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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 한국경제의 조로증과 회춘의 묘약_2017 0403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4-03 17:33:38
  • 조회수 : 378

한국경제의 조로증과 회춘의 묘약_2017 0403

 

조로증은 어린 나이에 노화현상이 나타나 겉모습도 노인처럼 되어버리는 희귀한 유전성 질환이다. 한국경제는 마치 조로증에 걸린 아이처럼 완전한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노화현상을 겪으면서 성장 동력이 쇠잔해지고 서서히 장기침체의 나락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조로증에 걸리면 잘해야 십대 후반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조로증에 걸린 한국경제가 회춘하는 길을 빨리 찾아야 한다.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정확한 진단을 하고, 이에 입각해서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경제성장에 관한 기초적인 이론부터 짚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경제의 조로증을 진단한다. 진단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박정희 시대에 형성된 추격형 성장체제의 후유증이고, 처방의 핵심은 경제민주화다.

성장회계와 성장동력 

 

 

경제성장은 생산물 혹은 소득의 증가를 말한다. 노동과 자본이 투입되어 이를 기술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얼마만큼의 경제성장이 노동 투입과 자본 투입 각각의 증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 또 얼마만큼의 성장이 기술의 발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 따져보는 일을 성장회계(growth accounting)라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성장의 동력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첫째는 인구성장과 교육 등에 따른 실효노동력의 증가고, 둘째는 투자에 따른 자본축적(자본스톡의 증가)이며, 셋째는 기술발전과 새로운 아이디어 등을 통해 주어진 노동과 자본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으로서 경제학 용어로는 총요소생산성 증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반적인 말로는 기술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기술은 공학적 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 조직과 문화 등 사회적 기술도 포함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세 가지 성장동력은 경제 발전에 미치는 함의가 각기 다르다. 인구의 성장으로 노동력의 투입이 증가하여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은 경제 전체 규모의 증가는 이루지만 일인당 소득의 증가는 가져오지 못한다. 만약 자본과 생산성이 동일한 상황에서 노동력만 증가한다면 생산량 증가는 노동력 증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므로 일인당 소득은 오히려 감소할 것이다. 경제발전은 노동력의 증가 대비 자본과 생산성의 증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아가 인구의 증가는 환경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무한정 지속될 수 없으며, 실제로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인구증가율은 낮아진다. 하지만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는데 인구증가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주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교육과 훈련, 경험과 자기계발 등을 통하여 노동의 질을 제고함으로써 실효노동력을 증가시키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질을 흔히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적 자본을 축적하여 실효노동력이 증가하는 경우 그에 따른 생산의 증가는 고스란히 일인당 소득의 증가로 나타난다. 따라서 경제발전에서 인적 자본의 축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문제는 사람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어서 교육기간이나 인적 자본 축적은 무한정 늘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 대비 자본의 양이 증가하면 노동 한 단위당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노동력 증가율을 상회하는 자본의 증가는 일인당 생산량과 소득의 증가를 가져온다. 따라서 도로와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주택과 건물, 기계와 생산시설 등을 포함하는 물적 자본의 축적은 경제발전의 핵심 요소다. 물적 자본의 축적은 인적 자본의 축적과 달리 무한정 이루어질 수 있다. 자본의 양은 한없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축적만으로 한없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 부족할 때는 자본을 조금만 축적해도 생산을 크게 증가시키지만, 자본이 풍부해질수록 그러한 효과는 작아진다. 경부고속도로는 물류의 효율성을 크게 증가시켰지만, 최근 지방에 건설한 고속도로들은 이용 차량이 별로 없어 효용성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이치를 ‘수확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신고전파 성장이론을 개발하여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솔로우(Robert Solow)의 핵심적인 통찰은 바로 이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에 자본축적에 의한 성장은 일인당 소득수준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균제상태(steady state)’라고 한다.

노동력이나 자본의 증가와 달리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앞서 언급했듯이 넓은 의미의 기술의 발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바탕은 지식의 증대라는 점에서 이를 지식자본의 축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에는 인적 자본 축적의 경우와 같은 양적인 한계도 없고 물적 자본 축적의 경우와 같은 수확체감의 법칙도 작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기술의 개발을 생각해보면, 갈수록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 더 많고 높은 수준의 기존 지식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해결 능력도 그만큼 커진다는 측면도 존재한다. 그래서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성 증가 혹은 그 바탕이 되는 지식자본의 축적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해주는 요소다. 신고전파 성장이론을 대체하여 등장한 신성장이론에는 다양한 갈래가 있지만, 그 초점은 지속성장의 원천으로서 생산성 증가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데 있다.
  

경제발전의 단계와 경제의 노화현상

 

 

전통적인 경제는 오랜 기간 거의 성장을 하지 못하는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일정한 조건이 마련되면 산업화와 더불어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로스토우는 이를 도약(take-off)이라고 불렀다.1) 고도성장기를 지나고 경제발전 수준이 높아지면 경제는 성숙단계에 접어들어 성장률은 이전에 비해 낮아진다. 여기서 잘하면 경제가 성숙 단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지만, 잘못하면 노화현상이 심화되고 장기적인 침체에 빠지게 된다.

경제의 노화현상은 위에서 살펴본 세 가지 성장동력이 감소하여 성장이 둔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어릴 때는 한창 자라다가 어른이 되면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개도국은 성장률이 높고 경제가 성숙 단계에 이른 선진국은 성장률이 낮다.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성장 동력이 자연히 약화되기 때문이다. 1950~1980년 사이에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한 일본이 이후 장기침체라 불릴 정도로 성장률이 낮아진 것이나,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던 중국경제의 성장률이 조금씩 하락하여 이제는 7%대 성장도 버거운 것이 다 그런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성장률 하락도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노화현상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 차례로 살펴보자. 첫째는 인구증가율의 감소와 인구구조의 노령화에 따른 노동력 증가의 쇠퇴다. 우리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대다수 개도국은 인구성장률이 높기 때문에 인구피라미드에서 젊은 인구가 노인인구에 비해 많다. 생산인구는 많고 부양인구는 적은 인구구조는 경제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선진국이 될수록 사망률과 출산율이 감소하여 인구성장률이 떨어지고 노인인구가 젊은 인구에 비해 많아지는 쪽으로 인구구조가 변한다. 노동력의 양적 증가가 쇠퇴하더라도 이를 질적인 증가에 의해 만회할 수도 있다. 실효노동력은 노동력의 양만이 아니라 노동력의 질에 의해서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노화현상은 나타난다. 교육수준이 낮을 때는 교육을 급격하게 확대하여 인적 자본을 빠르게 축적할 수 있지만, 이미 교육수준이 높아지면 더 이상의 인적자본 축적은 더디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는 자본의 축적 자체가 가져오는 성장동력 감소다. 자본이 노동력에 비해 많이 축적될수록 자본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투자를 해도 성장률이 별로 오르지 않는 현상이다. 적은 양의 자본에 많은 노동이 달라붙어 일할 때에 비해 많은 양의 자본에 적은 노동이 달라붙어 일하는 경우에 자본 한 단위의 생산량, 즉 자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투자의 성장에 대한 기여가 감소한다는 관점에서 본 것이 바로 앞에서 설명한 수확체감의 법칙이다. 경제성장을 하면서 자본이 축적될수록 더 이상 자본축적에 의한 경제성장은 이루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셋째는 생산성 증가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현상이다.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데에는 더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방법과 새 것을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창조적 혁신의 방법이 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것이다. 아무리 모방을 해도 자신이 처한 구체적 조건에 맞추어 적용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고, 아무리 혁신적인 것도 기존의 것을 모방하고 참고하는 일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튼 크게 보아 모방은 혁신보다 쉽고 비용도 덜 드는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개도국의 경우에는 기술 수준과 시장 제도의 발달 수준이 낮기 때문에 선진국을 모방하면서 그 수준을 높여나갈 수 있어서 일반적으로 선진국과의 격차가 클수록 생산성 증가도 빠르게 할 수 있다. 이를 ‘후발국의 이익(advantage of backwardness)’이라고 하며, 이에 입각한 성장을 ‘따라잡기 성장(catching-up growth)’ 혹은 ‘추격형 성장’이라고 한다. 개도국이 점차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게 되면 선진기술 모방이 점차 어려워져서 더 이상의 추격형 성장이 어려워지고, 생산성 증가를 위해서는 창조적 혁신이라는 훨씬 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상의 논의에서 창조적 혁신이야말로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성장의 원천임을 알 수 있다. 인적 자본이나 물적 자본 축적에 입각한 성장은 한계에 부딪치고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으며, 기술의 발전도 그것이 모방에 의존한 것일 때는 점차 그 가능성이 소진되고 만다. 끊임없이 새 것을 창조하는 혁신은 지속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의 활력을 높여주는 회춘의 힘으로 작용한다.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을 높여줌으로써 인적 자본 축적의 양적인 한계와 물적 자본 축적의 수확체감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경제가 도약 단계를 지나 성숙단계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세 가지 성장동력의 약화에 따른 성장 둔화는 불가피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경제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혁신의 힘으로 노화현상을 막아내고 성숙한 경제로서 성장을 지속하느냐, 아니면 혁신을 충분히 하지 못하여 노화현상이 계속 진행되고 노화된 경제로서 침체를 맞이하느냐의 갈림길이다. 노화된 경제의 핵심적인 특징은 노동 대비 자본의 과잉축적으로 자본생산성이 낮은 것이다. 자본축적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자본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과잉축적이라는 것은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에 낮아지는 자본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힘은 인적 자본 개선에 의한 실효노동의 증가와 기술발전에 의한 생산성 증가다. 앞서 거듭 강조했듯이 인적 자본 개선이나 선진 기술 모방은 경제가 성숙할수록 그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혁신이라는 회춘의 묘약을 찾아내는 것만이 궁극적인 해법이다. 이를 찾아내지 못하면 경제는 성숙의 단계에서 노화의 단계로 접어들고 마는 것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소득 비율을 핵심적인 지표로 제시하면서, ‘피케티 비율’이라고도 불리는 이 비율이 높으면 노동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의 비중이 커지고 심지어 상속부자들이 부와 특권을 독점하는 ‘세습자본주의’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자본/소득 비율은 소득/자본 비율, 즉 자본생산성의 역일 따름이다.2) 따라서 피케티가 제기하는 과도하게 높은 자본/소득 비율의 문제는 사실 자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과잉축적의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개도국에 비해 자본축적을 많이 한 선진국들이 피케티 비율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혁신 능력에 따라 이 비율의 상승을 제한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조로현상

 

 

1960년대에 도약의 단계에 접어든 이래 한국경제는 1980년대 말 ‘3저호황’에 이르기까지 두 자릿수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했지만, 그 이후 성장률은 속절없이 하락을 거듭하였다. 1990년대 7%대에서 2000년대 5% 그리고 2010년대에는 3%대로 주저앉았다. 최근 수년간은 2%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KDI나 국제기구인 OECD가 추정한 잠재성장률보다 성장률이 더 낮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들 기관이 2020년대에는 2%대, 2030년대에는 1%대의 잠재성장률을 전망했던 시점에 비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이러한 성장 둔화는 상당부분 경제가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너무 일찍 너무 심하게 성장동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선진국이라고 하기는 매우 미흡한 상태에서 노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조로현상을 나태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인당 국민소득이 10년째 2만 불대에 머무르고 있다.

개도국 경제가 선진국 경제에 점차 근접한다는 ‘수렴가설’에 입각해서 한국경제의 성장을 평가해보면 이러한 조로현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과 미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해보면 1961년에 한국의 미국의 1/30이 채 안 되는 3.1%에 불과했는데 1976년에는 1/10 가까운 9.6%에 이르렀고, 1996년에는 1/2에 다가가는 43.7%까지 따라갔다. 이때까지는 수렴가설과 부합하여 한국의 일인당 소득이 빠르고도 지속적으로 미국 수준에 접근해갔다. 그러나 그 후 20년이 지난 2015년에는 한국이 일인당 소득이 미국의 48.5%로서 여전히 1/2을 밑도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3) 미국의 7~80% 수준도 아니고 40% 수준에서부터 성장동력이 감퇴하고 노화현상이 심화하여 미국과의 상대적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4)

한국경제에 나타나는 심각한 노화의 양상을 좀 더 살펴보자. 첫째 노동력 문제다. 저출산·노령화는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은 이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다. 출산율이 가장 낮고 노령화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 과거 인구증가의 영향으로 아직 전체인구수는 줄지 않고 있지만, 금년부터 15세 이상 65세 미만의 인구, 즉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며, 몇 년 후면 전체인구수도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이후 갈수록 인구감소에 가속이 붙고 노령화는 더욱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실효노동력을 제고하기 위한 인적 자본 개선의 면에서 보더라도 교육기간의 측면에서 젊은 층은 이미 세계 최고의 수준에 달했고 더 이상 개선 의 여지는 별로 없는 형편이다. 교육과 훈련 등의 질을 제고해야 하는데 후술하는 바와 같이 이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둘째, 자본의 과잉축적이다. 이는 한국의 높은 피케티 비율을 통해서 확인된다. 선진국을 대상으로 국부/소득 비율을 평가한 결과 미국 4.45, 영국 4.92, 캐나다 5.03, 독일 5.67로서 국부가 국민소득의 4.5~6배 수준이고, 이 비율이 가장 높은 경우에는 호주 7.07, 프랑스 7.34, 일본 7.95로서 약 7~8배에 이른다. 한국의 경우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2012년에 이 비율이 무려 9.45였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이 이렇게까지 높은 데에는 높은 토지 가격의 영향이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피케티 비율이 프랑스, 일본, 호주 등에 비해 약 1.5배 정도 높아진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고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피케티 비율은 여전히 가장 높은 편이다. 이는 토지를 제외한 생산 자본만을 놓고 볼 때에도 한국의 자본/소득 비율이 매우 높고, 거꾸로 자본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는 유행어에서도 드러나듯이 한국의 자본소득 비중은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고, 노동소득 비중은 매우 낮다.5) 또한 피케티의 우려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한국은 자수성가한 부자는 적고 상속부자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6)

셋째, 이렇게 과잉축적이 된 것은 한국의 일인당 자본스톡이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많아서가 아니다. 총요소생산성이 낮아서 자본이 소득을 만들어내는 능력, 즉 자본의 생산성이 낮은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노동생산성도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절반이 채 되지 않는 현실이다. 과거 추격형 성장을 통해 급속한 산업화를 이룰 때는 모방에 의한 기술발전을 쉽게 이룰 수 있었지만, 산업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1990년대부터는 창조적 혁신이 생산성 증가를 이끌어주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잉축적은 혁신부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진정한 해법은 혁신 부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다.7) 그러나 역대 정부는 근시안적 안목으로 법인세 인하나 규제완화 등을 통해 투자를 증대하여 성장을 끌어올리려는 정책을 취해왔고,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오히려 과잉축적의 문제를 심화할 뿐이었다.
   

박정희 모형의 성공과 한계

왜 한국경제가 조로증에 걸렸는가? 한마디로 답하자면 성장체제의 전환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도약단계에서 한국은 추격형 성장체제를 구조화시켰다. 이는 개도국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성장체제다. 한국의 경우에는 물론 박정희 모형이라고 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특징적인 형태로 이러한 성장체제가 성립되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옷을 바꿔 입어야 하듯이 경제가 도약 단계를 지나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성장체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어 소위 ‘중진국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곧 조로증이다.

한국은 엄연히 선진국이 되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소득 수준만 놓고 보면 선진국의 말단 정도로 분류하는 것이 옳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한국인들이 워낙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며, OECD 국가 중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노동시간이 압도적으로 길기 때문이다. 생산성이나 사회문화적인 면에서는 선진국이라고 부르기 어렵고, 특히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은 지극히 낮다.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함정 때문에 발걸음이 지체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구축한 추격형 성장체제, 즉 박정희 모형은 다섯 가지 주요 구성요소로 이루어졌다. 첫째, 정부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우고 대통령이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는 등정부주도의 성장전략을 추구했다. 정부가 시중은행을 소유하고 금융자원을 통제하여 정책목표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소위 ‘관치금융’이 핵심적인 정책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둘째, 자본에게 유리하고 노동에게 불리한 정책을 추진하여 자본축적의 극대화를 추구했다. 자본에게는 특혜를 주고 노동운동은 탄압하여 저임금 노동을 강요함으로써 이윤을 확대하고 투자율을 제고하고자 하였다. 자본이 매우 부족했던 개도국의 처지에서 이는 고도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유력한 방법이었다. 셋째, 저임금 정책은 곧 내수를 경시하고 해외시장을 중시하는 수출주도 전략과 맞닿아 있었다. 낮은 소득수준 때문에 내수시장은 협소했고 국제무역은 팽창하던 시기에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수출주도 전략을 채택한 것은 유효했다. 넷째, 선진기술의 모방, 습득, 응용을 통해 선진기술 따라잡기를 추구했다. 이는 모든 추격형 성장체제의 기본요소다. 다섯째,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특정 대기업에게 특정 산업 분야를 책임지도록 하여 효율적이고 빠른 산업화를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산업정책은 대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을 바탕을 추진되었고, 이는 재벌이 급성장한 배경이었다.

박정희 모형의 다섯 가지 요소는 서로 맞물려서 돌아갔다. 예를 들면, 자본축적 극대화와 수출주도 전략이 맞물려 있었다. 투자의 증대는 곧 자본재 수입의 증대를 의미했기 때문에 자본축적 극대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수입에 필요한 외화를 벌어야 했다. 박정희 정부가 수출을 강조한 근본적 이유는 이것이었다. 또한 수출주도 전략은 선진기술 따라잡기 전략과 맞물려있었다. 수출주도 전략을 통해 선진국 시장과 접촉면을 확대함으로써 선진기술 모방을 촉진한 것이다. 일례로 OEM 수출은 기술이전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마지막으로, ‘선택과 집중’에 입각한 산업정책은 원천적으로 정부주도 성장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원배분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주도했기에 특정 산업과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식 추격형 성장체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급속한 산업화와 고도성장을 일구어냈다. 위에서 살펴본 성장 동력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노동력은 풍부했고 인구는 빠르게 성장했다.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교육이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미미했던 투자율이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자본축적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워낙 자본이 부족한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자본축적에 따른 성장효과는 매우 컸다. 그리고 ‘후발국의 이익’을 향유하면서 선진기술 따라잡기로 손쉽게 생산성 증가를 이루어냈다. 이렇게 해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기는 했으나, 박정희 모형은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과도한 성장 추구가 경상수지 적자나 인플레이션 등 거시경제적 불균형을 야기하였으며, 내수를 경시하고 수출에 주력한 결과 대외의존도가 높아져 해외충격에 취약한 경제가 되었으며, 정부주도로 산업화를 추진한 결과 관치금융과 재벌체제가 형성되었다. 

197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위기로 치달을 무렵 거시경제적 불균형 문제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1979년 말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고 미국의 금리인상이 단행된 이후 1980년대 초반 세계경제의 불황이 찾아오면서 한국경제도 외채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행히 전두환 정권에서 ‘경제대통령’의 역할을 한 김재익 수석의 주도로 안정화 정책과 점진적 자유화 정책 등 박정희 모형의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한 개혁이 추진되었고, 성공적으로 연착륙을 한 한국경제는 다시 고도성장을 재개하여 1980년대 말에는 ‘3저호황’이라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이때에는 산업화도 거의 완성되었고 선진기술의 모방과 응용도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대개 이루어져 한국경제가 성숙단계에 들어섰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성장동력이 약화되는 노화현상이 나타났고, 이후로 한국경제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1990년대 초부터 한국경제는 창조적 혁신을 활성화하여 노화를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단계로 이행해야만 했으나, 추격형 성장체제의 전환이 너무 더디게 이루어짐으로써 노화가 가속화되고 말았다.

성장체제 전환의 지체와 반복되는 경제위기

 

 

추격형 성장체제는 ‘후발국의 이익’을 잘 활용하는 체제로서 중진국 혹은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면 한계에 봉착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과잉축적 혹은 자본의 생산성 저하라는 노화현상을 피할 수 없다. 과잉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자본의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실효노동력을 늘리는 것과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것 등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국의 경우, 박정희 모형의 유산 때문에 이러한 해결책을 실현하기가 지극히 어렵게 되었다.

자본이 부족했던 시절 자본축적 극대화를 위해 실시했던 자본우대·노동하대 정책을 자본과잉 시대에도 유지한 까닭에 실효노동력은 갈수록 감소하고 과잉축적의 문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우선 극단적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심각한 인구증가율 감소와 인구구조 악화는 자본우대·노동하대 정책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고용불안, 저임금과 임금차별, 장시간 노동, 복지의 부실로 인한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 등이 저출산의 주범이다. 노동을 하대하니 당연히 노동의 재생산이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노동을 하대한 결과 노동의 질 또한 저하된다. 노동시장 진입 이전에 학력경쟁과 스펙경쟁은 치열하지만, 일단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는 선진국 노동자들에 비해 교육훈련과 자기계발을 소홀히 한다.

모방에 의한 기술발전이 더 이상 쉽지 않은 상황에서 총요소생산성 증가는 창조적 혁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추격형 성장체제의 일환으로 구축된 기존 지식 습득과 응용 위주의 교육과 연구개발(R&D) 시스템이 이러한 전환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주입식 교육과 정답 찾기 시험을 통한 서열화 교육에 매달린 결과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발상과 비판적이고 실험적인 사고가 억제되고 쇠퇴하기 때문이다. R&D도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연구는 거의 하지 않고, 당장에 수익을 낼 수 있는 선진기술의 적용과 응용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구에 회자된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은 서울공대 교수들이 한국의 산업기술을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제언을 한 내용인데, 선진기술의 도입을 넘어서서 자체적으로 시행착오를 감수하면서 창의적 개념설계를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8)

혁신을 가로막는 박정희 모형의 유산은 이뿐이 아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은 남의 것을 모방하고 따라잡기 할 때는 유효하지만 새 것을 창조할 때는 부적절하다. 점진적 개선이나 실용적 연구가 아닌 진정으로 창조적인 혁신, 소위 ‘파괴적 혁신’들은 많은 경우 유망한 분야에 집중 투자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외의 곳에서 나온다. 창조는 국론통일이 아닌 백화제방을 요구한다. 대세와 타산에 이끌리지 않고 다양한 실험과 고집스런 천착을 해야 한다. 작년에 ‘알파고’에 놀란 정부가 인공지능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대응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바로 이런 발상 때문에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 뒤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부가 집중 투자를 해도 일본의 중소기업 연구원들도 척척 받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으며, 단 하나의 파괴적 혁신이나 핵심 원천 기술도 나오지 않은 까닭이다.

박정희 모형의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유산인 재벌체제는 창조적 혁신을 억압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재벌이야말로 따라잡기 방식 R&D와 ‘선택과 집중’ 전략의 화신이다. 재벌은 고급 자원을 독점하고, 산업생태계를 지배함으로써 혁신적인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재벌은 우리나라 R&D를 주도하지만 항상 근시안적이고 실용적인 연구에만 집착하고, 절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연구나 모험적인 연구에 투자하지 않는다. 자수성가한 부자가 드물고 상속부자가 부를 대부분 차지함으로써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는 문제도 결국 재벌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이는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과 경영권을 자식에게 세습하는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장체제의 문제를 지금까지는 성장 동력의 관점에서, 즉 공급 능력의 확대라는 측면을 강조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수요의 문제도 중요하다. 공급 혹은 생산 능력의 확대는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것이고 실제로 얼마큼 성장이 실현되는지는 총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실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잠재성장률보다 낮았고, 이는 다시 잠재성장률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었다. 이는 수요부족이 만성화되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이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천문학적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은 더디게 증가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여 소비수요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가계소득도 분배가 점점 더 불평등해져서, 소비를 해야 하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가는 소득은 줄어들고 돈이 이미 넘치는 고소득층에게 가는 소득이 더욱 늘어 전반적인 소비수요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박정희 시대부터 지속된 자본우대·노동하대 정책, 복지의 부실, 내수보다 해외수출을 중시하는 성장전략 등의 영향이다.

1990년대에 들어선 한국경제는 자본축적 극대화에서 노동을 중시하고 사람에 투자하는 전략으로, 습득형 교육과 모방형 R&D에서 창의 교육과 혁신지향 R&D로, 재벌중심 산업구조에서  중소·벤처기업이 활성화되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구조로, 수출주도 성장전략에서 내수강화 전략으로 전환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하면, 추격형 성장체제로부터 혁신형 성장체제로의 대전환이다. 그러나 전환은 매우 더디게 진전되었고 때로는 강력한 반동의 힘에 가로막혔다.

성장체제 전환이 지체된 결과 성장 동력이 쇠퇴하고 성장률이 급속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부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기적인 부양책을 일삼았고, 이는 더 큰 화를 자초하기 일쑤였다.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가 걸어온 길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0년대 전반에는 부양책과 자본자유화 등으로 과잉투자가 일어났고 이는 결국 1997년 IMF외환위기를 낳았다. 이후 한국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제2의 수출주도 성장을 하면서, 분배는 악화되었고 내수는 갈수록 취약해졌으며 대외의존도는 극도로 심화되었다. 구조개혁은 미룬 채 내수를 부양하려는 정책은 2003년 카드채 위기와 그 이후 계속된 가계부채 폭등을 불러옴으로써 일시적 성공에 비해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대외의존도가 극심한 상황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제2의 외환위기를 겪었고, 근래에는 국제교역이 매우 저조한 탓에 수출이 부진하였고 성장률이 2%대에 그쳤다.

성장률의 하락은 분배를 더욱 악화시켰다. 고도성장이 가져오는 낙수효과가 사라지자 중산층이 붕괴하고 빈곤층이 늘어났다. 성장률의 하락은 또한 기회의 감소를 초래했고, 기득권층이 아니면 그나마 남아있는 기회를 잡기가 너무나 어려워졌다. 국민의 70~80%가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상승은 어렵다고 느끼게 되었고, 젊은이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한 성공의 기회는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고도성장이 가져오는 역동성과 기회가 소멸하다보니 정직한 땀과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신 권력을 이용하여 남들이 생산한 가치를 빼앗아 차지하려는 소위 이권추구 행태가 팽배하고 있다.9) 


성장체제 전환으로서의 경제민주화

 

 

추격형 성장체제의 전환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만, 박정희 모형의 유산이 강고하게 남아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특별히 더 어려운 면이 있다. 이 어려움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사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렇게 과거에 성공한 경험에 집착하여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성공의 함정’이다. 이명박뿐 아니라 박정희 시대에 보릿고개를 넘기던 가난에서 탈출하여 고도성장의 혜택을 맛보았던 수많은 국민이 이 함정에 빠져, 탈피해야 할 과거의 모형에 불과한 박정희 모형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고도성장 정책, 친기업·반노동 정책, 수출 확대를 위한 고환율 정책 등은 박정희 시대의 경험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이로써 더디고 미약한 움직임이나마 성장체제 전환을 조금씩 추진하던 흐름이 심각한 반동을 맞게 되었다.

7% 성장률이라는 터무니없는 고도성장을 약속했던 이명박 정부의 기대와는 반대로 재임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2.9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막대한 국가채무와 가게부채의 증가 위에서 달성한 수치였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악재를 만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책 방향의 탓이 컸다. 성장은 뜻대로 되지 않는 가운데 양극화는 심화됨에 따라 국민의 희망과 기대는 좌절과 불만으로 변했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흔히 재벌개혁을 위한 몇 가지 법 개정을 경제민주화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경제민주화는 이런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다. 경제정책과 제도의 근본적 변화, 자본위주 모방중심 추격형 성장체제에서 노동위주 혁신중심 선도형 성장체제로의 완전한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전환으로 혁신의 기운을 강화하는 것만이 해법이고,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조로증에 걸린 한국경제를 위한 회춘의 묘약인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분배를 골고루 하고 복지를 제대로 하며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선진기술의 모방과 습득을 넘어선 내생적 혁신을 고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주입식, 습득형 교육에서 토론식, 창의형 교육으로 변화해야 하며, 목전의 이익만을 좇는 응용연구에 치중하는 풍토에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연구를 고취하는 풍토로 전환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아닌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을 추구해야 한다. 정부주도 산업진흥정책과 관치금융의 유습을 청산하여 재벌중심 독점구조를 타파하고, 중소기업과 혁신적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여 이권추구사회를 혁신추구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이 모든 변화의 원칙이고 토대다.

그동안 말로는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혁신주도, 창조경제 등 온갖 좋은 얘기들을 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매우 더디고 몹시 부족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제도와 관행, 기득권과 사고방식이 변화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특히 재벌은 한국 사회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토대로 변화를 거부하는 저항의 요새 역할을 해왔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의 개혁 물 타기와 노무현 정부의 소위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의 배후세력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반동을 앞장서 고취했으며,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파트너였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우고 집권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불행하게도 박근혜는 자신의 공약은 팽개치고, 박정희 모형이 낳은 괴물인 재벌과 유착하여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 결과 박근혜 아이러니는 희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기득권을 고집하고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집착하다가는 모두가 공멸할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자본축적 극대화를 바탕으로 한 성장전략에 내재한 최고의 모순은 인구문제다. 한국경제는 금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절벽에 맞닥뜨린다. 성장체제 전환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지속되고 있는 혁신 부진의 문제는 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보다 앞서나가는 중국과 갈등이 불거진 지금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한국경제는 이제 새로운 정치지도자의 선택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 경제발전론은 바로 이런 도약의 조건과 과정을 주된 관심사로 하는 분야다.
  • 엄밀하게 말하자면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은 생산과정에 투입하는 생산 자본만이 아니라 자본소득을 발생시키는 모든 형태의 국부를 통칭하는 개념으로서 이를 자본생산성의 역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부는 직간접적으로 생산에 활용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는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다. 
  • 1961년에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92달러, 미국은 2,935달러였으며, 2015년에는 각각 27,222달러와 56,084달러였다.
  • 한국경제의 성장동력 저하를 개탄하는 것은 무조건 성장만을 추구하고 비현실적인 성장목표에 집착하는 성장지상주의와는 전려 다른 것이다. 적정성장률이 얼마인지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으나, 예를 들어 일인당 국민소득이 향후 50년 동안 미국의 90% 수준에 이른다는 다소 보수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미국의 일인당 소득이 연평균 1.5%씩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일인당 소득은 매년 약 3.3% 성장해야 한다.
  • 자세한 논의는 다음 논문 참조. 주상영, “피케티 이론에 비추어 본 한국의 현실”, 유종일 엮음, <피케티,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울, 2015에 수록
  •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억만장자 명단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인 억만장자 중 상속부자의 비율은 74.1%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 비율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2%와 18.5%에 불과했으며, 미국은 28.9%, 유럽은35.8%였다.
  • 유종일, <유종일의 진보경제학>, 모티브북, 2012.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축적의 시간>, 지식노마드, 2015.Sagalnik, Peter Dodds와 함께 수행한 실험의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 유종일, “이권추구에서 혁신추구로”, [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경향신문, 2016.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