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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의 진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2-08 15:33:07
  • 조회수 : 265

경향신문 오피니언[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드디어 국회 개헌특별위원회가 본격 가동됐다. 개헌특위는 촛불시민혁명의 뜻을 받들어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설계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필자는 경제민주화의 실현 여부도 좋은 개헌안을 도출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여 특위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필자의 국회 개헌특위 참여 배경에 대해선 몇 가지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우선, 현 시점에서 개헌 논의를 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관한 논란이 존재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노정한 헌정체제의 문제점을 고치고, 촛불시민혁명의 정신과 요구를 담아내는 근본적 개혁을 위해 나라의 기본 틀인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등 정치적 위기에 처한 자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로 개헌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개헌이 오히려 정권교체와 개혁을 막기 위한 정략적 방편으로 활용될 여지가 생겼다. 그래서 개헌을 대선 이후로 미루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선 이전 개헌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도 희박하거니와, 촛불시민혁명의 요구를 수렴하기보다는 권력 구조에 관한 정파 간의 타협을 매개로 한 정략적 개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개헌론은 대선 이전에 개헌을 완료해야 한다는 입장 못지않게 정략적이다. 과거에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고 여러 번 개헌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한 번도 본격적인 추진이 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정치인, 심지어 내각제 합의까지 한 경우에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개헌을 반대했다. 임기 전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통령’이 반대하는 일은 정치권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임기 후반에는 차기 대권이 유력시되는 이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들이 또 개헌을 반대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지금 개헌특위가 본격 가동된 것은 따라서 매우 특이한 현상이고, 그 배경은 다름 아닌 촛불시민혁명이다. 따라서 시민혁명의 열기가 식기 전에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쇠는 뜨거울 때 쳐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현시점이야말로 진취적인 개헌을 이루어낼 수 있는 적기다. 일례로, 과거 개헌 얘기가 나오면 전경련이 나서서 경제민주화 조항을 폐기하는 등 자유시장경제 헌법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곤 했다. 그러나 지금 추악한 정경유착의 매개체임이 드러나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 전경련은 감히 개헌에 관해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다. 정략적 악용의 소지를 들어 개헌 논의에 소극적인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다.


다음으로, 과연 국회 개헌특위가 개헌안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옳은가에 관한 문제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지금 개헌이 본격 논의되는 것은 촛불시민혁명에 기인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탄핵을 이끌어낸 것은 국회가 아니고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었다. ‘이게 나라냐’고 항의하며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국가 개혁을 요구하는 동력도 촛불시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주권자로 재탄생한 촛불시민들은 대의민주주의의 처참한 실패를 목도하면서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외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이 개헌 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개헌 논의 방식은 아마도 추첨으로 선발한 ‘시민의회’를 중심으로 한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회가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국회는 그럴 생각이 없다. 국회는 대신 자문위원회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고 한다. 필자는 어제 처음으로 열린 개헌특위 위원·자문위원 전체회의에서 자문위원회는 촛불시민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면서 개헌 논의의 중요한 주체로서 임해야 하며 결코 국회의 들러리 역할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자문위원이 공식적인 대표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문위원을 넘어서는 시민 참여 기제를 마련할 필요도 있음을 주장했다. 회의의 전 과정을 중계하고 전면 공개하며, 시민들이 회의를 평가하며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민주화가 개헌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다. 제도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이기 때문이고, 현행 헌법은 민의를 올바르게 대변하는 정당정치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대통령 권한과 미약한 국회 권력 때문에 대통령 권력을 누가 쥘 것인가가 항상 정치의 핵심이었고, 대통령과 후보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하는 정치 풍토에서 정책정당의 발달은 연목구어였다. 일찍이 그레고리 헨더슨이 한국 정치의 특징으로 지적한 ‘소용돌이 정치’가 지속된 것이다. 더구나 선거제도가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제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등 승자독식 제도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권력싸움 위주로 정치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권력투쟁 중심의 패거리 정치는 정파의 이권집단화를 초래하고, 그 결과 유력 정치인들은 재벌에 기대거나 조종당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경제권력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하는 정책, 즉 경제권력이 마음대로 활개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장화 일변도의 정책이 정권이 몇 번을 바뀌어도 변함없이 득세한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개헌의 요체는 권력의 분산과 승자독식의 철폐다. 대통령 권력을 국회와 독립기관에 나누어야 하며, 중앙정부 권력을 지방정부로 나누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 권력을 국민 파면권, 국민 입법권, 국민투표제 등 직접민주주의로 제어하고 보완해야 한다. 득표수에 비례하는 국회 의석 배분을 규정함으로써 비례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당 간의 공정한 경쟁과 신진세력의 정치 진입을 용이하게 하고,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심사가 골고루 반영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모쪼록 개헌특위가 좋은 개헌안을 마련하여 경제민주화의 초석을 놓기 바란다.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입력 2017.02.02 22:37:00 수정 : 2017.02.02 22:39:41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022237005&code=990100#csidx4805a9418112e5cb7b47a3c555a6c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