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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을 위한 정책 하나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18 18:10:08
  • 조회수 : 463

경향신문 오피니언 [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삶의 질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38개국 가운데 28위를 기록했다. 평가 기관이나 방식에 따라 들쭉날쭉하지만, 소득 수준이나 교육 수준에 비해 삶의 질이 낮은 편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죽음의 질도 삶의 질 이상으로 나쁘다고 한다. 2010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연구소인 EIU가 OECD 회원국을 포함한 40개국을 대상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가 얼마나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조사하여 작성한 ‘죽음의 질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 지수는 40개국 중 32번째였다.

 

누구나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등록하면 건강보험료를 일정하게 할인해주는 정책을 제안한다. 이 정책은 죽음의 질을 높이고, ‘웰다잉’이 보편화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에 ‘998812’라는 건배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이틀 앓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주인공 모리 슈워츠와 같은 멋지고 감동적인 죽음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기를 원한다. 몹쓸 병에 걸려 고통을 겪고 싶지 않고, 치매에 걸려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가장 끔찍한 것은 회복의 가능성도 없이 인공적으로 연명하며 본인 스스로의 고역과 가족의 고통을 하염없이 연장하는 일이다. 깨끗하게 생을 마감하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하시던 나의 고모님도 벌써 5년째 이런 상황이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본인의 소망과는 달리 가정이 아닌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비율이 점점 늘고 있고, 회생 가능성이 극도로 희박한 말기질환자가 고통스러운 의료행위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이 생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에는 어차피 죽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죽어야 억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우며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는 연명치료를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의사 표명이 어려운 상태에서 연명치료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김할머니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의료 관행과 법 현실이 이 문제를 가중시켜 왔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기질환자가 단순한 생명 연장이 아닌 전문인력의 돌봄을 받으면서 육체적 고통을 줄이고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총체적인 서비스다. 임종을 앞둔 말기질환자가 연명치료 대신 완화의료를 이용하면 덜 고통스럽고 어쩌면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른바 ‘웰다잉’을 할 수도 있다. 가족이 겪는 고통과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의료비도 절약할 수 있고, 건강보험재정도 절감된다. 환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연명치료를 위해 부담하는 비용에 비해 호스피스 운영비용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이러한 연구 결과가 많고,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최영순 박사가 2015년 유사한 연구를 했다. 그는 말기질환자의 치료를 기존 치료에서 완화의료로 전환하는 경우 건강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추정했는데, 말기 암환자의 50%가 완화의료로 전환하면 약 650억원이 절감되고, 만성신부전 등 여타 말기질환자의 50%도 완화의료로 전환하면 추가적으로 또 그 정도의 액수가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호스피스에는 중환자실과 달리 의료진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심리치료사, 종교인 등 다양한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다행히 최근에 국민들 사이에서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는 2016년 초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올 8월 호스피스 분야가 시행에 들어갔고, 내년 2월에는 연명의료 분야도 시행에 들어간다. 소위 ‘웰다잉법’이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 이 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이 제기되었다. 한국의료윤리학회 등 여러 관련 단체들은 지나치게 보수적인 시행령·시행규칙 때문에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제도의 오·남용이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국민이 심사숙고해서 자신이 말기질환자가 되었을 때 과연 연명의료를 택할지 아니면 완화의료를 택할지 미리 선택하고,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 경우 이를 분명히 밝히는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등록하는 것이다. 2013년에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본인이 회생 불능일 경우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성인의 87%가, 40대 이상에서는 90% 이상이 ‘연명의료 중단을 원한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대다수 국민이 사전에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혀둘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와 국립암센터 이근석 교수 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알고 있는 국민이 15.6%에 불과했다.

 

설사 이 제도를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다수의 젊은이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없이 살아간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고 아직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고없이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원치 않던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다. 연명의료 대신 완화의료를 택하면 건강보험재정이 절약되니, 이를 활용하여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는 사람들에게 보험료 할인 혜택을 주는 방안이다. 죽음은 한없이 멀어 보이지만 보험료는 지금 당장의 문제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것이다. 이는 죽음의 질 제고, 가족의 부담 완화, 의료비 절감, 일자리 창출 등 일석사조의 효과를 거둘 것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입력 : 2017.09.14 20:48:00 수정 : 2017.09.14 20:59: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14204800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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