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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의 경제에세이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유종일의 경제에세이입니다.


[6]경제에세이: 재정에 관한 열 가지 거짓말과 두 가지 진실(3부)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4-16 16:11:26
  • 조회수 : 2286

(경제에세이 4, 5에서 다룬 재정에 관한 쟁점들을 마무리하는 글이다. 재정에 관한 열째 거짓말과 두 개의 진실, 그리고 맺음말로 이어진다.)
 

 

열째 거짓말: 정부부채와 후손들의 부담 

 

단기적인 재정건전주의를 반대하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옹호하는 것이 결코 정부부채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은 긴요하다. 정부부채의 증가는 경제에 여러 가지 부담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부채가 초래하는 위험과 부담은 경우에 따라 다르고 주의 깊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반면 적시에 필요한 적자재정은 경기를 부양해서 경제성장을 돕고 자본축적을 제고하여 미래의 생산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 이런 긍정적 효과는 무시하고 부정적 효과는 과장하여 재정적자에 반대하는 것은 보수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논리다. 미국 공화당이 미국을 소위 “재정절벽(fiscal cliff)”으로 몰아넣으며 재정적자를 반대한 것은 결국 복지를 삭감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빚쟁이가 빚이 너무 많아져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파산하고 만다. 이런 논리로 정부도 채무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부도 위험이 증가하면서 재정위기가 올 수 있다. 하지만 자국화폐로 국채를 발행하면 부도가 날 위험은 전혀 없다. 화폐를 발행해서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1)  일본의 경우를 보면 GDP 대비 정부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도 불구하고 매우 낮은 금리가 유지되고 있으며 재정위기나 외환위기의 조짐이 전혀 없다. 반면 일본보다 GDP 대비 정부부채의 규모가 훨씬 작은 남유럽 국가들은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으며, 과거 남미 등 여러 개도국에서는 뼈아픈 외채위기를 겪어야 했다. 유로존의 일부인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화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으며, 남미 등 개도국들은 외화로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인이 가장 재정적자를 반대하며 가장 즐겨 쓰는 논리는 정부부채의 증가는 후손들에게 채무상환의 부담을 물려주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흥청망청 돈을 쓰고 그 부담을 후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호소력 이 있는 주장이지만, 논리적으로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엉터리다. 이 주장이 호소력이 강한 까닭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도덕적 어필까지 있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 돈을 쓰면 나중에 빚 갚는 부담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터이고, 그 부담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부모는 더더욱 없을 터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개인의 사례를 시스템에 적용하여 발생하는 오류다. 우선 정부부채는 꼭 갚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기업도 사정이 어려워지지 않는 한 부채를 갚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출과 채권이 만기가 되면 자동적으로 재대출과 재발행을 하게 된다. 정부는 부도가 날 우려가 없기 때문에 (외화채무가 아닌 한) 당연히 국채 재발행이 가능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설사 정부가 추후에 채무를 줄이기 위해 일정부분 상환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후대의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채무상환 자금조달을 위한 세금을 부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세금은 채권을 소유한 자들에게 되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채권상환 시점의 세대 안에서 그 세대 전체의 소득이 줄어드는 일은 전혀 없다. 

 

물론 정부가 채무상환을 전혀 하지 않더라도 정부부채의 증가에 따른 이자비용의 증가는 피할 수 없다. 이는 분명 재정에 부담이 된다. 하지만 세금으로 조달하는 이자비용 역시 채권소유자에게 동일한 금액의 이자소득으로 돌아가므로 이는 후대의 부담이 아니다. 마치 한 집안 내에서 형제간에 발생한 채권-채무 관계가 미래에 그 집안의 소득 전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부채가 후대에 빚 상환이나 이자지급의 부담을 물려주는 일이라는 주장은 얼핏 듣기에는 그럴 듯 해도 논리적으로는 완벽한 오류에 불과하다. 

 

정부부채가 정치인들이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부담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은 사실이다. 첫째는 경제학자들이 사중손실(deadweight loss)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국채이자를 세금으로 조달하기 위해 세율이 올라가면 이에 따라 경제적 유인(incentive)이 왜곡되어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런 손실의 실제 크기는 미미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는, 소득분배효과다. 국채보유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투자처가 생김으로써 전반적으로 좀 더 유리한 투자의 선택이 가능해졌을 것이다. 국채보유자들은 대개 부자들이므로 그만큼 부자들에게 유리한 재분배가 일어난 것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자금조달을 한 경우와 이들에게 국채를 팔아 자금조달을 한 경우를 비교하면 소득분배효과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어쨌든 정부부채의 증가가 후손들에게 빚을 물려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첫째 진실: 돈을 함부로 쓰면 망한다


정부 재정에 관한 견해들을 일별해보면, 진보적인 입장은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복지를 확대하고 소득재분배를 추구하며 경기조절에 나서자는 것이고, 반면 보수적인 입장은 이에 반대하고 정부의 기능을 축소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재정에 관한 열 가지 거짓말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보수적인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짓이나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진보적인 입장에서도 거짓과 오류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이 기본적으로 복지가 되었건 경기부양이 되었건 정부가 돈을 쓰는 일들을 옹호한 것이었기에, 그렇다고 해서 돈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써도 괜찮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만일 재무부가 낡은 병에 지폐를 가득 채워서 사용되지 않는 폐광에 묻고 도시 쓰레기로 덮은 후에 입찰에 성공한 민간 기업이 그 지폐가 담긴 병을 파내게 하면 실업은 없어지고, 그 영향으로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며 사회의 부도 휠씬 커질 것이다.”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것도 실업해소와 소득창출에 유용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어서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유효수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론적 주장이지 실제로 이런 정책을 제안한 것은 결코 아니다. 케인즈는 심각한 경기침체와 실업문제가 존재할 때만 이런 주장이 성립한다는 토를 달았을 뿐만 아니라 낭비적인 지출보다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지출을 선호했다. 낭비적 지출이라도 일시적인 부양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경기회복 이후에 나타나는 사후효과까지 따져보아야 한다. 재정지출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인프라나 주택 건설 혹은 에너지 절감 시설에 투자했다면 사후효과는 플러스일 것이다. 지폐를 땅에 묻었다 파내는 케인즈의 예시와 같은 경우에는 사후효과가 제로이므로 전자에 비해 분명 낭비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재정지출을 잘못하여 네거티브 사후효과를 초래하는 경우다. 이 경우, 일시적 경기부양 효과는 거두었을지 몰라도 두고두고 비용을 치러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다. 이 사업에는 22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었으나 고용효과가 미미하였기에 현명한 부양정책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어쨌든 일정한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 사업이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커다란 네거티브 사후효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박창근 교수의 계산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 5년간 수질관리 비용만 20조 원이 들고, 사업의 여러 가지 부작용을 바로 잡으려면 무려 65조 원이 필요하단다.2)  경제성은 전혀 없고 유지관리에 돈만 들어가는 지방공항이나 경기장 시설 등도 네거티브 사후효과의 비근한 사례다.  

 

재정지출을 잘못해서 두고두고 비용을 치르는 일은 복지정책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필자는 앞선 글에서 ‘복지병’을 허구로 만드는 것은 효율적인 복지제도 설계임을 강조한 바 있다. 복지지출이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검증한 린더트(Peter H. Lindert)는 그 까닭이 복지국가들이 복지제도를 만들 때 근로유인을 왜곡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3)  만약 복지가 근로유인을 파괴한다면 이는 두고두고 경제의 효율을 갉아먹고 사회적 낭비를 초래할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로, 배급제가 실행되는 북한에서 노동효율이 낮은 것을 생각하면 된다. (필자는 북한에서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영부영 하는 철로 부근 작업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복지’를 획일적 복지로 오해함으로써 근로유인을 파괴하는 나쁜 복지제도가 퍼지고 있으니 걱정이 크다. 대표적인 것이 무상보육정책이다. 스웨덴을 비롯해서 모든 복지선진국들이 보육지원을 모(母)의 취업여부와 부모의 소득수준에 연계하고 있으나, 우리는 그야말로 획일적으로 무상보육을 제공한다. 그러다 보니 보육시설에서는 취업모의 아이들에 비해 늦게 맡기고 일찍 찾아가는 전업주부의 아이들을 선호한다. 보육지원이 여성고용을 돕는 정책이 아니라 이를 차별하고 억제하는 정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영아(0~2세)를 둔 여성의 어린이집 이용률이 취업률보다 높은 OECD 유일의 나라가 되었다.4)  이외에도 무상보육제도의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으나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효율적인 제도설계보다 지원확대에만 관심을 가지는 형국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도 근로를 통한 빈곤탈출을 억제하는 심각한 문제를 가진 채로 14년간 운영이 되었으나 최근 개편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곧 이들의 지출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함부로 돈을 쓰면 나라는 망한다. 무조건 복지를 확대하면 좋다는 사고방식은 거꾸로 복지확대에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을 중시할수록 이들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제도를 효율적으로 설계하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둘째 진실: 재정건전성의 중요성


앞선 글에서 필자는 정부의 부채가 후손에게 빚을 물려주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바 있다. 한편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부자감세 등 무책임한 재정정책으로 정부부채를 급증시킨 것을 비판한다. 모순 아닌가? 세 가지 이유에서 모순이 아니다. 

 

첫째는 조세저항이다. 정부부채의 증가는 이자비용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만큼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납세자에게 세금을 걷어서 국채소유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세대 내의 이전이지 세대 전체에 부담을 주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납세자 입장에서 세금을 더 내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조세행정의 투명성과 조세제도의 형평성이 부족하고 정부 지출의 효율성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이기 때문에 조세저항이 매우 강하다. 더구나 부유층에 집중되어 있는 국채소유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는다면 저항은 더욱 거셀 것이다. 이런 조세저항으로 세금인상이 어려워지면 결국 복지를 비롯하여 다른 긴요한 재정지출이 삭감될 수도 있다. 

 

둘째는 미래의 위기에 대한 대처능력이다. 이미 재정이 악화된 상태에 있으면 재정정책을 활용하여 경제위기에 대처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기존의 정부부채가 적을 경우에는 필요에 따라 과감한 국채발행과 적자재정 편성을 부담 없이 할 수 있지만 이미 정부부채가 많은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GDP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향후 복지수요의 증가와 통일비용에 대비할 필요도 있어서 주의를 요한다.


셋째는 국채의 상당부분을 외국인이 소유하는 경우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외채로 조달했다는 뜻이다. 이 경우에는 정부부채 증가가 실제로 후세대의 부담이 된다. 외국인에게 이자지급과 원금상환을 하는 것은 세대 내 이전이 아니고 이를 감당하는 세대의 소득을 줄여 외국인에게 소득을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담이 커지면 실질적인 부도위험을 낳게 된다. 물론 원화표시 국채인 경우에는 언제라도 통화증발로 채권상환을 할 수 있으니 여전히 기술적인 의미에서 부도위험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입장에서 원화의 통화증발이 예상되면 이에 따른 원화가치 하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원화표시 국채를 투매할 것이고, 이는 곧 국채가격의 하락 즉 국채금리의 상승과 환율 상승을 촉발한다. 실질적으로 부도 위험이 증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장의 우려가 충분히 크면 금리와 환율이 급등하면서 금융위기를 촉발한다.  

 

만약 국채가 외화표시로 발행되었다면 통화증발로 갚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질 수 있다. 시장에서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높다고 보면 국채금리가 상승할 뿐만 아니라, 외국자금이 빠져나가고 환 투기가 일어나면서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세계에서 GDP대비 정부부채가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자국화폐로 발행한 국채의 대부분을 자국민이 보유하고 있어서 부도위험이 없는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여전히 첫째와 둘째 문제는 존재한다. 일본은 조세저항과 정치력 부족으로 매년 엄청난 적자재정을 꾸리면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복지가 부실하다.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지 못하고 브레이크가 걸린 중요한 이유는 소비세 인상이었는데, 아베 정권이 초기의 재정팽창 기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소비세를 인상한 것은 이미 과도하게 늘어나있는 정부부채 때문이었다.  

 

2001년 극심한 외환위기를 겪은 아르헨티나를 비롯해서 과거에 여러 개도국들이 재정위기와 외환위기를 겪었는데, 위의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개도국들의 경우에는 설사 자국화폐로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이를 외국인이 직접 보유하거나 혹은 외국인이 국채를 보유한 국내은행에 대출을 해주는 등 간접적으로 보유할 때 급격한 자본유출에 의한 재정위기와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2010년 이후 불거진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도 이에 해당한다.5)  

 

그런데 미국의 경우는 확실히 예외다. 미국은 GDP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100%를 훌쩍 넘고 누적 경상수지 적자도 매우 크다. 그 결과 중국, 일본, 산유국 등 외국에서 미국의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낸 재정절벽(fiscal cliff) 문제를 차치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채 투매에 의한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발행하는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달러화 표시 미국 국채는 안전자산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이를 투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이 아니더라도 경제력이 크고 자국화폐가 국제통화로서의 지위가 강하면 그만큼 국채투매와 이에 따른 위기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는 우리에게 금리인상과 재정긴축, 그리고 급격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2008년 월가가 위기에 빠지자 미국정부는 이와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다. 미국처럼 거대한 경제력과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국채투매에 대한 우려 없이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에 맞서기 위해 팽창정책을 실시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그렇지 못한 경우에 팽창정책은 자칫 자본유출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비대칭 현상이 발생한다.6)  경제력이 강한 나라는 편리하게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있지만 경제력이 약한 나라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정부부채 누적에 관한 우려는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경기부양이 당장에 급박한 상황에서 적자재정을 반대하는 것은 여전히 잘못이다.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은 호경기 시에 흑자재정을 편성해서 달성해야지 불경기 시에 적자재정을 회피해서 달성할 일은 아니다.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안타깝게도 경제학은 아직 경험적 과학으로써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완벽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고, 경제현실은 워낙 많은 변수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핑계거리는 무수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 이론에는 이해관계, 이데올로기, 정치적 편향, 통속적 편견 등이 개입될 가능성이 많다. 특히 재정문제는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이어서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실과 논리의 왜곡이 난무한다. 

 

그렇다고 해도 경제이론이 아주 쓸모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현실을 비교적 잘 설명해주는 이론들도 많이 개발되어 있다. 편향과 편견을 떨쳐내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을 바라보며, 엄밀하게 논리를 펼친다면 진실의 언저리에는 다가갈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재정문제가 첨예한 정치이슈가 되어 있다. 부자증세와 서민증세 등 조세정책,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 복지정책, 기초노령연금과 공무원 연금 등 연금정책 등이 다 논란거리다. 이런 논란이 정치적 힘 겨루기에 그치지 않도록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 객관적인 분석과 현명한 대안들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진지하고 과학적인 공론의 장을 키워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1) 화폐증발로 국채를 상환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화폐증발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심지어 초인플레이션으로 경제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단지 자국화폐로 발행한 국채에 대해서는 부도위험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지적할 따름이다.

2) 박창근, “맨얼굴의 4대강 사업”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기획, , 알마, 2015).

3) Peter H. Lindert, Growing Public: Volume 1, The Story: Social Spending and Economic Growth since the Eighteenth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4) 윤희숙 외, “보육•유아교육 지원에 관한 9가지 사실과 그 정책적 함의”, KDI FOCUS 2013년 8월 20일(통권 제34호).

5) 이들은 유로화를 쓰기 때문에 유로화표시 국채가 자국화폐표시 국채라고 할 수 있지만 유로화는 한 나라가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니고 유럽중앙은행이 발행하기 때문에 외화표시 국채와 유사한 효과를 가진다.

6)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정부부채가 매우 낮았고, 경상수지 적자도 크지 안았기 때문에 IMF가 요구한 과도한 긴축정책은 분명히 잘못된 처방이었다.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2015.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