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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물주’의 나라와 경제성장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2-28 11:22:20
  • 조회수 : 319

경향신문[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들의모임(맘상모)’은 일전에 성신여대 앞에서 치킨집을 하는 김모 사장의 사연을 소개했다. 건물주가 바뀌었으니 부동산 사무실로 와보라는 말에 같은 건물에 입주한 상인들과 함께 간 김 사장은 신규 건물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명도소송으로 날린 상인이 39명이야. 빈털터리로 나갔지. 내가 나가라면 그냥 나가. 멍청하게 40번째 되지 말고.” 전 건물주만 믿고 두 달 전에 인테리어 공사를 했던 김 사장은 통사정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입주 시 지불했던 권리금 2억원과 인테리어 공사비 2억원을 합하여 4억원을 고스란히 신규 건물주에게 바친 꼴이 되었다.

 

이런 유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이 전해진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라는 것이 어엿이 있지만 허점투성이여서 임차 상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호 기간이 5년으로, 보호 대상이 ‘영세’ 자영업자로 한정되어 있으며, 그나마 한정된 보호장치에도 여러 허점이 존재하여 실효성이 떨어진다. 보호 기간이 5년밖에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5년이 경과하면 임대료를 무제한으로 올릴 수 있고, 마음대로 쫓아낼 수도 있다. 위의 김 사장도 임대 기간이 5년이 되었다는 이유로 명도소송에서 패소하여 나갈 수밖에 없었다.


보호 기간을 5년으로 한정한 것은 자영업자들이 안정적인 영업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 건물주의 계약 갱신 거부는 점포이전비나 인테리어비 등 큰 비용 부담을 유발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존의 고객층을 상실하여 점포 이전 후 매출이 감소하기 십상이고, 자칫하면 권리금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용산참사 이후 상가 권리금 문제가 이슈화되었고, 2015년에 법 개정이 이루어져 권리금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임차인에게 권리금 회수 기회가 부여되었다. 하지만 그 조건이 까다로워 악의적인 건물주를 만나면 김 사장과 같이 권리금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보호 대상이 지나치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위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문제다.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한 환산보증금을 기준으로 보호 대상을 설정하고 있는데, 임대료가 오를수록 보호 대상이 점점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임대차 분쟁은 장사가 잘되지 않는 지역과 점포보다는 잘되는 지역과 점포에서 대부분 발생한다. 그런데 장사가 잘되는 지역과 점포일수록 환산보증금이 높아지기 때문에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실제로 서울 주요 상권의 임대료는 환산보증금 기준을 넘어선 상황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여파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임대료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하여 연 임대료 상승률 상한을 9%에서 5%로 낮추고, 환산보증금 기준을 서울의 경우에 기존 4억원에서 6억1000만원으로 인상하는 등 상향 조정하였다. 하지만 5년이 지나면 임대료를 무제한으로 올릴 수 있고, 잘나가는 상권의 잘나가는 점포는 아예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다. 모든 정당이 언필칭 민생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이를 미룰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론 법 개정의 방향과 내용도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부실한 법을 조금 손질하고 보완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시장의 공정성과 경제적 효율성 확보라는 관점보다는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한다는 다분히 시혜적인 관점에서 설계되었다. 따라서 재산권의 논리, 시장의 논리라는 강력한 논리 앞에서 위축되어 충분하고 실효적인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임대시장의 특수성과 그 경제적 함의를 제대로 인식하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경제적 보상체계의 마련과 이를 통한 경제성장의 제고라는 관점에서 임대차 보호를 바라보고 법 개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은 물론이고 사회적 정당성도 지닌다. 하지만 이는 경쟁적인 시장에 한한다. 부동산은 토지의 유한성과 위치의 한정성 때문에 수요의 증가에 대응한 공급의 증가가 쉽지 않고, 따라서 경쟁이 매우 제한되고 수요의 증가는 곧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주택보다도 위치에 예민한 상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 결과 상가 임대시장은 공급자, 즉 임대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시장이 되어 규제가 없을 경우 수요증가는 고스란히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임대수요의 증가는 곧 해당 점포의 장사가 잘되고 매출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그런 점포의 임대료를 인상하는 것이 정당하고 효율적일까? 매출 증가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임차 상인의 노력과 아이디어 덕분일 것이다.


따라서 매출 증가에 따른 이익을 임대료 인상으로 건물주가 흡수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이는 또한 노력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유인을 감소시키고 부동산 소유라는 비생산적인 행위에 대한 유인을 강화함으로써 경제의 효율을 떨어뜨릴 것이다. 건물 가격이 올랐으니 임대료도 올라야 한다는 주장은 순환논리에 불과하다. 애초에 건물가격 상승의 이유가 매출 호조가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역동성은 자원을 비효율적인 사용처에서 보다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효율적인 사용처로 재배분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상가 임대차 보호는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시혜적인 정책이 되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장사를 잘하여 돈을 잘 버는 자영업자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환산보증금 제도는 아예 폐지하는 것이 옳다. 보호기간의 장기화는 물론이다.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10년은 부족하고, 20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 건물주의 악용에 노출된 다양한 허점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일본이나 독일 등의 선진국 사례를 보면 보호 대상을 한정하지 않으며, 보호 기간도 실질적으로 무기한이다. 임차인의 의사에 반하여 임대차 계약을 종료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강력한 임대차 보호는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경제적 효율성과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조물주 위에 있는 건물주’라는 ‘갓물주’가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소득주도성장도, 혁신성장도 연목구어가 될 것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입력 : 2018.02.08 21:13:00 수정 : 2018.02.08 21:21:0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08211300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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