 과다 방출은 해수면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기후변화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미온적인 대응은 컨센서스 보다는 자국의 생산활동에 더 집착하고 국가체계 유지라는 미명하에, 함께 결정하고 함께 공동의의 대응을 함으로서 막을 수 있는 기후변화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견딜만하다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Groundless Optimism)’인 것이다.

 

  지난 45억년 지구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인류의 작금의 이기주의는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이다. 어마어마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지구를 절단을 낼지도 모른다는 치명적인 인간의 역할 때문이다. 역사시대를 지나오면서 지구의 역사가 사람의 양팔을 벌린 한 발정도의 시간에서는 손톱줄로 손톱 끝을 한 번 긋고 나오는 먼지와 같은 부스러기만큼 밖에 안 되는 그 1만2천여 년 중에서도 6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지난 2백년의 산업화시기에 지구의 피부는 완전히 병들어버렸고, 얇은 공기층인 대기권도 온통 탄소들로 뒤덮여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Earth Planet)이다.

 

  5천만 년 전, 공룡은 지구에 충돌하는 행성들이 일으키는 불과 화산분화구에서 터져 나오는 뜨거운 마그마에 의해서 그 목숨을 구할 수 없었는데, 오늘 날의 인류는 공룡들보다도 몸집은 훨씬 작으면서도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라 앞으로도 수만 년 동안 잘 살아 날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침수지역을 벗어나고자 할 것이고, 결국 고도가 높은 지역의 나라들을 전쟁을 통해 접수하는 쪽으로 인간의 지능이 동원될 것이다. 이정도 되면 인간의 지능은 전쟁무기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물에 잠기기 전에 미리 협력하고 예방하는 지능이 훌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자, 인간이 공룡보다 자고 민첩하며 지능이 대단히 높은가를. 물론 절대 지능이야 당연히 높겠지만, 우리가 공룡과 구분되는 점이 있는가 하면 혼동되는 점도 있다. 우리가 매일 타는 자동차와 추위와 더위를 막고, 안전을 위해 이용하는 시멘트콘크리트 건물은 다 무엇인가? 우리 인류 몸의 한 부분이 아닌가? 우리도 공룡만큼이나 몸이 큰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물질들을 들여야 우리가 자연재해로부터, 같은 인류종이면서 적들인 적대국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이 또한 공룡보다는 똑똑할지는 몰라도 모두들 살아남기에 충분할 만큼 똑똑하지도 않다. 공룡과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공룡들은 그 옛날에 그들의 의지와 지능으로는 살아남을 수는 없는, 행성의 지구 충돌과 화산폭발이었지만, 현재 인류종에게는 미리 대비만 철저히 하면 피할 수 있는, 진행속도도 매우 느린(현재까지는 그렇다.) 기후변화가 문제인 것이다. 공룡의 갑작스런 멸종과 다른 점이다. 인류문명은 충분히 선(善)하고 예지력 있고, 대비를 잘 하는 전제 하에만 지속가능할 것이다. 지난 137억년의 우주역사, 45억년의 지구역사는 인류종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인류종에게 의미가 있다. 물론 인류종이 없어진다 해도 우주는 반영구적으로 존재할 텐데, 인류의 행위와 존재, 기록과 활용은 인류종이 존재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지구가 귀한 것이다. 단 하나밖에 없는 지구이기 때문이다.


정인환(협성대 교수, 국토·환경분과 공동분과위원장)

2016. 1. 11​

 

_________________________

 

1) Bryson, Bill, 2003.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이덕환 역,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까치). Pp.353~354.

2) 정회성, 2013.  『공존·상생의 신문명을 찾아서』 환경과문명. Pp.20~22.

 

File
정인환1.JPG [31.0 KB] (download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