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프로그램

유종일의 경제에세이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유종일의 경제에세이입니다.


2017[1]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제1부)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1-24 10:42:06
  • 조회수 : 341

지난해에 열린 리우 올림픽에는 206개국에서 10,500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서 투혼을 불살랐다. 금메달은 모두 306개가 수여되었다. 축구나 농구와 같은 단체 종목들을 감안하더라도 아마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500 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금메달을 딴 선수가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을 보는 순간 필자는 당황스러웠다. 그러면 메달을 따지 못한 대다수의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는 과연 다른 선수들보다 더 노력했고 그 결과 더 실력이 뛰어나서 금메달을 딴 것일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도 있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하고 더 뛰어난 실력을 지녔으면서도 운이 없어서 탈락한 선수들도 있지 않을까? 인터뷰를 한 선수는 아마도 후배 선수들과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선한 뜻으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은 자칫 성공한 자의 자만이 될 수 있고, 실패한 자의 가슴을 후벼 파는 요설이 될 수 있다. 과연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이고, 사회는 이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분배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앞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데 운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 살펴보고, 사회는 어떻게 운에 따른 불평등을 관리해야 하는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1. 어느 CEO의 야릇한 이혼소송과 ‘행운의 보수

 
작년에 벌어진 미국의 석유재벌 해롤드 햄(Harold Hamm)의 이혼소송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우선 다투는 돈의 액수가 엄청났다. 그의 재산은 180억 달러나 되었는데, 이혼의 대가로 약 10억 달러를 받은 전 부인과 그 금액의 적정성을 놓고 다투었다. 그런데 이 소송이 더욱 특별했던 것은 양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였다. 햄은 자기가 설립하고 경영한 석유회사의 성공은 거의 운에 따른 것이었고, 자신의 노력과 능력은 기껏해야 5~10% 정도밖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석유산업과 관련된 공학적 지식도 전혀 없었고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반면에 전 부인 측은 햄이 회사의 전략과 운영 및 재무에 관한 중요 결정을 직접 내렸으며 햄의 회사가 동 업종의 다른 회사들보다 실적이 더 좋았다는 사실을 들어 회사가 성공한 것은 90% 이상 햄의 덕분이었다고 반박했다. 돈을 번 당사자는 자기가 잘해서 번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그와 다투는 상대방은 당신이 잘해서 돈을 번 것이라고 주장하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 일부 주의 이혼법에 의하면 결혼 전에 소유한 재산의 가치가 소유주의 노력과 무관하게 ‘수동적으로’ 증식된 부분에 대해서는 재산분할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의 CEO들이 회사가 잘나갈 때 이를 자신들의 업적이라고 주장하며 천문학적 보너스를 받았다는 소식은 흔히 접하지만, 자신이 경영한 회사의 성공은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단지 행운이었다고 주장하는 CEO의 이야기는 흔치 않다. 물론 CEO들이 운의 역할을 항상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는 많은 CEO들이 이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시장상황을 탓하곤 한다. 대부분의 CEO들은 잘되면 내 덕이고, 잘못되면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부류다. 우리 속담에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태도는 사실 상당히 보편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CEO들의 주장과는 별개로 실제로 회사 실적을 결정하는 데 운과 실력은 각각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이는 분배의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들이 받는 엄청난 보수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매기는 것은 어떤 효과를 나타낼까? 만약 회사의 성과가 CEO의 특별한 능력과 노력 덕분이었다면 높은 보수는 정당한 것이고, 이들에 대한 과도한 세금은 이들이 열심히 일할 유인을 감소시킴으로써 회사와 경제전체의 가치창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역임한 하버드 대학의 보수적 경제학자 그레그 맨큐(Greg Mankiw)가 “1%를 위한 변호”라는 글에서 주장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1) 하지만 회사의 성과가 운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면 과도한 보수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높은 세금도 정당화될 것이다.


위의 이혼소송에서 판사는 햄의 손을 들어주었다. 햄이 설립하고 운영한 회사가 번 돈은 햄의 능력과 노력보다는 행운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회사로부터 받은 수처만 달러의 보수는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판결은 그랬다. 아마도 그가 가진 돈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햄이 행운으로 돈을 번 것이라는 판결에는 나름 학문적 근거가 존재한다. CEO의 보수가 주로 운에 의해서 결정되는 현상을 가리켜 ‘행운의 보수’라고 부른다. 이는 다음과 같이 엄밀한 연구에 의해 확인되었다.2) 우선 개별기업들의 매출액 증가나 이익 등 다양한 성과지표를 전반적인 경제상태, 원자재 가격, 환율변동, 동종업종의 다른 기업들의 평균적 성과 등 외부여건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과 그 나머지 부분으로 나눈다. CEO가 영향을 미친 것은 기껏해야 후자일 따름이다. 따라서 만약 CEO의 보수가 그들의 가치창출 혹은 경제적 기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면 기업 외부 여건과는 상관이 없어야 하고 나머지 부분, 개별기업에 고유한 요인에 의해서만 좌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경영진의 보수가 가장 빨리 증가하는 경우는 기업고유의 요인에 의한 성과가 높을 때가 아니라 시장여건이 좋아서 기업이 잘나갈 때다. 더군다나 운이 좋을 때는 보수가 오르지만 운이 나쁠 때는 보수가 줄지 않는 비대칭 현상도 발견되었다.3) 잘되면 내 덕이고, 잘못되면 불운 탓이라는 CEO들의 주장이 실제로 먹힌다는 얘기다.

 

 

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세상일에는 운도 작용하고 실력도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일의 성격에 따라 운과 실력이 미치는 영향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순전히 운에 따른 것이고, 바둑 대국의 결과는 실력에 의해 거의 결정된다. 평범한 사람이 알파고에게 이기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이세돌 9단마저도 알파고에게 실력이 모자랐다. 하지만 다섯 판 중 한 판은 이겼다. 스포츠의 경우 실력이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흔히 “공은 둥글다”고 말하는 것처럼 막상 게임을 하면 객관적 전력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실력 차이가 클수록 이변이 발생할 확률은 작지만, 대다수 게임에서 의외의 결과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마이클 모부신(Michael Mauboussin)이라는 투자전략가는 투자나 스포츠 등에서 운과 실력의 상대적 영향에 관심을 두고 분석을 했다.4) 그는 특히 스포츠에서 종목별로 운과 실력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자세한 분석을 했는데, 농구의 경우 90% 가까이 실력에 의해 결정되며 아이스하키는 운이 50% 이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축구와 야구는 실력이 70%, 운이 30% 정도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 분석인데, 놀라운 것은 주식투자의 경우다. 모부신에 따르면 투자에 성공하는 것은 운이 90% 정도 작용하고, 실력은 10% 정도밖에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지노에서 돈을 버는 것은 거의 99%가 운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주식투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일찍이 경제학의 대가이자 주식투자의 달인이었던 케인즈가 주식시장을 카지노에 비유하며 한 나라의 자본 형성이 투기적 주식시장에 의존하는 것을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 그의 직관이 옳았음이 입증된 셈이다.5) 


투기적 금융에 의존한 비합리적 자원배분을 비판한 케인즈와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금융시장은 모든 관련 정보를 반영하여 가격을 정확하게 결정한다는 ‘효율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을 따르더라도, 투자의 성패는 실력이 아니라 운이 결정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내부자 정보에 입각해 불법적인 거래를 하지 않는 한 가격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기 때문에, 애초에 ‘실력이 좋은 투자자’란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이 가설의 창시자인 시카고 대학의 유진 파마(Eugene Fama) 등의 연구에 의하면 투자의 고수라는 적극적 펀드 매니저들의 평균적인 성과는 시장상황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주가지수 펀드의 수익률을 넘지 못하며, 고율의 운용보수를 빼고 나면 적극적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고 한다. 물론 수익률이 높은 펀드와 낮은 펀드가 있지만, 이는 대부분 운에 따라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이고 실제 실력으로 고수익을 실현한 경우는 약 2.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6) 게다가 한번 실적이 좋았던 펀드가 계속 좋은 실적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평균회귀 경향을 보인다.7)


세상일이 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얼핏 생각하기에 나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능력과 노력에 관계없이 운에 따라 성패가 갈리면 뭔가 부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아가 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능력을 계발하고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진다. 순전히 운으로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노력과 성과 여부와 무관하게 똑같이 분배하는 사회주의 못지않게 부당하고 비효율적인 처사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이상이다. 공직의 배분과 경제적 보상의 분배가 능력과 노력에 따라, 기여와 공헌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정의롭고 효율적이라는 믿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운이 지나치게 크게 작용하는 사회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운이 전혀 작용하지 않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 스포츠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연적인 요소가 전혀 없어서 객관적인 전력에 의해 승패가 완전히 결정된다면, 관중들이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지켜보는 스릴과 재미는 사라질 것이다. 멋진 슈팅이 불운하게도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고, 홈런성 타구가 바람의 영향으로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기도 하는 것이 스포츠의 묘미다. 이변이 없는 월드컵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로또나 카지노는 중독이 되거나 과도하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 우연이 만들어내는 재미의 일종이다.


운의 긍정적 기능은 또 있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완벽한 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처지는 끔직한 것이다. “운이 나빴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자위를 할 수도 없다. 자책감과 자괴감을 피할 길이 없다. 다음에는 혹시 잘 될까 하는 기대도 할 수 없다. 자기 분수를 알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는 말은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말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지금은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있는 루이지 징갈레스(Luigi Zingales)는 ‘인민을 위한 자본주의’라는 저서에서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8) “어떤 공포가 밀려왔다. (이탈리아의) 부패한 시스템 하에 살 때는 내가 무슨 일에 실패하면 설사 그것이 내 책임일지라도 언제나 시스템을 탓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핑계거리가 없으니,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이렇게 보면 우연과 운의 존재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는 분명 존재이유가 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것이 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특히 시장경제에서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것은 경제적 보상이 능력과 노력에 비례하여, 가치창출에 기여한 바에 비례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다. 만약 시장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그로 인한 불평등이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는 저급한 ‘카지노 자본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에서는 열심히 노력할 까닭이 없어진다. 운과 실력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한데, 그 황금비율은 얼마일까?

 

 

3. 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


포송령(蒲松齡)의 《요재지이(聊齋志異)》느 중국 괴이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여기에 한 선비와 옥황상제가 등장하는 신기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9) 이 선비는 자신보다 변변치 못한 자들은 버젓이 과거에 급제하는데, 자신은 늙도록 급제하지 못하고 패가망신하자 옥황상제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물었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에게 술내기를 시키고, 만약 정의의 신이 술을 많이 마시면 선비가 옳은 것이고, 운명의 신이 많이 마시면 세상사가 그런 것이니 선비가 체념해야 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내기 결과 정의의 신은 석 잔밖에 마시지 못하고,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이나 마셨다. 옥황상제는 세상사는 정의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장난에 따라 행해지되, 3할의 이치도 행해지는 법이니 운수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 선비를 꾸짖고 돌려보냈다.


인생사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데는 운과 실력의 역할이 7 대 3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아마도 ‘운칠기삼’은 수많은 직간접 경험 속에서 얻어낸 통계학적 추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옛날 중국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적용이 될까? 추석을 맞아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스톱을 칠 때야 흔히 ‘운칠기삼’을 말하지만, 치열한 경쟁에 의해 성패가 결정되는 시장경제에서도 과연 이 말이 적용될까?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강조하는 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실력과 노력을 보상하는 시스템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만들어 팔든지, 많은 기업들이 원하는 역량을 획득하여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고부가가치 노동을 파는 것이 시장경제에서 성공하는 길 아니던가?


이미 CEO들의 ‘행운의 보수’ 현상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업의 성패는 운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 된다. 사업가들이 점을 보러 가는 경우가 흔한데,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고 운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점을 본다고 운을 미리 알거나 운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에서 일군의 사회학자들이 흥미로운 연구를 통하여 고도로 발달된 시장경제에서도 사업의 성패가 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밝혀냈다.10) 사전에 전문가들의 평가를 통하여 상품의 질을 판단한 다음에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지 실험을 했다. 최고의 상품이 전혀 뜨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는 경우도 있고, 최악의 상품이 우연히 떠서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으며, 보통 품질의 대다수 상품은 거의 운에 의해서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과였다. 가히 ‘운칠기삼’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시장경제에서 운이 크게 작용하는 까닭은 최초 몇몇 소비자들의 반응이 이후의 소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최초의 소비자들이 마음에 들어 하고 입소문을 좋게 내주는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 입소문이 누적되면서 다른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영화의 흥행은 전문가들도 예측하기가 어려워서 큰돈을 투자했다가 낭패하는 경우도 많고, 투자를 받지 못하여 쩔쩔매다가 저예산으로 만들었는데 대박을 터트리는 경우도 있다. 입소문을 예측하기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처음에는 작은 차이였던 것이 점점 커져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마태효과(Matthew Effect)라고 한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마태복음 25장의 구절을 빗댄 것이다.


수많은 상품을 취급하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대기업의 경우에는 좋은 운과 나쁜 운이 수없이 교차할 터이고, 따라서 펀드 매니저의 수익률처럼 대기업의 성과도 일정하게 평균회귀 경향을 보일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Good To Great”나 “Built To Last”같은 경영학 베스트셀러들이 찬양한 회사들의 실적을 추적한 연구가 있다. 이에 따르면 대단한 경영전략이나 기법 덕분에 성공한 것으로 거론된 회사들의 무려 88%가 나중에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 회사들의 성공 요인은 특별한 경영기법이라기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었고, 이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평균회귀 경향을 보인 것이다. 이 회사들의 강점이 마침 큰 힘을 발휘하는 환경을 만났던 것뿐인데, 경영학 서적들은 성공의 비결을 기어코 찾아내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모든 사건들에 대하여 무언가 그럴듯한 설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합리화의 욕구는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이다. 사후적 설명은 언제나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대부분 엉터리로 지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언론에서는 매일매일 주식시장의 변동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조금만 추적해보면 똑같은 이유로 주가가 올랐다고도 하고 내렸다고도 하고 말장난 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왜 그렇게 유명해졌을까? 미술평론가들이 모나리자의 위대성을 이러쿵저러쿵 설명하지만 사실 모나리자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혀 유명하지 않았다. 모나리자가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1911년 루브르에서 일하던 한 이탈리아인 인부가 이 그림을 훔쳐서 이탈리아로 도망간 사건이었다. 범인은 이년 후 플로렌스의 화랑에 그림을 팔려다가 검거되었는데,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은 범인이 모나리자를 고국으로 되찾아오려고 한 애국자라며 칭송했고 프랑스 사람들은 이에 분노했다. 이 사건이 그림의 사진과 함께 전 세계의 신문에 실리면서 모나리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그림이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루브르를 찾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나리자 앞에 모여들었다. 모나리자는 유명해졌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다.


우리는 운의 역할을 인정하기보다는 그럴듯한 논리로 사후합리화하기를 좋아하지만, 옥황상제의 말처럼 세상일에는 운이 크게 작용한다. 시장에서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4. 승자독식 경쟁과 운의 비중


운의 역할을 강조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섭섭해 할 수도 있다. <성공과 행운>이라는 책을 쓴 로버트 프랭크라는 경제학자는 스스로가 엄청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11) 기적과 같은 행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것만 두 번이며, 그가 코넬대학의 경제학과 교수가 된 것도 너무나 우연한 행운의 결과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운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는 주장을 을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몹시 화를 냈다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다. 이들의 성공에 운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는 것은 성공의 가치와 자신들이 누리는 보상의 정당성을 폄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설사 성공한 사람들 모두가 대단한 재능과 각고의 노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누구나 재능이 있고 노력을 기울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 못지않은 재능과 실력을 갖추고 그들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이고서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과 실력, 그리고 노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 필요조건을 충분조건으로 전환시켜주는 추가요소가 바로 행운이다. 

 

표준적인 경제이론에 의하면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완전경쟁에 가까워져서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완전경쟁 하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고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비례해서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완전하게 공유된다는 전제를 포함해서 완전경쟁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성립되기는 어렵다. 특히 막대한 자본과 특별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들의 경우에는 경쟁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가 제한되어 독과점시장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럴 때 독과점 기업은 시장권력(market power)과 이에 기초한 초과이윤, 즉 능력과 노력에 비례하는 것 이상의 보상을 누리게 되는데, 이러한 문제는 표준적인 경제이론에서 많이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경쟁참여자의 숫자가 많더라도 완전경쟁의 이상과는 매우 다른 경쟁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현실의 시장경쟁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뚜렷이 갈리고, 성패에 따라 보상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경쟁구조를 흔히 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완전경쟁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승자독식’ 경쟁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경쟁이 좋은 예다. 아무리 많은 선수들이 경쟁하더라도 금메달을 따는 선수는 단 한 명으로 정해져 있고, 승자와 패자에 대한 보상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현실 경제의 시장경쟁은 완전경쟁과 승자독식 경쟁의 중간 어디엔가 위치하며,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지는 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승자독식 경쟁은 독과점으로 귀결된다.


프랭크는 승자독식 경쟁에서는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으면 운의 역할이 의외로 커진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여주었다.12) 10만 명이 경쟁하여 가장 우수한 성과를 거둔 한 명만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게임이 있다고 하자. 각 개인의 성과는 능력과 노력이 각각 49%, 그리고 운이 2%만큼 작용하여 결정된다고 가정한다. 각 개인의 능력과 노력, 운은 1부터 100 사이의 숫자 중에서 무작위로 추출하여 결정한다. 이 게임을 여러 번 반복했을 때 승자의 평균적인 운 점수는 90.23이었다. 각 개인의 성과에 미치는 운의 영향은 미미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할 때 능력과 노력의 점수가 최고점에 가깝게 높은 사람들만 해도 여럿이 있기 때문에 운이 매우 좋지 않고서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더구나 78.1%의 승자는 능력과 노력의 합계점수가 최고점이 아니었다. 운 점수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더 높은 능력과 노력 점수를 얻은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랭크의 시뮬레이션은 경쟁자의 수가 많을 때는 실력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실력은 전혀 없이 운만으로 성공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승자의 숫자가 제한된 상태에서 경쟁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운의 역할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근래에 시장경쟁의 구조가 갈수록 승자독식의 형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프랭크는 시장경쟁의 양상이 갈수록 승자독식이 되어감에 따라 성공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쟁구조의 승자독식화 경향에는 디지털 기술과 세계화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음악을 들으려면 콘서트에 직접 가야했고, 이는 곧 수많은 지역 음악시장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시장을 나누어가졌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레코드가 나오면서 콘서트에 가지 않아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자 실력이 뛰어난 음악인들의 연주가 전체 음악시장의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지역 음악인들의 시장은 축소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녹음의 질이 고도로 높아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훨씬 심화되었고, 갈수록 소수의 음악인들이 음악시장을 장악하는 승자독식 현상이 나타났다.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선수의 연봉이나 골프선수의 상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도 이들의 빼어난 솜씨를 전 세계의 팬들이 고화질 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하게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제도와 정책이 승자독식을 억제하기는커녕 이를 조장해온 것도 사실이다.


시장경쟁이 갈수록 승자독식 양상을 띠면서 각 분야에서 최고수준에 이른 자들 가운데 운이 좋은 소수가 너무나 큰 보상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근래에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과정에서 운의 역할은 점차 커지고 있다.​

 

1) N Gregory Mankiw, "Defending the One Percent."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7(3): 21-34, 2013. 

2) Marianne Bertrand and Sendhil Mullainathan, "Are CEOs Rewarded For Luck? The Ones Without Principals Ar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August 2001.

3) Garvey GT, Milbourn TT (2006) “Asymmetric benchmarking in compensation: Executives are rewarded for good luck but not penalized for bad.“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82(1):97–225.

4) Michael Mauboussin, The Success Equation: Untangling Skill and Luck in Business, Sports, and Investing.

5) John Maynard Keynes,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월가를 비롯한 금융자본의 투기적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케인즈의 카지노 자본주의에 관한 경고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6) Eugene F. Fama and Kenneth R. French, “Luck Versus Skill In The Cross-Section Of Mutual Fund Returns," Journal of Finance, Vol. LXV, No. 5, October 2010.

7) Burton Malkiel,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 The Time-Tested Strategy For Successful Investing, W. W. Norton & Company, 1973.

8) Luigi Zingales, A Capitalism for the People: Recapturing the Lost Genius of American Prosperity, Basic Books, New York, 2012.

9) 두산백과

10) Duncan J. Watts, Everything is Obvious: Once You Know the Answer, Crown Business, 2011. Watts는 이 책에서 Matthew Sagalnik, Peter Dodds와 함께 수행한 실험의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11) Robert H. Frank, Success and Luck: Good Fortune and the Myth of Meritocrac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6.

12) i bid. Appendix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