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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제적 인간, 사회적 얼간이,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7-18 14:04:53
  • 조회수 : 1446

 

경제학 교과서에서 인간은 합리성이 핵심인 참으로 단순한 존재로 규정된다. 이때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이란 자기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관성 있는 선택을 의미한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용을 얻는 것이다. 자기이익 혹은 선호는 각 개인에게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어서 개인은 그저 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계산과 그에 따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게는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는 어려움만 있을 뿐이고,  협력적 행동과 이기적 행동 사이의 선택에 관한 도덕적 갈등이나  삶의 원칙에 관한 철학적 고뇌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인간’은 우리가 사람답다고 여기는 사람, 좋은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그리고 경제적 합리성에 대한 과신은 황당한 정책적 실패와 엄청난 사회적 재앙을 낳기도 한다. 경제학이 더욱 유용한 학문으로 발전하려면 인간을 단지 경제적 합리성을 지닌 존재로만 볼 것이 아니고 보다 깊이 있고 객관적인 인간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과 ‘도덕감정’

 

경제이론은 시장이 완벽하게 작동할 경우 개인들의 자기이익 추구가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가져온다고 한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의 박애심 때문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결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의 이기심을 효율적 자원배분으로 이끄는 것이다. 나아가 이기심은 경쟁을 낳고, 경쟁은 혁신을 낳는다. 이런 까닭에 경제학은 이기심을 부도덕한 것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기심을 적극 옹호한다. 근대경제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에지워스(FY Edgeworth)의 말을 빌자면, “경제학의 제1원리는 모든 사람은 자기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개인의 이기심과 시장원리만으로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통제되지 않은 이기심은 탐욕이 되고, 탐욕은 공동체, 나아가 시장경제 자체를 파괴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이 무조건 내 이익만 추구하는 극단적 이기주의는 협력과 질서를 불가능하게 해 공동체를 파괴하고,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과욕은 생명과 재산의 파괴를 초래한다. 보수적인 논객들이 흔히 이기심(selfishness)과 탐욕(greed)을 구분하지 못하고, 탐욕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찬양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절제된 이기심과 고삐 풀린 탐욕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다.

 

사실 누구보다 아담 스미스 자신이 이 점을 잘 설파하였다. 그는 <국부론>을 출판한 1776년보다 17년이나 앞선 1759년에 <도덕감정론>을 발간하였는데, 그 첫 마디가 다음과 같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연민과 동정의 원리가 존재한다. 이 원리들로 인해 우리는 타인의 처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자기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타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스미스는 인간의 자비로운 마음이 이기심을 억제하여야 정서적 균형을 이루게 된다고 주장했으며, 자비심을 배제한 고삐 풀린 탐욕을 결코 승인하지 않았다. 흔히 간과되고 있지만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도적감정’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등의 연구를 보면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과 협력을 하도록 유도하는 ‘도덕감정’은 특별히 윤리적이고 고상한 자비심만은 아니라고 한다. 자비심 외에도 직관적인 판단과 온갖 종류의 다양한 감정이 이기심을 억제하고 도덕적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직관과 감성은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진화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차별을 못 참는 원숭이: 직관과 감성의 사회적 기능

 

2003년에 미국의 에모리 대학에서 유명한 실험이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간단한 과제를 주고 이를 수행한 학생들에게 상을 주는 실험이었다. 여기서 모든 학생들에게 상으로 오이를 주었을 때는 아무 불평이 없던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는 포도를 주고 자신들에게만 오이를 주자 엄청 화를 내면서 오이를 내던졌다고 한다. 화가 난다고 오이를 내던지면 자기만 손해 아닌가? 이 실험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냉정하게 자기 이익을 계산하는 이성보다 불공정을 참지 못하는 감정이 앞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실험이 유명세를 타게 된 까닭은 여기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갈색꼬리감기원숭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원숭이들이 공정함을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밝히는 더 정교한 실험들이 다수 행해졌다.

 

원숭이는 그렇다 치고, 사람은 어떨까? 더 합리적이어서 감정에 휩쓸려 손해를 감수하는 짓 따위는 안 할까?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게 있다. 갑과 을에게 천 원짜리 지폐 열 장을 주고 나누어 가지라고 한다. 어떻게 나눌지는 갑이 정하고 을은 이를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만약 을이 갑의 제안을 거부하면 돈은 회수되어 둘 다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이들이 만약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라면 갑은 구 천원, 을은 천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을은 천원이라도 받는 편이 전혀 안 받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며, 이를 아는 갑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9:1의 제안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이러한 실험을 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5:5나 6:4 정도로 나눈다.  매우 불공정한 제안을 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사람들은 이런 제안을 대개 거부한다.

 

설사 내게 손해가 될지라도 불공정한 처사를 거부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성향은 인간의 본성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서로를 대할 때 공정성을 중시하게 된다. 그리고 공정하게 서로를 배려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회적 협력을 조직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사회적 협동이 필요한 동물들은 진화과정에서 공정성을 추구하는 강력한 감정을 발달시켰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아담 스미스가 강조한 바 있는 타인의 처지에 관심을 갖게 하는 동정심, 가족과 연인에 대한 사랑이나 친구 사이의 우정, 불의와 부당함에 대한 분노와 혐오, 복수심과 충성심, 명예욕과 수치심 등 다양한 종류의 감정이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복수심 때문에 지금 당장 누군가를 속이거나 이용해먹을 수 있더라도 후환이 두려워 주저하게 된다.1)  남에게 부끄러운 행동이 알려질까 두려워하는 마음, 즉 수치심도 탐욕스러운 일을 억제한다. 평판이 나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상대하기를 꺼리게 되고 결국은 본인에게 손해막심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남의 뒷담화를 끊임없이 해대는데, 이러한 성향도 사람들이 나쁜 평판이 생기는 걸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서 협력을 증진시키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전통적인 진화론에서 생명의 진화는 ‘적자생존’을 위한 경쟁의 산물이고 ‘이기적 유전자’의 논리가 관철되는 과정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알고 보면 진화는 우리에게 감정이라는 강력한 협력의 기제를 선사하였다. 하버드대학의 수리생물학자 마틴 노왁(Martin Nowak)은 가장 원시적인 박테리아들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모든 수준의 생명체들은 협력을 기반으로 생존한다는 관찰을 토대로 경쟁 못지않게 협력 또한 생명 진화의 본질적 측면이라고 주장한다.2)

 

 

‘합리적 바보’와 ‘사회적 얼간이’

 

경제학은 자기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인간을 상정하지만, 이러한 합리성만으로는 이기심의 제어가 불가능하고 따라서 타인과의 협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생활 자체가 어려워진다. 19세기에 미국 버몬트주에 살았던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 씨의 비극적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게이지 씨는 원래 철도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십장으로 사회성이 좋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발파작업 도중 사고를 당했다. 화약구멍을 뚫는 1미터 길이의 쇠막대가 눈을 관통하여 두개골 상단부를 뚫고 나오는 끔찍한 사고였다. 그는 이 사고로 전두엽 대뇌피질 이라 불리는 눈과 이마 사이의 뇌가 거의 날아가버렸는데,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내 일어나 걸을 정도로 몸이 멀쩡했다. 수주 후에는 인지능력까지 회복해서 언어기능과 기억력도 돌아왔고, 계산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이지 씨는 과거의 그와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부지런하며 인기가 많은 십장이었던 그가 완전히 무책임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이내 직장을 잃고 떠돌이로 지내다가 몇 년 만에 죽고 말았다.

 

현대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게이지 씨와 유사한 뇌손상을 입은 경우 인지 및 계산능력은 보존되지만 책임감을 상실하고 감정의 표현과 해석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회생활이 곤란해지는 것이다.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손상된 게이지 씨는 공감능력 등 다양한 정서적 기능을 상실하였고, 그 결과 책임감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의 ‘도덕감정’이 없어져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신경과학의 권위자 안토니오 다마시오 (Antonio Damasio)는 게이지 씨의 증상을 “알기는 하지만 느끼지 못하는 병”이라고 했다. 3)

 

게이지 씨는 자신의 선호와 욕구,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분명한 인식능력과 계산능력을 가졌으니,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불행한 최후는 그런 인간은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아시아 출신으로 유일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야 센(Amartya Sen)은 게이지 씨에 관한 현대적 연구가 나오기 수십년 전에 ‘합리적 바보(Rational Fools)’라는 논문에서 근대경제학이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은 ‘사회적 얼간이(social moron)’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4)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완벽하게 ‘경제적인’ 인간, 즉 근대경제학이 말하는 ‘합리적인’ 인간은 사실은 바보에 불과하며 사람들의 기피대상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게이지 씨의 경우나 센의 이론은 사람이 이기심과 합리성 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사람은 더불어 살게 되어 있는 존재이며, 이를 위해서는 도덕감정 혹은 공감능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게이지 씨의 경우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전직 십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도덕 감정 결여는 한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만약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고삐 풀린 탐욕에 빠지면 그 피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아 간다. 아담 스미스가 가장 우려한 것이 사업가들의 담합에 의한 독점이윤 추구와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착취였다. 흔히 오해하는 바와 같이 스미스가 시장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자유방임(laissez-faire)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방대한 <국부론>에 자유방임이란 단어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며, 아담 스미스는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와 약자에 대한 보호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스미스는 ‘도덕감정’에 의한 이기심의 제어를 중시했지만, 여기에만 의존하다 보면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탐욕에 의해 건강한 시장경제와 공동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 또한 옹호하였던 것이다.

 

 

‘도마뱀의 뇌’와 대량살상무기

 

합리성은 있지만 감성이 없을 때, 즉 알기는 하지만 느끼지 못할 때 호혜적인 인간관계와 공동체는 붕괴된다. 그렇다고 합리적 계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합리성 또한 이기심이 과욕으로 커나가는 것을 억제하고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하도록 해주는 필수적인 요소다. 합리성에 의해 절제되지 않은 이기심은 곧 과욕이 되고, 이러한 과욕은 우리를 눈멀게 한다. 욕심에 눈이 멀면 위험천만한 일을 벌이게 되고, 이는 반드시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다.

 

탐욕이 극에 달한 월가의 금융자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돌아보라. 2008년 가을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고 월가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을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깨달았다.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최첨단 금융기법으로 연금술사처럼 많은 돈을 만들어낸다는 월가가 알고 보니 상식 이하의 위험천만한 일들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서 시장에 맡기면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위험관리를 잘 할 것으로 믿었던 자신의 생각이 실수였음을 고백했다. 경제이론은 이기심이 클수록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절제되지 않은 욕심은 합리적 판단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실제로 금융사기를 당하거나 무리한 투자나 인수합병을 하다가 망하는 개인이나 기업들을 보면 다 지나친 욕심 때문에 그리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가의 투자은행을 거쳐 지금은 하버드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있는 테리 번햄(Terry Byrnham)은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라는 책에서 개인투자가들의 행태나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5)  우리 머릿속에는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도마뱀의 뇌가 들어 있어서 중요한 순간에 합리적 판단보다는 충동적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탐욕과 공포는 우리를 충동적 선택으로 이끄는 가장 원시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통제되지 않은 금융시장에서는 탐욕과 공포가 낳은 “광기, 패닉, 붕괴”의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심리학자로서 유일하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은 즉각적으로 직관과 감정 및 익숙한 경험에 따라 판단하는 ‘빠른 사고’와 이것저것 따져보고 계산하면서 판단하는 ‘느린 사고’를 구분하고, ‘빠른 사고’가 우리의 제한된 계산능력을 아껴 쓰도록 도와주는 매우 유용한 판단방식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비합리적 편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6)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편향성이 과신(過信, overconfidence)이라고 한다.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과도하게 낙관적인 판단을 하고, 그 결과 무리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충동적 과신이 없다면 엄청난 불확실성 앞에서 과감한 투자를 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미래의 근원적 불확실성 위에서 이루어지는 투자결정은 합리적 계산보다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에 의해 좌우된다는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통찰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케인즈는 투자자들이 때로는 낙관적 과신이 무너지면서 심각한 비관론에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경기변동을 초래하는 핵심적인 원인이 투자자들의 심리적 변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은 합리성 가정을 수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미래에 대한 예상까지도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는 소위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 가설까지 도입하여 시장경제의 작동에 관한 환상을 키웠고, 그러한 토대 위에 구축된 효율시장이론은 지속적인 규제완화를 정당화하였고 급기야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기에 이르렀다.7)

 

‘도덕감정’과 ‘합리적 판단’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탐욕과 과욕, 형평과 안정을 위한 적절한 규제체제를 상실한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파국을 가져온다. 대표적으로 금융위기를 초래하여 경제의 기반을 흔들고 실업자를 양산한다. 세계에서 가장 주식투자를 가장 잘한다는 워렌 버핏(Warren Buffet)이 규제되지 않고 투명하지 않은 파생상품을 ‘금융의 대량살상무기’라고 부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것뿐만 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하여 거듭되는 대형 인명사고의 경우도 통제되지 않는 탐욕의 결과다. 사고가 나면 망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리요만 탐욕은 과신을 낳고, 규제되지 않는 기업들은 설마 사고가 나기야 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한없이 위험한 짓을 하며 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대형사고가 터지고, 글자 그대로 대형살상무기가 되는 것이다.

 

 

경제학의 반성

 

인간의 이기심과 합리성은 부정할 수 없는 인간성의 구성요소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본능적 충동, 직관, 감성 등 비이성적 본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이기심이 ‘도덕감정’에 의해 제어되지 아니하면 공동체를 파괴하는 탐욕이 되고, 고삐 풀린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과신과 충동의 노예가 되어 합리성을 상실하고 만다. 어느 정도 위험을 무릅쓰고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과욕에서 비롯되는 과신은 대량살상무기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아담 스미스가 강조하듯이 건강한 시장은 공정한 경쟁에 의해 성립한다. 이는 공정한 경쟁규칙의 준수는 물론 약자에 대한 보호와 강자에 대한 규제를 적절히 시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이런 건강한 시장경제가 발달할 때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원활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또한 건강한 시장경제의 발달이 공정, 정직, 친절 등 사회윤리의 발달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이 ‘경제적 인간’에 대한 지극히 협소한 정의와 경제적 합리성에 대한 과신을 바탕으로 시장만능주의적 경향을 보이면서 부작용이 증폭되었다. ‘도덕감정’을 무시하고 이기심에만 호소하는 정책처방으로 공동체의 연대를 파괴하는 일도 있고, 이기심을 합리성으로 정당화함으로써 이기적 행동에 대해 도덕적 면죄부를 주고 승자독식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기도 했다.8)  과도한 규제완화와 시장자유화 정책은 대형 금융위기와 극도의 소득불평등을 초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은 보다 공고한 개념적 토대와 보다 현실적합성이 높은 이론을 요구 받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경제적 인간’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경제학은 이제 보다 깊이 있고 균형 잡힌 인간상을 토대로 재구축되어야 한다.

 

 

 1) 2014. 3. 31자 New York Times의 “Spite is Good. Spite Works”라는 기사는 한없이 착한 사람들만 사는 사회에서는 남을 등쳐먹고 남의 것을 빼앗는 자들이 득세할 수 있고, 반면에 억울한 일을 당하면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는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는 여러 연구결과를 보도하고 있다. (http://www.nytimes.com/2014/04/01/science/spite-is-good-spite-works.html?_r=0)
 

2) Martin Nowak, SuperCooperators: Altruism, Evolution, and Why We Need Each Other to Succeed, New York: Free Press, 2011.

 

3) Antonio Damasio, 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 New York: Quill, 2006.
 

4) Amartya K. Sen, “Rational Fools: A Critique of the Behavioral Foundations of Economic Theory,” Philosophy & Public Affairs, Vol. 6, No. 4 (Summer 1977), pp. 317-344.

5)  테리 번햄,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서은숙 옮김, 갤리온, 2008.

6)  Daniel Kahneman, Thinking, Fast and Slow,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2013. 이러한 심리학적 연구를 흡수한 행동경제학은 전통적인 경제학과 달리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댄 애리얼리, <경제 심리학>, 김원호 옮김, 청람출판, 2010).
 

7) 조지 애커로프•로버트 쉴러, <야성적 충동>, 김태훈 옮김, 랜덤하우스, 2009.

8)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2012.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2014. 7. 18(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