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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및 지식과 현실 권력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4-05 13:33:26
  • 조회수 : 1029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인간의 지식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변화하는지 탐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각 시대의 앎[知]의 기저에는 무의식적인 문화의 체계가 있다고 했다. 특히 푸코는 부르주아 권력과 형벌제도에 대하여 분석한 《감시와 처벌》에서 법률은 지배계급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인간이 알고자 하는 의지와 이를 억압하는 권력과의 관계를 파헤쳤다. 그는 지식은 권력과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모든 지식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독일 해석학적 언어철학자들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 사유의 표현이 아니라 사유의 기관이며,사유가 오히려 언어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이들의 사상을 이어받은 에른스트 카시러는 〈상징적 형식들의 철학〉에서 언어는 객관적인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형성하는 것이며 인간은 언어에 의해 형성된 현실만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언어에 의해 재창조된 세계를 카시러는 상징적 세계라고 했고, 훔볼트는 일찍이 이것을 중간세계라고 불렀다.   

 

우리 사회에도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현실 권력이 반영되어 재창조된 언어와 지식이 존재하는가 하면 언어를 보는 시각 차이 때문에 접점 없는 논쟁을 발생시키는 언어도 있다. 예를 들면 ‘경상도 사나이’, ‘국군 포로’는 현실 권력을 반영한 언어이고, ‘낡은 진보’, ‘국부’ 논쟁은 언어에 포착된 현실적 사고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사나이’는 사전적으로 ‘한창 때의 젊고 씩씩한 남자’를 이르는 말인데, 왜 한국의 언론에는 경상도 사람만 사나이를 붙여줄까? 경상도 출신은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또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데뷔 후에 까지도 엄마가 캐디를 하는 골프선수도 사나이가 되고, 다른 지역 사람은 아무리 의리가 있는 사람도 사나이를 붙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치, 경제 권력에 의해 재창조된 언어가 아닐까? 이 단어는 그들에게 아부하려는 언론과 우리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거울로 생각된다. 포로는 ‘전시 적에게 체포되어 군사적 이유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을 말한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오거나 한국에서 북한으로 가면 양 국의 법률에 공히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 결혼을 해서 처와 자식이 있는 사람이 한국에 오면 ‘국군 포로’가 된다. 북한인민군 출신이 한국에서 결혼해 처자식이 있는데 북한에 가서 인민군 포로라는 칭호를 받는다면 우리 한국인은 용납할 수 있는가? 혹자는 이를 영웅을 만들려는 권력에 의해 재창조된 언어라고 비판한다.

 

‘낡은 진보’와 최근의 ‘국부’논쟁은 대립하는 양 진영 논자들이 진보와 국부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즉 진보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 발전을 추구하는 사상’을 말하므로 그 의미로 보면 낡은 진보는 혹자 말대로 형용모순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에서 좌파를 내세우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에 좌파를 진보로 포장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구소련이나 중국에서 보았듯이 기존 극좌적인 관념에 사로잡힌 낡은 좌파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낡은 진보가 반드시 형용모순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부(國父)는 ‘많은 국가에서 건국, 독립, 국가의 발전 시기에 활약한 상징적 인물이나 정치인에게 쓰이는 호칭’이다. 이승만을 국부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사전적 의미에 이승만이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부를 초대대통령이라고 생각하면 해방 후 한국 정부는 물론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기 때문에 이승만을 국부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다른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독자적이고 객관적일 것 같은 언어와 지식도 현실 특히 정치와 경제 권력에 의해 왜곡되어 주관적이고 편파적이 될 수 있고, 우리 인간 대부분은 이러한 왜곡된 현실의 언어와 지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한중(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2016.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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