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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241호_박순성_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정세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10-08 08:20:20
  • 조회수 : 41
현안과 정책 제241호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정세
박순성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2017년 겨울부터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과 6월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첫 단계 성과를 거두었다. 정상회담들에서 이루어진 합의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의 과정은 2018년 8월 말 표면화된 북미협상의 교착·중단으로 중대 난관에 부딪쳤지만, 남북한은 9월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공동행사 등으로 북미협상의 재개와 성공을 위한 조건을 새롭게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된 지 거의 1년이 되어 가고 북미협상이 다시 본격화되는 시점을 맞아, 이 글은 한반도 평화 정세를 중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고 전망한 후, 한국 정부의 과제를 몇 가지 제시하려고 한다.
 
관점의 전환: ‘비핵화 우선’과 ‘평화 우선’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의 위험을 없애고 공존과 협력의 안정적 질서를 구축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짧게 보면 2010년대 중반의 몇 차례 전쟁 위기, 조금 멀리 뒤돌아보면 1990년대 초 북한의 핵무기비확산조약 탈퇴 선언으로부터 시작된 군사적 긴장과 무력 충돌, 그리고 한반도 분단의 역사에서 바라보면 1953년 7월 한국정전협정 체결 직후부터 끊이지 않고 있는 무력 충돌과 군사적 불안, 이 모든 것들이 한반도를 때로는 전면전의 발생 가능 지역으로, 때로는 실질적인 저강도 분쟁 지역으로 만들었다. 한반도에서 잠재되어 있는 무력 충돌을 완전히 억제하고 실질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조성하고 구축하려는 모든 노력은 한반도 분단사에 대한 단기적 관점뿐만 아니라 장기적 관점을, 그리고 남북한 관계에 대한 시각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에 대한 시각을 요구한다.

2016년과 2017년 두 번의 여름에 한반도가 직면한 전쟁 위기는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보다는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대결이 더 본질적이었다. 2017년 봄의 정권 교체 이전에도 남한은, 심지어 보수 정권 하에 있었지만, 전쟁 자체를 국가 전략이나 정부 정책으로 내어놓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북한과 미국의 직접 대결 형태로 발생할 모양새였다. 그런데, 한편에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에 사용할 수 있기 직전에 도달한 또는 실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북한,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핵무력을 갖춘 북한을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국, 두 국가 사이의 대결은 다행히도 2017년 여름을 고비로 잦아들기 시작했다.

왜 전쟁 위기는 사라졌는가? 무엇보다도, 막상 무력의 실질적 행사 이외에 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이 점차 좁아지고 마침내 전쟁 발발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을 때,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부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자체와 결과를 군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외교적·경제적으로도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정치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말싸움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전에, 협상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북한의 실제 핵무력이 국제적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되기 전에,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노력이 아직도 전면에서 사라지지 전에, 북한과 미국 최고지도부는 핵문제 해결의 현실적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국면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의 정책 전환과 적극적 행동은 대안 모색이 불가피했던 북한과 미국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다. 2017년 가을부터 시작된 말싸움과 도발 행동의 자제 국면은 2017년 겨울 남한 정부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선언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였다. ‘한미군사동맹에 기반을 둔 한국의 안보’로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로 정책 기조를 분명하게 바꾼 문재인 정부는 평화 증진을 위한 선제적 조치를 통해 2017년 겨울부터 2018년 봄에 이르는 한반도의 평화 국면을, 나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던 ‘비핵화 우선’ 대 ‘적대정책 포기’라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대결 국면은 ‘평화 우선’과 ‘행동을 통한 신뢰 구축’이라는 남한 주도의 평화 조성 과정, 곧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정세 전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한반도 평화의 문제를 북한 비핵화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는, 그리고 한반도 문제를 북미갈등의 문제로 결코 축소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 그리고 전환된 인식의 국제적 공유는 남한에게 외교적 행동 공간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북미갈등과 국제적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의 가능성과 역할을 높여주었다.
 
진전, 그리고 교착: 경로창조적 변화와 관료주의적 합리성
 
남한이 주도한 것으로 평가되는 한미군사훈련 잠정 중단이라는 선제적 평화 조치, 평창 동계 올림픽 기간에 전개되었던 북한과 미국 사이의 공개·비공개 접촉, 남한의 적극적인 중재·중계외교, 남·북·미 사이의 양자 정상회담을 통한 관계 개선과 신뢰 구축의 전기 마련 등은 분명 아주 극적인 양상을 띠고 있지만, 위급한 상황의 전면적 전환이라는 현실적 요구의 측면에서 보자면 당연한 전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고지도자들이 주도한 한반도 정세 전환은, 2008년 이후 거의 10년간 진행되었던 남북관계의 악화·단절, 북·미 사이의 적대관계 심화, 북한의 핵무력 강화와 한반도 내 군사적 대치 고조 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관료적 절차를 거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닌 위로부터의 접근이 주효하였음을 확인시켜 준다.

한반도 평화의 문제가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동북아에서의 대결적 군사동맹체제의 협력적 지역안보체제로의 전환, 곧 분리된 평화의 온전한 평화로의 전환 등의 문제라고 한다면, 위로부터 만들어진 경로창조적 변화는 현실에 존재하는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저항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정치세력 및 사회구성원 일부 또는 다수로부터 이의가 제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집단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저항’이 발생한다. 국가들 간의 협상이 대외협상과 대내협상의 결합체로서 양면게임의 성격을 지닌다고 했을 때, 정상들 사이에 합의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기본 과정은 각 국가 내부의 대내협상을 통해 구체적 모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관료의 저항’은 관료주의적 합리성의 이름으로, 다시 말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구체적·세부적 과정에 대한 법적·제도적 규범과 절차 그리고 과학기술적 기준 등에 따른 확인과 통제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촛불시민혁명’에 의해 세워진 후 강력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남한 정권과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북한 체제가 오히려 예외적 경우라고 한다면, 미국의 경우는 말 그대로 ‘디테일의 악마’가 관료 전반에, 그리고 심지어 기성 정치질서와 전문가집단 전반에 숨어 있다. 더욱이,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와 2005년 9월 6자공동성명이 실행 과정에서 중단된 이후에 북한과 미국 쌍방이 서로에 대해 협상 파기 책임을 전가하면서 더욱 강화시킨 깊은 상호불신은 핵무기·미사일의 과학기술적 복잡성과 결합하여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가로막는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과 평화체제 수립 과정을, 또는 북한 핵무기·미사일의 해체 과정과 대북제재 해제 및 북·미 관계정상화 과정을 정치적으로나 과학기술적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대응시키기는 쉽지 않다. 당연히 관료주의적 합리성과 정치적·기술적 불신이 작동할 여지는 매우 크다. 북·미 협상의 교착과 중단은 바로 여기로부터 나타난다.

이런 상황이라면 최고지도자들을 포함한 고위급들의 상황 돌파 의지가, 갈등의 당사자이면서도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남한의 창의적 대안 제시와 끈질긴 설득이, 그리고 남북한 주민들과 지구시민사회의 적극적 지지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만들고 확장시켜 나가는 데에서 핵심 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2018년 9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전개된 남·북 및 한·미 정상회담, 북한과 미국 정상들 사이의 서신 교환, 유엔 총회를 계기로 한 정부 및 비정부 차원의 외교, 남북공동행사, 미국 고위급 인사의 북한 방문과 최고지도자 면담, 그리고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신뢰 조치 제안 등은 관련국들 내부의 관료주의와 한반도 갈등의 역사적 유산을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이 되었다.1)
 
불확실성과 국가대전략: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와 국제화
 
문재인 대통령의 2018년 8월 광복절 경축사는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를 분명하게 내세우면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남북한의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따로 갈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한편으로는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고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의 촉진 동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대적 갈등의 핵심 당사자들인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불신이 걷히고 비핵화 대화가 촉진될 수 있도록 만드는 남한의 주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분단 극복에 대한 근본 철학’과 ‘당면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실용적 정책’을 조응시키려는 한국 정부의 균형 감각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국면에서 더욱 긴요하다.

더욱이,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분단 극복과 평화 구축은 남북한 문제 또는 북·미 문제로 한정되지 않고, 동북아 지역의 핵심 문제 중의 하나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동북아 국가들의 한반도문제에 대한 개입 의지는 매우 강하며, 각 국가들의 국가대전략에서 한반도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물론 일본과 러시아의 역할은 당분간 제한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역할은 이미 상당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더욱 커질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은 동북아 지역질서 차원을 넘어서 지구공간정치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남북한 모두는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중국의 직접적 영향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 한반도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에게만이 아니라 남한에게도 일종의 ‘지렛대’이기도 하지만 ‘부담’이다. 남북한 모두는 중장기 국가대전략의 구상과 실천에서 중국을 일차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한국 정부가 구상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실제로 추진될 수 있도록 미국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을 설득하려고 하였던 한국 정부의 노력이 2017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작동하였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 문제가 본격적으로 해결되는 단계에 접어들면 한반도 주변국들의 개입은 훨씬 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문제의 국제적 성격이 부각되면서, 주변국들의 국가대전략들은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또한 남북한 사이의 긴밀한 협력과 ‘실질적 통일’을 견제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당연히 한국 정부가 주변국들의 국가이익을 조정해 내는 외교적 역량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주변국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라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불확실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사실 한반도 분단의 역사에서 남북한 사이의 상호 신뢰와 협력은 언제나 ‘이상’이었지 ‘현실’이었던 적이 없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남북한 사이에서 신뢰와 협력의 필요성은 높아지지만 동시에, 반대로, 신뢰와 협력의 현실성은 낮아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남북관계의 먼 미래에 대한 깊은 논의와 이해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몇 차례 합의되었던 통일의 원칙과 방향은, 그리고 그러한 합의의 실현과 관련한 방안과 과정의 구체화는 여전히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남북한 사이의 신뢰와 협력이 강화되어야만, 남북한은 주변국들이 야기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불확실성을 이겨내고 분단 극복의 실질적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운명공동체’와 한국 정부의 과제
 
남북한 정상이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남북한과 미국의 공동 노력을 통해서 진전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세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에서부터 합의하고 출발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 모두가 각 국가들의 내부협상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정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일종의 ‘정치적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운명공동체로서 세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은 대내·외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는 협상 과정과 결과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해석 정치’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당분간 결정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는 데에서 주도적 역할을 성공적으로 맡아온 한국 정부는 향후 몇 가지 과제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어느 정부에서나 그리고 어느 정책 분야에서나 지적되는 사항이기도 하지만, 평화 프로세스가 본격 단계에 접어들기 전에 대북·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추진 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효율성·안정성 차원에서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을 포함하여 주변국에 대한 공식·비공식 외교를, 특히 여론의 변화에 민감하게 작용할 수 있는 공공외교를 폭넓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끝으로, 한국 사회 내부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사회적 지지 기반이 강화될 수 있도록 당파적이거나 정쟁적 성향을 띤 ‘정책 홍보’가 아니라 시민참여적인 ‘정책 소통’을 확대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향후 남북경협의 본격화 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하게 될 ‘대북·통일정책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노력에 한층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이러한 과정과 대안에 대한 해설로는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ifes.kyungnam.ac.kr)의 시리즈 중 ‘평양정상회담 특집 1~4’, 세종연구소(sejong.org)의 <정세와 정책> 시리즈 중 평양정상회담 및 한미정상회담 관련 분석들, 통일연구원(kinu.or.kr)의 <현안분석> 시리즈 중 남북정상회담 관련 분석 등을 참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