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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 규제완화가 답일까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1-30 15:57:46
  • 조회수 : 250
경향신문 [유종일의 경제새판짜기]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압승을 거두며 바둑계는 물론 온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이 벌써 2년 가까이 되었다. 이후 1년여의 강화 학습을 통해 더 기력이 높아진 알파고는 세계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 9단을 3 대 0으로 완벽하게 무릎 꿇렸다. 그리고 더 이상 인간과의 대국이 무의미하다며 아예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 후 불과 몇 달 안 지난 작년 10월,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해 원리를 체득하고 실력을 키운 알파고 제로가 나왔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리에 100전 100승을, 커제를 무너뜨린 알파고 마스터에도 100전 89승을 거둘 정도로 압도적인 기력을 과시했다.

 

세계의 바둑 강국이라는 한국, 중국, 일본은 알파고의 등장으로 자존심을 구겼다. 이 나라들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기는 했지만, 그 수준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욱 충격적인 일은 알파고의 등장 이후에, 더 정확하게는 구글에서 딥러닝 오픈소스를 공개한 이후에 일어났다. 중국과 일본의 바둑 인공지능은 급격하게 기력이 향상되어 프로 고수들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나, 한국에서 개발한 ‘돌바람’은 여전히 기력이 수준 이하다. 김진호 서울과학기술종합대학원 교수에 의하면 “구글이 딥러닝 오픈소스를 공개할 당시 일본과 중국은 이를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됐지만, 국내에서는 딥러닝을 구현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르쳐줘도 배울 능력이 안 된다니,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닌가?


이번 주에 세계 최대 전자쇼인 ‘CES’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다. 언론은 ‘차이나 쇼’를 방불케 할 정도로 중국 기업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인공지능 분야에서 인상적인 신기술을 선보이고 있단다. 일본도 미래형 자동차와 로봇 분야 강국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가전 분야 외에는 별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마침 어제 한국은행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혁신 역량이 뒤처진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아울러 혁신성장을 주창하고 있다. 이는 정확한 방향 설정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한국 경제의 진짜 문제는 투자 부족이 아닌 혁신 부족이라고, 자본축적보다는 혁신에 입각한 성장만이 지속가능한 성장이라고 주장해왔다. 본 칼럼을 시작하면서 필자가 생각하는 ‘경제 새판짜기’의 핵심은 바로 이권추구경제에서 혁신추구경제로 판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표현은 다르고 인식의 폭과 깊이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역대 정부는 모두 혁신성장을 내세웠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이 여전히 부족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한 가지 유력한 주장은 과도한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김동연 부총리는 ‘2018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신기술·신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를 대대적으로 발굴해 정비하겠다”고 강조했다. 드론이나 빅데이터 등 신성장산업 분야의 규제를 대폭 허문 ‘규제 샌드박스’를 조성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달 중 ‘규제개혁 대토론회’를 열어 규제완화 흐름에 힘을 실을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혁신 부족이 과연 규제 때문에 발생한 현상인가? 혹시 규제보다 훨씬 중대하고 근본적인 원인들을 놓치거나 경시하고, 규제완화라는 덜 중요한 혹은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재계의 주장을 보면 우리나라는 규제가 심하여 기업하기가 몹시 어려운 나라인 것 같다. 과연 그럴까? 1990년대 이래 역대 정부는 모두 규제완화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물론 정부 뜻대로 규제완화가 다 된 것은 아니지만, 결코 우리나라가 터무니없는 규제가 만연해 있는 반기업적인 나라는 아니다. 최근에 세계은행이 발표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지수’에서 한국은 당당히 세계 4등을 차지하였다.


위에서 소개한 알파고의 사례를 보자. 우리나라는 알파고 수준의 인공지능을 개발할 능력은커녕, 소스코드 공개 이후에 이를 활용하여 알파고를 모방할 능력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실력이 부족한 것도 규제 때문인가? 실력이 없는데 규제가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인가? 최근 권위 있는 혁신 전문가에게 우리나라의 혁신이 부진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는 주저없이 인적자본의 부족이라고 답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넘쳐나지만 첨단기술 분야에서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보다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게을리한 탓은 절대 아니다. 과거 ‘따라잡기 성장’ 시대에 형성된 주입식, 서열화 교육과 연구개발을 비롯하여 온 사회에 만연한 단기 성과주의가 창조와 혁신의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사회안전망이 부실하여 대다수 젊은이들이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취해 공무원 시험이나 자격증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인재들이 의대와 로스쿨, 그리고 신의 직장으로 몰리는 나라에서 첨단기술의 연구개발과 혁신창업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어린이들이 장래희망으로 건물주를 꼽는 나라에서 세상을 바꾸는 혁신이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


재계가 사실과 달리 한국의 규제환경을 극도로 폄하하면서 규제완화에 그렇게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혁신을 가로막는 구체적인 규제를 놓고 논쟁하기보다는 포괄적인 규제완화론을 펼치면서 꼭 필요한 규제까지 약화시키려는 저의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정부가 기업에 편향되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 인권과 환경보호, 투명성·책임성·공정성 제고와 같이 꼭 필요한 규제까지도 훼손될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이 규제완화의 걸림돌이다.


필자도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경쟁을 제한하고 소수의 기득권을 보호하며 새로운 실험을 가로막는 규제들의 경우에는 완화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기술과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규제의 변화와 개혁은 항상 필요하다. 헌법도 바꾸는 판에 규제를 못 바꾼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러나 규제완화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필자는 이런저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입력 : 2018.01.11 20:48:00 수정 : 2018.01.11 20:57:1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11204800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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