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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개헌론’ 유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4-17 18:25:56
  • 조회수 : 156

경향신문[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근래 들어 미국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가 괄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례로 ‘공산주의피해자기념재단’이라는 반공단체가 작년 연말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생)의 44%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싶다고 답한 반면,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싶다는 답은 42%에 그쳤다. 35세 미만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는 53%가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답하였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사회주의를 터부시했다는 점에 비추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여론의 변화 때문에 공개적으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가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왜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사회주의에 대한 호감과 선망이 급증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분분하다. 좌파 교수들의 세뇌교육 탓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월가 금융위기와 연이은 경기침체, 그리고 갈수록 심해지는 부의 집중과 불평등 때문에 미국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문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겪은 대대적 실패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고 싶다는 미국 젊은이들은 과연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는 걸까?  

 

작년에 ‘캠퍼스개혁’이라는 단체가 워싱턴에서 대학생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사회주의를 좋아하는가?” 그리고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대다수 학생들은 사회주의를 좋아한다고 답했지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거의 답을 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나 레닌이 누구인지 거의 몰랐고, 사회주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 ‘더욱 개방적이고 투명한 정부’라는 등의 막연하고 부정확한 생각을 말하거나 아예 ‘잘 모른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사회주의가 뭔지 잘 알았다면 좋아한다고 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사회주의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한 가지 그럴듯한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극우파 인사들이 사회보장제도, 누진세, 실업보험, 전국민의료보험 등 유용한 제도들을 ‘사회주의’라고 수십년 동안 공격해댄 결과, 냉전시대를 겪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를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는 장년 및 노년세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는 진짜로 이런 좋은 제도들이 사회주의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워싱턴 대학생들의 답변은 크루그먼의 가설을 뒷받침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날까 걱정이다. 금년 초 조선일보가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개헌안을 색깔론으로 공격한 이래 각종 극우매체에 ‘사회주의 개헌’ 심지어 ‘공산화 개헌’이라는 말까지 난무했고, 제1야당이라는 자유한국당까지 이런 흐름에 편승했다. 대통령의 개헌안이 발표된 후에는 비난의 수위를 날로 높이더니 급기야 3월30일 ‘사회주의개헌저지특위’를 구성하였고, 홍준표 대표는 “사회주의 개헌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이 사회주의라고 문제 삼는 대통령 개헌안의 내용은 노동권, 토지공개념, 경제민주화 등 크게 세 가지다. 그런데 이들 권리나 개념은 현행 헌법에 없는 것을 완전히 새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헌법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의 헌법재판소조차 현행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경제 질서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적 시장경제’임을 여러 차례 인정했다. 경제적 자유를 기본으로 하지만 사회적 필요에 따라 적절한 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개헌 운운하는 이들은 대통령 개헌안이 자유시장경제를 사회주의경제로 바꾸려고 한다는 투로 말하고 있지만, 기존 헌법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적 조정’의 정도를 조금 더 강화하는 점진적 변화를 담았을 따름이다.

 

사실 노동권, 토지공개념, 경제민주화의 강화는 우리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자본과잉과 초저출산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지수’에서는 세계 4위를 하면서 노동권에서는 세계 최하등급인 자본과 노동의 권리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불균형을 해결해야 한다. 중산층과 서민의 주거안정과 자영업자의 영업안정 및 기업경쟁력을 위해서 백해무익한 부동산 투기를 잡아야 소득주도성장도, 혁신성장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과도한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하여 경제민주화가 중요하며, 이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2012년 대선에서 앞장서서 주장했던 바다.

 

혹자는 대통령 개헌안에 담긴 ‘사회적 경제’가 사회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사회적 경제’는 이윤추구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도 관심을 가지는,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활동을 포괄하여 지칭하는 용어다. 시장경제의 일부일 뿐 계획경제가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발달되어 있다. 국제사회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널리 사용되는 용어인데, 이를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현대 세계에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방임적 자본주의가 드러낸 심각한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서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었고 다양한 제도와 정책들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처한 특수한 상황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정한 ‘사회적 조정’을 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아닌 선진국은 없다. ‘사회적 조정’은 시장경제를 더 건강하고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지 사회주의는 전혀 아니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조정’이 구미 선진국들에 비해 부족한 편이어서 그만큼 문제도 많고, 그래서 이를 강화하자는 국민적 요구가 존재한다. 노동권 강화, 토지공개념, 경제민주화 등은 모두 국민여론이 지지하고 있다. 이런 좋은 것들을 사회주의라며 터무니없는 비난을 계속해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처럼 젊은이들이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입력 : 2018.04.12 20:36:01 수정 : 2018.04.12 20:40:5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122036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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