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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제2부)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2-08 14:11:44
  • 조회수 : 466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제2부)

 

이제까지는 순전한 우연으로서의 운과 실제로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실력이라는 두 가지 성공의 요소가 어떤 비율로 작용하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운과 실력이 반드시 완벽하게 독립적인 요인들은 아닐 수 있다. 살다보면 운이 좋아 성공한 사람들 중에 “운도 실력이다”라며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짜 따지고 보면 “실력도 운이다”라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실력이 좋아서 우연으로서의 운이 좋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연히 운이 좋아서 실력이 좋아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운에 의해 실력이 좌우되는 경로들을 살펴보고 그 사회적 의미를 짚어보자.

특별한 기회라는 행운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는 빌 게이츠나 비틀즈와 같이 각자의 분야에서 특출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일반적인 성공담과는 매우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1)  글래드웰은 탁월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어떻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그들의 특별한 재능과 각고의 노력으로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는지 얘기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성공의 비밀을 알아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공은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숨겨진 이점과 기막힌 기회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재능과 노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실력이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키우는 과정에 알게 모르게 운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스포츠 종목인 아이스하키의 경우 엘리트 선수들의 생일을 살펴보면 40% 정도가 1월에서 3월 사이에 태어났고, 30% 정도가 4월에서 6월 사이에, 20% 정도가 7월에서 9월 사이에, 그리고 10% 정도만이 10월에서 12월 사이에 태어났다고 한다. 주니어 리그 선수들이나 프로 리그 (NHL) 선수들이나 막론하고 항상 생일의 분포가 이런 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선수들의 생일이 연초 쪽으로 쏠려있는 것은 결코 우연일 수는 없다. 사실 그 이유를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캐나다에서는 많은 어린이들이 연령별 팀에 들어가 플레이를 하는데, 어린 나이에는 생일이 몇 개월만 빨라도 신체발달이 앞서기 때문에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연령별 팀에서 우수 선수가 되면 도시대표로 선발되고, 여기서 또 지역대표로 선발되고 하면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조직적이고 많은 양의 훈련 기회를 갖게 된다. 결국 이런 아이들 중에서 엘리트 선수들이 나온다.

 

이렇게 스포츠에서 생일에 따라 발전의 기회가 달라지는 현상을 ‘상대연령효과’라고 하는데, 이는 캐나다의 아이스하키에서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다. 체코의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서도 확인되었고, 미국의 프로 야구선수들이나 유럽의 프로 축구선수들 사이에서도 나타났다.2) ‘상대연령효과’는 우연히 발생한 작은 차이가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마태효과’의 일종으로서, 이렇게 특별한 기회가 실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현상은 스포츠만의 일은 아니다. 글래드웰은 비틀즈와 빌 게이츠 등의 사례를 통해 우연한 기회가 실력과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비틀즈는 우연히 하루 8시간씩 매일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는 함부르크의 클럽에 고용되었던 까닭에 리버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연습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그들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만개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접하고 충분히 가지고 놀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누린 덕에 소프트웨어의 대가가 되었는데,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이런 기회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심리학자 에릭슨(K. Anders Ericsson)은 피아노 연주나 체스 등 특정 분야에서 이른바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적어도 1만 시간 이상은 투자해야 한다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명명했다.3) 1만 시간이라면 대략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간 노력했다는 것인데, 이는 실로 엄청난 시간 투자다. 이 이론은 선천적 재능과 노력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정작 글래드웰이 이 법칙을 소개하면서 강조한 것은 기회다. 비틀즈나 빌 게이츠처럼 아무리 천부적 재능이 있어도 각고의 노력을 해야 최고의 실력을 갖출 수 있는데, 1만 시간이라는 엄청난 투자는 그럴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주어져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생일이 빨라서 연령별 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캐나다의 하키 선수처럼 말이다.

 

물론 최고의 재능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실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능력이란 별 볼일이 없는 것”이다.

 

희대의 명배우 알 파치노도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맡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면 별 볼일 없는 무명배우로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의 제작사 파라마운트는 당대의 최고 스타들인 로버트 레드포드나 워렌 비티에게 이 역을 맡기기를 원했으나,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마이클 역은 시실리 사람처럼 생긴 배우에게 맡겨야 한다고 우기면서, 알 파치노가 아니면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버텼다. 코폴라는 33살의 젊은 감독으로서 <대부>가 그의 데뷔작이었다. 코폴라가 알 파치노를 찾아낸 것도 기적이었지만, 이런 초보 감독이 제작사의 요구를 꺾은 것도 기적이었다. 게다가 코폴라는 말론 브란도가 맡은 돈 콜레오네가 중심이었던 원작을 각색하여 마이클 콜레오네를 중심인물로 만들었다. 알 파치노의 빛나는 커리어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알 파치노 같은 대 스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우연히 기회를 잡아 굉장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재주와 역량이 뛰어나지만 기회를 잡지 못해서 악전고투하며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할 수 있다.

 

기회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자기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린 기회의 특별함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행운’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의 말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문장이다. 그러나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의 연구에 의하면 이 문장은 뉴턴이 창작해낸 것이 아니고,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4) 사실 너무나 흔한 경구였기에 뉴턴은 출처를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부분 이 문장을 뉴턴의 경구로 알고 있는 것은 뉴턴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아우라 때문이다. 내가 혼자 다 한 게 아니라며 '겸손'을 드러내는 이 문장이 뉴턴의 아우라 덕분에 후대에 그의 말로 알려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머튼은 이와 관련하여 "어떤 개인에게 전적으로 공을 돌린다는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오류“라고 지적하며, "모든 창조자는 시공간에서 타인에게 둘러싸여 있고 죽은 자와 산 자를 불문하고 수많은 타인에게 개념, 맥락, 도구, 방법론, 데이터, 법칙, 원칙, 모형을 물려받는다"고 강조한다.

 

한 과학자의 발견과 창조적 이론이 결코 그 한 사람만의 공일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준 사회, 그리고 지식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연구를 자극하는 동료 과학자들에게 많은 신세를 진 것이라는 인식은 경제적 가치의 창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과학적 성공뿐만 아니라 경제적 성공의 스토리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씌어 진다. 당대 최고의 주식투자자인 워렌 버핏은 “지금 누군가가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는 것은 오래 전에 다른 누군가가 나무를 심어놓았기 때문”이라는 말로 유사한 생각을 표현했다. 오늘날 인류가 쌓아올린 거대한 부의 원천은 인류역사를 통해 누적된 지식과 기술의 진보다.

 

성공의 원인을 추적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숨겨진 이점과 기막힌 기회”를 강조했다는 것을 지난주에 소개했지만, 그가 성공의 요인으로 또 하나 강조한 것은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 공동체의 혜택”이다.5) 실제로 이 책의 제1부 제목은 “기회”고 제2부 제목은 “유산”이다. 글래드웰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문화적 유산이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면서, 과거에 대한항공이 빈번한 사고에 시달린 중요한 원인이 권위에 복종하는 우리나라 문화였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시아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셈법을 훨씬 빨리 배우는 까닭을 십진법과 일치하는 숫자 표기 방식에서 찾기도 한다. 예를 들어, 12가 한글에서는 ‘십, 이’이지만, 영어에서는 ‘ten, two’가 아니라 twelve여서 혼란스럽다.

 

필자는 과거에 강연을 할 때 한 개인의 경제적 성공이 그가 속한 사회의 혜택으로 얻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빌 게이츠의 부친이 한 말을 여러 번 인용한 적이 있다. "내 아들 빌이 머리가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했으며 사업수완도 뛰어난데다 운까지 좋아서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만약 빌이 미국이 아닌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에 태어났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과 사업수완이 있더라도, 제아무리 운이 좋더라도, 과연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러기는커녕 미국에서 흔히 보는 백만장자가 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빌이 번 돈의 대부분은 미국사회가 그에게 제공한 여건과 기회의 덕분이고, 따라서 그가 전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말은 지극히 타당하면서도 중요한 논리를 담고 있는데, 문제는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필자는 그를 인용하는 대신 그는 그렇게 말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버지의 말은 출처를 찾지 못했지만 아들 빌 게이츠가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은 찾았다.6) “저는 굉장히 운이 좋았어요. 그러니 이 세상의 불공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저의 의무입니다.”

 

흔히 시장경제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사적재산권의 보호가 중요하다고 한다.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철학에서는 자발적인 증여나 거래에 의해서 획득한 재산은 정당한 것이고, 이렇게 정당하게 획득한 사유재산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권리가 소유자에게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 서면 세금은 개인이 정당하게 획득한 재산을 국가가 부당하게 강탈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생명과 재산권 보호를 위한 국가안보와 법질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국가기능만을 수행하는 최소국가(minimalist state)를 옹호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절대적인 사적재산권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사회간접자본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자본의 생산성을 증가시킴으로써 결국 사적재산의 가치를 높여준다. 교육에 대한 투자도 교육받은 인력을 활용하여 돈을 더 잘 벌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넓게 보면 건강이나 복지를 위한 지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사적재산권의 일정한 제약이 시장경제의 작동을 위해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또한 개인이 소유한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그 가치의 상당 부분은 사회의 덕분이며, 개인에게 귀속되어 마땅한 부분이 어느 만큼인지 정확하게 평가할 방법도 없다. 재산의 가치가 사회와 독립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예를 들어, 집 가까이에 지하철역이 생기거나 이웃들이 집을 잘 가꾸기만 해도 그 집의 가치는 올라간다. 반대로 사드와 같은 혐오시설이 근처에 들어서면 집의 가치는 떨어진다.

 

사적재산권이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기본적인 토대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거듭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이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획득한 부라고 할지라도 그 부의 많은 부분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에 축적된 자본과 기술, 타인의 협력 등에 기인한 사회의 선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적재산권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 점에서 상당히 전향적이다. 헌법 제23조는 재산권을 보장하되 법률에 의해 그 한계를 정할 수 있다고 천명하고, 나아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근본적인 토대다. 

 


타고난 재능과 성격이라는 행운’

 

 

우리는 앞에서 실력도 상당 부분 운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실력을 쌓고 발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기회와 여건이라는 행운이 상당한, 심지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동일한 기회와 여건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누구다 똑같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성공한 이들은 대개 특출한 재능을 가졌거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아무리 운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재능과 노력이라는 부분만큼은 성공한 사람의 공으로 온전히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유명한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John Rawls)는 다음과 같이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7) “우리는 사회에서 맨 처음 주어진 출발선은 당연히 내 몫이라고 말 할 자격이 없듯이, 내게 분배된 타고난 재능도 당연히 내 몫이라고 말 할 자격이 없다. 능력을 애써 갈고닦게 만드는 내 우월한 성격은 당연히 내 몫이라는 생각 역시 문제가 있다. 그러한 성격 형성에는 어렸을 때 좋은 가정과 사회 환경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그러한 영향은 우리 노력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이란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임의적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보상을 받기 위한 도덕적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롤스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나름 설득력 있는 관점임이 분명하다. 나아가 특정한 재능이 얼마나 높이 평가받고 보상받는가 하는 것은 사회에서 그 재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우연에 따라 결정되며, 재능 자체의 특성과는 무관하다. 예를 들어, 필자의 세대만 하더라도 예체능 분야의 재능에 대한 수요가 그리 크지 않아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아무리 실력을 키워도 커다란 보상을 누리지 못하였지만, 요즘에는 예체능 분야의 재능은 굉장한 가치를 지닌다. 더욱 극단적인 예로, 중세 시대에 여성이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분야에 주체할 수 없는 재능을 가졌다면 보상을 받기는커녕 자칫 가혹한 운명을 맞아야 했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는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롤스의 관점을 설명하면서 심야 토크쇼로 유명한 미국의 코미디언 데이비드 레터맨을 예로 든다.8) 레터맨의 연 수입이 교사들의 평균 연봉의 700배가 넘는데, 레터맨이 이렇게 엄청난 보상을 누리는 것은 그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텔레비전 스타에게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 사회를 만난 행운 덕분이라는 것이다. ‘적극적 차별시정 정책(affirmative action)’에 따라 유색인종을 우대하는 바람에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실패한 한 백인 지망자의 소송 이야기는 롤스의 관점을 더욱 엄밀하게 해부하는 소재로 등장한다. 이 백인 지망자의 소송은 자신이 합격한 다른 지망자에 비해 입학할 자격을 더 갖추었다는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롤스의 관점에서 보면 입학허가는 도덕적 자격의 문제가 아니고 단지 인종적 배경을 포함하여 사회에서 요구하는 특성을 지녔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인 것이다.

 

재능의 도덕적 임의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노력까지 그의 공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마이클 조던이 ‘농구황제’가 된 까닭은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 실력을 연마한 덕분 아닌가? 그러한 노력의 대가는 받을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롤스는 “노력하려는 의지도 타고난 능력과 기술 그리고 선택 가능한 대안들에 영향을 받는 듯하다”며 “타고난 조건이 좋은 사람이 성실하게 노력할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따라서 “노력하고 도전해서 소위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려는 의지조차도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노력의 정도가 상이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라면, 주어진 환경의 영향은 본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일탈행동을 하는 일이 많다면 이는 그들이 처한 조건, 즉 노력해서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고 일탈행동에 동참해야 동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어울리기 쉽다는 조건 아래서 나름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나아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성향이나 출생순서와 같이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 노력하는 정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샌델이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하버드대학 학생들에게 형제 중 첫째가 대개 동생보다 노동윤리가 더 강하고 성공도 더 많이 거둔다는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면서 첫째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매번 75~80%가 손을 든다고 한다.

 

노력도 환경의 소산이라는 롤스의 주장이 결코 견강부회는 아니지만, 이를 너무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선 하나의 문제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이라는 고전적인 문제다. 개인의 노력이 완전히 태생과 환경의 소산이라고 한다면, 과연 자유의지가 설 땅은 어디에 있는가? 성격이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을 개선하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소위 인격수양을 하는 것도 사실 아닌가?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얘기에 감동하는 것은 인생의 복잡한 변수들에 대한 무지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노력에 대한 극단적 롤스주의가 지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매우 실용적인 차원의 문제다. 타고난 재능은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지만 노력은 환경이나 성격 등 우연히 주어진 요소들을 감안하더라고 어쨌든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재능에 대한 보상은 기껏 오만이나 부추길 수 있지만, 노력을 개인의 공으로 인정해주고 보상해주는 것은 개인으로 하여금 열심히 노력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재능보다는 노력을 칭찬해줄 때 아이들의 도전정신이 고취된다는 실험결과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일례로 캐롤 드웩(Carol Dweck)은 아이들에게 난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퍼즐을 풀게 하면서, 퍼즐을 푼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머리가 참 좋구나."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구나."라는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퍼즐의 난도가 매우 높아지자 머리 좋다고 칭찬받은 아이들은 점점 지능의 한계에 도달한다는 공포를 느껴 좌절한 반면, 노력하는 모습이 좋다고 칭찬받은 아이들은 계속 노력하면서 끝까지 도전했다고 한다. 9)

 

곰곰이 따져보면 노력마저도 온전히 개인의 공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변수는 완전히 운의 탓으로 돌리기 어렵고, 사회적 효용의 관점에서 볼 때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능력주의의 함정과 운칠기삼의 윤리학

 

 

이제까지 세상사가 얼마나 운에 좌우되는지 살펴보았지만, 그 운에는 매우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운이 존재한다. 하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용하는 우연적인 현상을 의미한다. 로또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완전한 우연이다. 따라서 복권이 꽝이었을 때, 불공평한 게임이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애초에 누구는 당첨확률이 높은 복권을 받고, 누구는 당첨확률이 낮은 복권을 받는다면 어떨까?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운에는 게임에 재미를 더하는 공평한 우연 외에도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태생에 따라 승률이 달라지는 불공평한 운명의 장난도 존재한다.

 

프랑스 혁명에 나타난 근대사회의 근본이상인 평등주의 사상은 출생신분에 따라 당첨확률이 달라지는 신분제를 철폐하고, 누구나 차별 없이 그의 능력에 따라 당첨확률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절대군주나 국가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누구나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경제 제도도 역시 기회의 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곧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고 보상이 정해지는 능력주의(meritocracy)를 말한다. 복권의 당첨확률을 신분이나 어떤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정하지 않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변하도록 하는 것은 기회 평등의 사상에 부합할 뿐더러 우리가 실력을 키우기 노력할 유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능력주의는 근대사회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이념이지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10) 능력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가 이제껏 살펴보았듯이 능력 혹은 실력이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력을 결정하는 데에는 기회와 여건이라는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재능과 노력이라는 개인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기회와 여건에는 순전히 우연적인 요소도 작용하지만 태생에 따른 가정과 사회의 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재능은 말 할 것도 없고, 노력하고자 하는 성격도 상당 부분 태생과 환경이 결정한다. 그렇다면 결국 실력도 인생 게임의 과정에 일어나는 우연과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태생적 배경이 결정하는 운명에 의해 거의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운에 따라 결정되는 실력을 사회적 보상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너무 임의적이고 불공평하지 않은가? 어찌 보면 능력주의는 임의적이고 불공평한 기준을 객관적이고 공평한 기준으로 바꾸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만, 스스로의 목적 달성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롤스와 같은 평등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능력주의는 결국 기득권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우리가 능력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 운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는 것은 윤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항상 ‘운칠기삼’을 언급하면서 성공했을 때 자만하지 말고 겸손할 것과, 실패했을 때 자책하지 말고 당당할 것을 주문한다. 앞서 로버트 프랭크의 책을 소개하면서 그가 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칼럼을 썼을 때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화를 냈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자신의 공을 운에게 빼앗기기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스스로 자기가 행운아였음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이를 인정하는 이들도 많다.

 

성공한 사람이 운의 역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심리상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11) 흥미로운 실험들을 통해서 검증되기도 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확인되기도 한 한 가지 사실은 운의 역할을 흔쾌하게 인정할수록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보다 기꺼이 공익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더욱 중요하고도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이 더욱 행복과 건강을 누린다는 것이 수많은 심리학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부자증세에 반대하고 심지어는 부자감세를 위해 로비를 하는 부자들은 워렌 버핏과 같이 부자들의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행복감이 떨어지고 건강도 나쁘다니, 작은 위안이 된다.

 

어쩌면 사회 전반에서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영광과 수치로 돌리는 일을 그만두고 운의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샌델은 이러한 관점에서 불합격통지서는 “귀하께서 귀하가 제공할 자격이 필요치 않은 사회를 만난 것은 귀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중략) 귀하는 어쩌다보니 사회가 원하는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도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라는 식으로, 합격통지서는 “귀하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특성을 갖게 된 행운아입니다.”라는 식으로 쓸 때, 불합격자의 침통함을 달래고 합격자의 오만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12)

 

성공과 실패가 상당부분 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면, 불평등에 관한 생각도 이에 따라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과도한 불평등마저도 능력과 기여에 따른 정당한 보상으로 포장하기 좋아한다. 하지만 자신의 운이 좋을지 나쁠지 모르는 상태에서 운에 따라 결정되는 불평등의 정도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합리적인 사람들은 가급적 불평등이 작은 상태를 선호할 것이다. 이것이 존 롤스(John Rawls)가 그의 정의론을 펼치면서 사용한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추론이다. 롤스는 재능과 노력을 낭비를 초래할 것이 뻔한 절대평등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가 제안하는 ‘차등원칙’은 한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처한 사람의 복지수준을 최대화는 분배가 정의라는 것이다. “애초에 뛰어난 능력을 타고날 자격이 있거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러한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 차이를 이용할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사회의 기본구조를 조정해, 우연한 차이가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 13)

 

롤스의 ‘차등원칙’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재산과 능력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운칠기삼’의 원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최소한의 윤리규범이다. 

 


  •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노정태 옮김, 김영사, 2009.
  • Jochen Musch and Simon Grondin, “Unequal competition as an Impediment to Personal Development: A Review of the Relative Age Effect in Sport,” Developmental Review 21, no. 2, 2001.
  • K. Anders Ericsson, Ralf Th. Krampe, and Clemens Tesch-Rmer, “The Role of Deliberate Practice in the Acquisition of Expert Performance,” Psychological Review 100, no. 3, 1993.
  • Robert K. Merton, On the Shoulders of Giants, New York: Press, 1965.
  •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노정태 옮김, 김영사, 2009.
  • Jeff Goodell, "Bill Gates: The Rolling Stone Interview," Rolling Stone, March 27, 2014.
  •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Revised Edition, Belknap Press, 1999.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
  • 캐롤 드웩,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
  • 대표적으로 Michael Young, The Rise of the Meritocracy, 1870-2033: An Essay on Education and Inequality. London: Thames & Hudson, 1958.
  • Robert H. Frank, Success and Luck: Good Fortune and the Myth of Meritocrac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6.
  • 마이클 샌델, 위의 책.
  • John Rawls, i 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