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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의 ‘소득주도성장 비판’에 대하여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8-18 17:57:19
  • 조회수 : 76
경향신문 오피니언 [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유승민 의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이하여 날선 비판을 제기했다. 유 의원은 기득권 옹호에 앞장서온 수구세력에 맞서 정의를 추구하는 개혁적 보수의 기치를 들고 한국 보수정치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비록 지금 바른정당의 당세는 미약하지만 그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또한 그는 경제학자 출신으로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갖추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선후보 토론에서 실력을 과시한 바 있다. 유 의원의 정부 비판을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

 

유승민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과 경제정책, 그리고 적폐청산에 관해 언급했지만, 필자는 경제정책 부분에 관해서만 짚어보고자 한다. 유 의원이 제기한 비판의 요지는 세 가지다. 첫째, 소득주도성장은 환상이다. 둘째, 한국 경제가 저성장 추세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혁신뿐이다. 셋째,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좋은 문제제기라고 본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복지의 수준과 이를 위한 조세부담에 관해 국민적 합의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은 핵심을 찌른 것이다.


유 의원은 소득주도성장이 공공 일자리 확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정책과 기초생활보장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구직수당 등 복지정책을 통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증대하고, 이로써 소비수요 확대에 의한 성장률 제고를 도모하는 정책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로써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는 환상이라며, 복지를 늘리면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허황된 생각이라고 평가한다.


‘노동정책이나 복지정책이 어떻게 성장정책이 되느냐’는 유 의원의 비판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유 의원이 학계를 떠나 정치인이 된 이후에 경제학계에서는 분배와 성장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불평등이 심한 경제에서는 노동정책, 복지정책, 조세정책 등으로 분배를 개선하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득세하였다. 지나친 불평등이 성장을 방해하는 구체적 경로에 관해서도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소비수요 위축 문제 외에도 유동성 제약과 결합하여 인적자본 형성 등 효율적 투자를 제한하는 문제, 무분별한 팽창정책이나 복지정책 혹은 금권정치의 발호 등 정치적 왜곡, 가계부채 확대로 인한 금융위기 가능성 등이 거론되었다. 이는 결코 일부 진보학계의 논의가 아니며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성장을 위한 재분배 정책을 권고하고 있는 현실이다. 소득주도성장의 모태인 임금주도성장은 학계의 연구를 바탕으로 국제노동기구(ILO)가 정식으로 제안한 성장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물론 소비수요 문제를 강조한다. 수요의 영향은 단기적 경기변동에 국한되고 성장을 결정하는 장기균형은 공급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전통적 입장에서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는 케인스의 말이나 “장기는 단기의 연속일 뿐이다”라는 칼레츠키의 말처럼 장기균형은 관념적 허구일 따름이며, 주류경제학에서도 최근에는 단기 현상이 장기적 변화를 초래한다는 이력(hysteresis) 효과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단기적인 수요 자극이 장기적인 성장률 제고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결국 투자와 생산성 향상이다. 소득주도성장론에서는 수요 확대가 투자 증대를 낳고 또한 임금 상승과 규모의 경제에 의한 생산성 향상 효과도 낳는다고 본다. 이런 효과들은 많은 실증연구에 의해 존재가 입증되었으나, 과연 한국 경제의 경우 그 효과가 얼마나 클지는 의문이다. 우리 경제의 높은 수출의존도 때문에 가계소득 증대로 소비수요를 진작해도 총수요 확대 효과는 제한적이거나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설사 총수요가 늘고 투자 증대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과연 이로써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이유가 투자의 부진이 아니라 혁신의 부진이라는 것은 필자의 오랜 주장이다. 따라서 투자 증대를 위해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 등의 친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역대 정부의 관점에 비판적이었으며, 혁신에 입각한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유승민 의원의 관점에 공감한다. 실제로 저성장 시기에도 투자율은 여전히 높고, 다만 자본의 생산성이 낮아 투자가 성장에 기여하는 바가 줄어든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선진기술 모방을 중심으로 한 추격형 성장 시기에 형성된 제도와 관행, 사고방식과 기득권이 선도형 혁신체제로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현 정부는 물론이고 과거 정부도 표현은 조금씩 달랐을지언정 혁신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 의원은 정부가 말로만 혁신을 얘기한다고 질책하지만, 혁신창업 고취 등 그가 대선공약에서 제시했던 혁신성장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여러 정책들을 정부가 추진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정책들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추격형 성장체제의 유산을 과감하게 탈피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재벌의 산업지배이며, 이 문제에 관한 유 의원의 인식은 높이 평가한다. ‘선택과 집중’ 원칙이나 단기 성과주의도 대표적인 폐해이며, 성장과 이윤에 집착한 나머지 사회안전망을 소홀히 하고 고용불안을 초래한 것이 젊은이들을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게 한 근본 원인임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유승민 의원은 “노동, 복지, 교육, 주택, 의료 등 민생 분야에서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국가가 안전망을 제공하고 차별을 시정하는 것은 양극화를 해소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로서 적극 찬성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들이 성장의 궁극적 해법은 아니라도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분배와 성장에 관한 이분법에 따라 성장우선주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다. 유 의원이 강조해 마지않는 복지 확대와 조세부담 증대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도 복지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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