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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제3부)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3-02 10:43:10
  • 조회수 : 170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제3부)

 

이제까지는 경쟁의 과정에서 운과 실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보았지만, 운 중에 최고의 운은 경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승리의 카드를 뽑아들고 시작하는 태생의 운이라고 할 수 있다.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을 마무리하는 이 글에서는 태생의 운 혹은 부의 대물림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고, 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베탕쿠르와 이재용, 그리고 세습자본주의 

 

빌 게이츠는 부모에게 우수한 유전자와 좋은 가정환경을 물려받아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고, 사업수완을 발휘하고 기회를 포착하여 미국의 최고 부호가 되었다. 반면 로레알의 상속녀 베탕쿠르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특별한 실력을 갖추지도 않았지만 단지 부모에게서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덕분에 프랑스의 최고 부호 지위를 누렸다.

 

태생에 따라 승률이 다른 복권을 받는 태생의 운을 흔히 ‘부의 대물림’이라고 한다. 게이츠나 베탕쿠르 모두 부모 잘 만난 혜택을 단단히 누렸다. 그러나 게이츠의 경우 부의 대물림은 실력을 통해 이루어졌고, 베탕쿠르의 경우에는 재산상속을 통해 이루어졌다. 실력을 통한 대물림은 부모에게서 자질과 여건, 그리고 기회를 부여받아 사회가 가치 있게 여기고 보상하는 실력을 갖춤으로써 혜택을 누리는 것이고, 상속을 통한 대물림은 부모로부터 신분이나 재산, 그리고 관계망 등을 전해 받아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아무리 태생의 운이 좋아도 실력은 일정부분 자신이 노력한 결과이고 불리한 여건에 처한 사람도 노력을 통해 실력을 갖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데 반해, 상속에 의해 누리는 특혜는 본인의 노력과 전혀 관계가 없는 순수한 특권이기 때문이다.


부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되면 운명론이 팽배하고 상속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자포자기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수저계급론’은 태어날 때부터 집안 환경에 따라 운명이 거의 정해진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성공하려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 하며,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노~오~력’해도 성공은 언감생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보다 공평하고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태생에 따른 승률의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역사발전의 중요한 축이었다. 법 앞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을 이상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이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만으로는 부의 대물림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기본적인 교육과 의료를 책임지고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등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점차 부와 소득이 최상위 계층에 집중되고,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면 조만간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가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1)  세습자본주의란 상속부자들이 자수성가한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소득과 특권을 향유하는 사회를 말한다.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부모 잘 만난 운에 의해 지배적 지위를 향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신분제 사회가 부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케티는 고율의 소득세와 강력한 자본과세를 통해 세습자본주의의 도래를 막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가난했던 우리나라도 반세기를 넘는 경제성장의 결과 엄청난 자본이 축적되어 부의 대물림이 심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 고도성장기가 종언을 고하고 저성장 단계로 이행함으로써 성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빈곤의 대물림이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각종 정책과 제도가 갈수록 불공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어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 결과 국민의 80% 이상이 계층상승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2)


실력을 통한 부의 대물림은 이를 부추기는 교육제도 때문에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교육이 계층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계층 간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고착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교육에 의존하는 입시경쟁과 서열화된 대학체제, OECD 최고 수준의 사립학교 비율과 대학등록금 등으로 인하여 명문대학 입시에 가정형편이 갈수록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특히, 특목고나 자사고 등 고교 다양화 정책은 실력을 통한 부의 대물림을 심화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입학 후에도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 ‘알바’에 내몰려 학업에 소홀하게 되기도 하고, 학자금 대출이 후에 큰 멍에가 되기도 함으로써 빈곤의 대물림을 조장한다.


상속을 통한 부의 대물림도 갈수록 비중이 커지고 노골화되고 있다. 상속증여세가 느슨하고, 자본과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가 전반적으로 미약하다.3) 조세제도에 부의 대물림을 약화시키는 기능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반면 유구한 세월 지속되어온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 탓에 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이 매우 높아서 집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건물주와 임대인 사이에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게다가 임대수입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한국사회는 이미 세습자본주의에 가까이 와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억만장자 명단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인 억만장자 중 상속부자의 비율은 74.1%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 비율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2%와 18.5%에 불과했으며, 미국은 28.9%, 유럽은35.8%였다.4) 한국에 자수성가한 부자가 별로 없고 상속부자 비율이 높은 까닭은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다. 재벌의 그늘 아래서 창업 성공 신화는 나오기 어려운 반면, 재벌가는 다양한 편법을 동원하여 부의 상속을 실현한다. 게다가 경영능력과는 무관하게 경영권 세습까지 해낸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의 경우만 하더라도 과거 e-삼성의 실패와 최근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로 경영 능력이 의심받고 있으며 편법·탈법 상속 등 각종 물의를 일으킨 이재용 씨가 그룹 경영권을 장악했으며, 일전에는 보란 듯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재용 씨는 한국적 세습자본주의의 상징이다.


돈이 실력이 되는 사회와 정실자본주의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등장하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합격 후 특혜 의혹이 제기되던 때SNS에 이런 글을 게시했다고 한다. 정유라보다 승마 실력이 우월했으나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선수들, 이화여대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이 이 주장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 험난한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운이 좋아 성공해놓고 “운도 실력”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을 보면 억지 주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지 미운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스스로가 운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어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력이 부족한데도 돈을 써서 성공해놓고 “돈도 실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어떨까? 돈의 힘을 빌렸다고 인정했으니 봐줘야 할까? 우연한 운은 세상살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실력으로 경쟁하는 게임에서 돈을 써서 이긴다는 것은 곧 있어서는 안 될 부정행위를 저질렀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극단적인 우월감과 함께 친구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별로 경험하지 못한데 따른 사회성의 결여 탓에 정유라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 모양이다.

 

자신보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과거에 합격하는데 자신은 번번이 불합격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옥황상제에게 찾아가 불평한 선비의 마음은 어땠을까? “세상사에는 3할의 이치도 행해지는 법이니 운수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선비를 꾸짖고 돌려보낸 옥황상제는 과연 지혜로운 판단을 한 것인가? 이 사회는 시험에 의해 관료를 선발하니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능력주의 사회다. 선비의 불운은 순수한 우연일 수도 있다. 출제가 하필이면 공부가 부족했던 분야에 집중되었다든지, 갑자기 복통이 와서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든지 하는 경우들이다. 하지만 이런 순수 우연만으로 과거시험의 성패가 7할이나 좌우될까? 선비는 분명 뭔가 불공정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옥황상제에게 항의했을 것이다. 집안이 연줄이 좋고 돈이 많고 권력과 가까워서 불공정한 방법으로 합격한 것까지 세상살이에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이건 운이 아니라 부정행위일 따름이다.


사실 관문이 좁은 입시나 취직에서 정유라의 경우와 유사한 부정행위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국회의원 나경원의 딸이나 삼성그룹 이재용의 아들 경우에도 부정입학 문제가 제기되었고, 군이나 의무경찰에서의 보직 배정이나 소위 좋은 직장에 취직할 때 집안 배경의 덕을 보는 현대판 음서제의 문제는 광범위하게 제기된 바 있다. 이미 부와 권력을 차지한 기득권자들이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실력에 의해 배분되는 사회적 보상까지 누리려는 사회를 겪으면서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좌절하고 국민대다수는 노력을 통한 계층상승의 희망을 포기하고 있다.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한국경제 자체가 송두리째 문제다. 불공정 경쟁이 만연해 있어 실력과 노력이 아닌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차별, 비정규직 차별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부당한 하도급 계약, 골목상권 침탈, 약탈적 대출 등 다양한 형태의 약탈이 바로 기득권자들에 의한 불공정 경쟁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그 자체로 불의일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을 파괴하고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기득권자들에 의한 불공정 경쟁 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이고 위험한 것은 권력을 이용한 이권추구행위다. 공동체의 공공선을 추구하고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치권력을 사적인 치부행위에 사용하는 것은 공정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행위다. 이런 일이 빈발하는 사회를 서구에서는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고 부르고, 우리는 정경유착이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자원배분이 크게 왜곡되고 결국은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쳐온다. 1997년의 아시아금융위기 당시 해외언론들이 정실자본주의를 근본원인으로 지적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추진하였으나, 김대중 정부 후반기부터 재벌친화적 정책이 부활하고 노무현 정부가 삼성그룹과 유착하는 등 개혁정책의 한계가 뚜렷했다. 이후에 이명박 정부는 아예 노골적으로 친재벌 정책을 추진하면서 소위 ‘사자방 비리’ 등 권력을 이용한 치부행위를 조장함으로써 정경유착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그리고 지금 초유의 국가위기를 초래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정경유착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다. 나라와 결혼한 몸이고 자식도 없으니 깨끗하리라고 기대했던 대통령 박근혜는 알고 보니 나라를 송두리째 최순실 일당에게 헌납하여 이들의 기업 갈취와 세금도둑질을 적극 지원하였고, 재벌들은 이들에게 협력하는 대가로 각종 초법적인 특혜를 누렸다.5) 정실자본주의에서는 권력이 돈이 되기도 하지만, 돈이 권력이 되어 다시 더 큰 돈으로 둔갑을 한다.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라고 주장한 그 돈, 즉 최순실의 돈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신흥종교·이단 전문가인 탁명환 씨에 의하면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구국’에는 구호뿐이지 사실은 축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재벌급 기업인들에게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이 일과였다. 항상 검은 안경을 끼고서 오만하게 앉아 재벌들에게 전화질을 하면서 꼭 근혜양을 팔았다.”6) 박근혜가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재벌들을 갈취하는 것은 최순실 집안의 대를 이은 가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재벌들은 이들에게 기꺼이 갈취를 당하면서 국가권력으로부터 그보다 훨씬 큰 대가를 챙겨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의 정실자본주의는 1970년대의 저급하고 노골적인 모습으로 다시 만개하였다. 권력이 돈이 되고 돈이 실력이 되는 사회, 정실자본주의는 경제위기를 부르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운과 불평등의 분류학

 

이제까지 다양한 종류의 운이 어떻게 우리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거꾸로 불평등을 종류별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운의 역할을 되짚어본다.


자유로운 경쟁에 의해 성패가 판가름 나고 사회적 보상이 결정되는 시장경제에서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불평등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많은 보상을 해주는 것은 결코 부당한 일이 아니다. 생산성 혹은 사회적 기여에 비례한 불평등은 사회적 정당성이 인정되는 공평한(fair) 불평등이다. 또한 장애인에 대해 특별한 배려를 해준다든지 모든 아동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것과 같이 필요에 따라 보상에 차등을 두는 것도 대개 정당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기여나 필요를 무시하고 누구나 동일한 보상을 받는 기계적 평등이야말로 불공평한 처사가 될 것이다.


특히 기여에 따른 보상의 차별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고 혁신하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에 경제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시장 경쟁에서 더 많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사람들은 능력을 키우고, 열심히 일하며, 새롭고 우월한 방법들을 고안해낸다. 비록 이 과정에서 운의 역할이 의외로 크다고 할지라도, 이때의 운은 순수한 우연이기 때문에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어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운은 인생에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이기도 하고, 실패한 사람들에게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해주는 등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또한 능력과 노력에 비해 운의 비중이 얼마였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운에 따른 불평등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운의 비중이 지나치게 큰 ‘카지노 자본주의’나 소수의 승자가 너무 많은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 자본주의’가 낳는 과도한 불평등에 대해서는 그 경제적 필요성이나 사회적 정당성을 통째로 인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적절한 재분배로 과도한 불평등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승자독식 시장일수록 운의 역할이 커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 경쟁의 과정에서 능력과 노력, 그리고 우연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을 필자는 ‘경쟁 불평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두 번째 종류의 불평등은 ‘출발선 불평등’이다. 부의 대물림에 의해 경쟁에 진입하기 이전에 출발선 상에서부터 유불리가 결정되고 격차가 발생함으로써 초래되는 불평등이다. 출발선 혹은 태생을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출발선에서 앞서는 경우도 흔히 ‘운이 좋다’는 말로 표현하지만 이는 경쟁과정에서 공평하게 작용하는 순수한 우연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운이다. 일반적으로 ‘출발선 불평등’은 ‘경쟁 불평등’에 비해 사회적 정당성이 약하고 경제적 필요성도 덜하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공교육을 비롯한 사회지출과 누진적 상속세 등 ‘출발선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부의 대물림도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 봐야 한다. 실력을 통한 대물림은 부모에게서 자질과 여건, 그리고 기회를 부여받아 사회가 가치 있게 여기고 보상하는 실력을 갖춤으로써 혜택을 누리는 것이고, 상속을 통한 대물림은 부모로부터 신분이나 재산, 그리고 관계망 등을 전해 받아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불공평하다고, 즉 사회적 정당성이 더 약하다고 느낀다. 아무리 타고난 자질과 집안환경이 좋아도 실력은 일정부분 자신이 노력한 결과이고 아무리 불리한 여건에 처한 사람도 노력을 통해 실력을 갖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데 반해, 상속에 의해 누리는 특혜는 본인의 노력과 전혀 관계가 없는 순수한 특권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경제적 필요성의 관점에서도 실력을 통한 부의 대물림은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 용인될 수밖에 없지만, 상속을 통한 부의 대물림은 더욱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 상속을 통한 부의 대물림은 상속을 해주는 세대의 인센티브는 될지언정 상속받는 세대에게는 오히려 인센티브를 파괴하는 효과가 있다.7)

 

마지막으로 가장 나쁜 종류의 불평등은 경제활동의 과정에서 자본력과 권력 등을 가진 자가 실력과 노력이 아닌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공정한 방법을 동원해서 힘없는 자를 약탈함으로써 발생하는 ‘약탈 불평등’이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시장경제에서 약탈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한국경제에는 다양한 형태의 약탈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정치권력과 재벌의 정경유착은 그중에서도 최악이다. 이들은 국고를 도둑질하고 경제정책을 재벌친화적으로 왜곡함으로써 납세자와 소비자, 그리고 노동자들을 약탈했다. 재벌의 산업지배 또한 약탈을 구조화하고 있다.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에 의한 중소기업 약탈은 결국 노동시장의 분절화와 과도한 임금격차를 불러오고, 담합 등 경쟁제한행위나 기업집단에서 발생하는 사업기회편취 등은 결국 소비자를 약탈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 협상력이 약한 집단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이나, 본부와 대리점 혹은 가맹점 사이에 성립하는 갑을관계 등에서 발생하는 소위 ‘갑질’도 약탈의 일종이다.


‘약탈 불평등’은 불법적이거나 부당하며, 경제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고, 기존의 불평등을 더욱 확대하는 몹시 나쁜 불평등이다. ‘약탈 불평등’이 심해지면 결국 경제위기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약탈에 의한 이득을 취할 수 없게 만드는 정책들은 불평등 축소를 위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 재벌의 정경유착과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경제력 집중 완화와 지배구조개선 등 재벌개혁과 공정거래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등 사회경제적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차별금지법이 시행되어야 하며, 나아가 비정규직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정책이 필요하다. ‘갑질’에 대한 규제와 함께 을의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단결권 보장이 필요하다. 납세자, 소비자, 노동자, 그리고 소액주주 등 경제적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와 제도적 장치들이 강화되어야 한다.


슘페터 호텔과 개츠비 곡선, 그리고 경제민주화

 

 

‘창조적 파괴’라는 문구로 유명한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혁신과 경제발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분배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불평등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슘페터는 한 시점에서의 불평등과 사회적 이동성 혹은 계층 이동성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했다. 층수가 높을수록 방이 크고 좋은 고층 호텔이 있다고 하자. 꼭대기 층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굉장히 호사스런 방을 차지하고 있고, 반면 맨 밑바닥 층에는 수많은 이들이 작은 방에 꾸겨서 들어앉아 있다. 이것은 한 시점에서 불평등한 분배를 보여준다. 그런데 매일 한 번씩 손님들이 방을 바꾸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오늘의 부자가 내일의 가난뱅이가 되기도 하고, 거꾸로 오늘의 가난뱅이가 내일의 부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슘페터는 이러한 사회적 이동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 시점에서 불평등이 심하더라도 사회적 이동성이 충분하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슘페터의 비유는 현실에 적용이 될 수 있을까?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환상에 불과한 얘기는 아닐까? 오랫동안 많은 미국인들은 슘페터 호텔이 미국경제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믿었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소득불평등이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처럼 계급이 고착화되지 않고 유동적이어서 사회적 이동성이 높다고 믿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누구나 열심히 노력만 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미시시피 농촌의 가난한 십대 엄마에게서 태어나 밀워키의 슬럼가에서 자라며 아홉 살 때 강간을 당하고 임신까지 했던 가엾은 소녀가 굳은 결의로 꿈을 좇아 노력한 결과 미국 최고의 토크 쇼 호스트가 되고 배우, 저술가, 프로듀서, 자선살업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거대한 미디어 왕국의 소유자가 되기에 이르렀다는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의 얘기는 한 전형적인 예이다.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개천에서 용이 난’ 스토리가 무수하게 많으며, 이를 곧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국의 높은 사회적 이동성과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믿음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고 신화에 불과했음이 최근 밝혀졌다. 2012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이던 앨런 크루거(Alan Krueger)는 그의 연설과 의회에 보내는 <대통령의 경제보고서>에서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소개하였다.8) 아래 그림에 나온 대로 국제비교를 해보면 소득불평등과 세대간 계층고착성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계층상승의 심볼로 여겨지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세대간 계층고착성은 세대간 소득탄력성, 즉 부모세대의 소득이 자식세대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으로 측정한다. 이 영향이 작을수록 계층이동성이 크고, 이 영향이 클수록 계층고착성이 큰 것이다. 개츠비 곡선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소득불평등이 낮은 나라들에서 계층이동성이 크고 (즉, 계층고착성이 낮고), 선진국들 중 불평등이 심한 미국은 계층이동성이 낮으며, 브라질, 칠레, 페루처럼 불평등이 매우 심한 개도국에서 계층이동성은 매우 낮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사회적 이동성이 유럽보다 낮다는 사실을 보여준 개츠비 곡선은 미국에서 굉장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미국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와 아메리칸 드림은 허상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크루거는 이러한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고 경제이론에 부합하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현재의 불평등이 클수록 교육과 연줄을 통한 자식세대의 불평등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근래 미국의 소득불평등이 급격하게 심화되었기 앞으로 사회적 이동성이 더욱 떨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필자의 표현에 의하면 크루거는 ‘실력을 통한 부의 대물림’ 현상을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자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경우는 이와 함께 ‘상속을 통한 부의 대물림’ 현상도 중요하다고 역설한다.9) 

 

승자독식 시장 혹은 다른 이유로 과도한 ‘경쟁 불평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방치하면 결국 ‘출발선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 개츠비 곡선 이면의 경제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진보적 성향이 강한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미국의 경우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초고소득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지고, 이들은 정부의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서 막대한 초과이익 혹은 지대(rent)를 취득함으로써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10) 불평등의 심화는 불공정을 초래하고, 이것이 다시 불평등을 더욱 악화하는 ‘약탈 불평등’의 악순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러한 악순환이 관찰된다. 재벌의 세습과 이들의 정경유착에 의한 지대추구 혹은 이권추구가 가장 두드러진 사례다. 기득권자들의 불공정을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유라의 발언이 시사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 의한 이권추구가 만연해 있다. 아마도 개츠비 곡선의 이면에는 ‘약탈 불평등’의 악순환도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운의 존재와 역할은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경쟁과정에 개입하는 순전한 우연으로서의 운이든 태생의 운이든 운의 역할이 과도한 경제시스템은 공평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운삼기칠’이면 몰라도 ‘운칠기삼’이 되어선 곤란하다. 운칠기삼은 과거의 불공평한 사회의 역사적 유물로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경쟁을 확립하여 ‘약탈 불평등’을 근절하고, 인적자본에 대한 국가책임으로 ‘출발선 불평등’을 최소화하고, 사회안전망과 재분배로 ‘경쟁 불평등’을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여야 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유종일 외, <피케티,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울, 2015

2. 현대경제연구원, ‘우리나라 사회신뢰도와 공정성에 대한 인식’, 2016.

3. 통상 대다수 상속인은 각종 공제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겨우 2%정도만 상속세를 납부한다. 가업상속공제는 무려 500억 원까지 가능하며, 재벌의 편법상속은 너그러운 세법마저도 무력화한다.
4. 다른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국제자산정보회사 ‘웰스-X’와 듀크대 연구진의 분석에서도 우리나라의 자수성가형 부호 비율은 33.3%로 세계 평균 63.8%의 절반에 불과했으며, 조사대상 53개국 중 47위에 그쳤다.
5. 유종일, “‘박순실 게이트’와 87년 체제, 그래서 시민주권 혁명”, 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칼럼, 경향신문 2016. 11. 4.
6. “최태민 “큰 영애께서…” 전화 돌려 재벌 돈 뜯는 게 일”, 중앙일보 2016. 11. 5,
http://news.joins.com/article/20821334
7. 많은 부자들이 실제로 상속을 받은 자식들이 게으른 생활을 하게 될까 걱정을 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할 때마다 특정한 금액이 지불되는 ‘가족 인센티브 기금’의 방식으로 유산을 상속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8.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transmitted to the Congress, February 2012 (http://www.nber.org/erp/ERP_2012_Complete.pdf)
9. 유종일 엮음, 『피케티,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울, 2015.
10. Joseph E. Stiglitz, The Price of Inequality: How Today’s Divided Society Endangers Our Future, W. W. Norton & Company,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