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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기부양의 정치경제학과 한국의 특수성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9-05 15:47:24
  • 조회수 : 1417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힘이 대단하다. 그가 주도한 적극적 경기부양책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고, 정치시장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한마디로 전방위적 경기부양정책이라 할 수 있는 ‘초이노믹스’는 7.30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진정성도 별로 없는 세월호 심판론에 매달린 야당과는 대조적으로 정부여당은 취직이 안 되고 장사가 안 되어 아우성치는 국민들의 원성에 적극 대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건 상식이다. 경기가 나쁠 때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는 것은 케인즈 경제학의 핵심 주장이며, 서구에서는 이러한 입장이 대체로 진보적 정치세력이 취하는 입장이다. 지금 미국에서 폴 크루그만(Paul Krugman)과 같은 진보적인 학자들은 더욱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과 재정확대 정책을 주장하고, 오히려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보수언론은 통화와 재정의 팽창에 반대하며 긴축정책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나라의 민주진보 진영은 경기부양을 경원시하고 심지어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100일계획’은 흔히 나쁜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경제참모였던 이정우 교수가 “인위적 경기부양”의 유혹을 뿌리쳤다고 거듭 자랑하는 것은 이러한 지적 풍토를 반영한 것이다. 경기부양에 관한 태도와 정치적 성향 사이의 관계가 왜 서구와 한국에서 정반대로 나타나는지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연구주제다.

 

 

“우리는 황금십자가형을 거부한다”

 

189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경선의 다크호스였던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을 한 덕분에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 연설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는 황금십자가형을 거부한다(You shall not crucify mankind upon a cross of gold)”였다. 여기서 황금십자가란 금본위제도로서 브라이언은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대통령 등 금본위제를 옹호하는 세력에 맞서 은을 화폐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자는 세력의 대표선수로 나선 것이었다. 당시 금본위제 옹호세력은 과거에 은화 주조를 너무 많이 해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했고, 반대세력은 통화공급이 부족하여 디플레이션이 일어났고 경기침체가 깊어졌다고 보았다.

 

금본위제를 둘러싼 갈등은 부유한 자산가와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민중 사이의 대립이었다. 뉴욕의 금융자본이나 서부의 석유자본 등의 입장에서는 부의 가치를 보전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통화증발과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화폐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금본위제가 바람직했다. 그러나 노동자나 상인 등 수입이 경기에 민감하게 연동되어 있는 사람들에겐 물가안정보다도 경기 호황과 경제성장이 훨씬 중요하다. 경기가 나빠지면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거나 임금이 삭감되고,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되어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노동자에게 물가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봉급이 고정된 기간 동안은 물론 그렇다. 그런데 경기가 좋고 일자리가 넘쳐나게 되면 봉급은 물가보다 빨리 오른다. 장을 볼 때마다 물가상승에 대해 푸념하지만 사실은 실질소득이 오르고, 또 일자리가 많으니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협상력이 높아진다. 일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겐 물가가 조금 상승하더라도 경기가 활성화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까닭이다. 약간의 인플레이션은 경제활력에 도움이 된다. 물가가 오르기 전에 먼저사려는 소비심리 자극도 되고, 정부나 민간의 부채와 이자부담이 실질적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각국 중앙은행들은 대개 2~3%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정한다.

 

반대로 물가가 하락하면 우선 당장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지만 디플레이션처럼 노동자나 상인에게 나쁜 것도 없다. 디플레이션 하에서는 기다리면 물건 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구매의사가 소극적으로 되고 따라서 유효수요가 위축된다. 현금흐름은 줄어들어 기존의 부채를 상환하는 부담이 커지는 것도 큰 문제다. 그래서 총수요가 감소하고 파산이 늘면서 경기가 악화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디플레이션은 쌓아놓은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일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 대다수에게는 재앙이다. 버블 붕괴 이후 20년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디플레이션의 고통을 경험한 일본은 최근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과감한 통화팽창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데 성공했다. 디플레이션에 빠질 우려가 제기되는 유럽에서도 유럽중앙은행이 더욱 적극적인 대응을 할 전망이다.

 

1896년의 미국은 디플레이션의 고통 한가운데 있었다. 1893년의 패닉에서 시작된 경기침체가 계속 악화되어 1896년에는 25%에 이르는 대량실업과 농민 파산이 이어졌고, 가난한 자들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무수히 죽어가는 비참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브라이언은 금본위제 반대를 고리로 민중당(Populist Party)과 선거연대를 했으나 대선에는 실패했고, 오히려 금본위제를 본격적으로 확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직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그 놀라운 역사

 

자본주의가 발달한 서구 선진국의 물가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단히 흥미롭고도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대공황 이후의 물가의 움직임은 그 이전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림 1>은 영국의 지난 300여 년간 연평균물가상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공황 이전에는 물가가 주기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물가상승률이 양과 음을 반복했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반복된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물가수준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100년 전에 1 파운드로 살 수 있던 것과100년 후에 1 파운드로 살 수 있는 것이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공황을 거치면서 물가의 움직임은 완전히 달라졌다. 물가상승률의 크기가 달라질 뿐이지 물가는 계속 오르기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100년 전에 1 파운드로 살 수 있던 것을 지금은 50 파운드는 줘야 살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수백 년간 1/2의 확률로 발생하던 디플레이션이 실질적으로 사라졌고,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발생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영국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다. 1)

 

<그림 1> 영국의 물가상승률: 1694~2007

 


도대체 대공황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대공황 이전 장기적인 물가안정은 금본위제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통화공급이 금의 공급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에 금의 공급증가가 경제성장보다 빠르면 물가가 오르고 이에 못 미치면 물가가 내리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금본위제 하에서 물가는 곧 물건들과 금의 교환비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비율은 물건의 공급이 증가하는 속도, 즉 경제성장률과 금의 공급 증가율의 고저에 따라 등락을 반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정한 수준을 맴돌았던 것이다. 그런데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자금 조달을 위해 화폐증발이 필요했고 금본위제는 정지되었다. 인플레이션은 치솟았다. 전쟁이 끝나자 통화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대다수의 유럽국가들은 1923~26년 사이에 금본위제를 복원했다. 하지만 이는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우려한 대로 몇몇 나라에서 디플레이션을 불러왔으며, 결코 경제안정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오히려 금본위제는 1929년 월가의 붕괴에서부터 시작된 대공황을 악화시킨 주범으로 꼽힌다. 은행파산이 잇따르는 가운데도 금융완화를 하지 않고 오히려 금본위제를 지키기 위하여 이자율을 올리기까지 함으로써 통화수축과 디플레이션이 심화되었다. 대공황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본이나 남미처럼 금본위제를 신속히 포기한 나라들은 조기에 경기회복을 이루었지만, 프랑스처럼 금본위제를 최후까지 고집한 나라들일수록 경기회복이 지연된 것으로 평가된다.

 

어쨌든 대공황의 여파로 선진각국에서 금본위제가 붕괴하고 신용화폐제도가 도입되었다. 미국의 경우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취한 조치가 바로 금본위제 중단이었다. 이로써 통화공급을 마음껏 확대하여 은행을 구제하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경제는 회복세로 들어섰다. 신용화페제도가 도입된 이래 선진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신축적 통화공급을 통해 경기를 적절하게 부양했으며,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열렸다.

 

 

통화정책과 경제민주화

 

케인즈가 “야만의 유물(barbarous relic)”이라고 불렀던 금본위제의 철폐와 신용화폐제도의 도입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세기 말 브라이언이 실패했던 금본위제 반대운동 혹은 “황금십자가” 거부운동이 마침내 승리한 것이었다. 이는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가 낳은 것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대중민주주의 발달과 노동운동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아이첸그린(Barry Eichengreen)이 논평한 것처럼 대중민주주의와 금본위제는 양립할 수 없었고,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정책우선순위의 무게중심이 물가안정에서 완전고용으로 이동한 것이다. 2)

 

대공황을 계기로 통화정책만 민주화된 것이 아니다. 사실 뉴딜(New Deal) 정책은 포괄적인 경제민주화 개혁이었다. 금본위제 철폐 이후 중앙은행의 ‘최후 대부자 기능’ 및 상업은행에 대한 건전성 규제 및 감독을 강화하였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분리,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설립, 증권감독기구(SEC) 설립 등 전면적인 금융개혁을 단행하였다. 아울러 노후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보장(Social Security) 제도를 도입했고,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과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노동시간의 규제를 강화하는 노동개혁 조치들도 단형되었다. 불공정 경쟁을 제거하고 임금과 가격을 올리기 위한 기업 준칙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한계소득세율은 7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급격히 인상되었다. 미국경제는 뉴딜개혁의 결과 금융안정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고, ‘대압착(Great Compression)'이라고 불리는 빈부격차의 급격한 축소가 이루어졌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유사한 개혁이 서구 선진국으로 확산되었고,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도래했다. 이 시기에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적절한 조합에 의해 정부가 경기를 조절하는 안정화 정책(stabilization policy)이 시행되었고, 이로써 경기침체와 실업문제는 정복된 듯 보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성장은 저하되고 인플레이션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했고, 케인즈 경제학은 위기에 빠졌다. 이후 통화주의를 필두로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을 새롭게 복원한 사조들이 경제학계를 주도하면서 정책기조가 신자유주의로 변화했다.3)  경제민주화가 후퇴하고 시장만능주의가 강화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통화정책은 경기조절보다는 물가안정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경기조절은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에 맡기면 되니 통화정책은 물가안정만 신경 쓰면 된다는 이론이 득세한 것이다. 특히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79년 말부터 물가안정을 달성하기 위하여 정책금리를 대폭 인상 함으로써 세계경기침체와 개도국의 채무위기를 초래하였다. 유럽은 80년대 내내 만성적인 대량실업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1997년에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을 당시 한국은행법을 개정하여 물가안정을 유일한 목표로 규정하였고, IMF가 강요한 고금리 정책 하에서 급격한 경기하강과 대량실업을 경험한 바 있다.

 

 

재정정책과 칼레츠키의 통찰

 

이제까지 화폐제도와 통화정책의 정치적 측면에 관해서 살펴보았는데, 재정정책 역시 유사한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핵심은 고용문제다. 노동자들은 완전고용을 선호하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고용주들은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를 명분으로 팽창적인 재정정책을 반대하는 것이다.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에 대한 믿음을 깨고 정부의 안정화 정책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확립한 사람은 잘 알려진 대로 케인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비자발적 실업이 만연할 수 있고, 이 문제는 정부의 재정지출로 해소할 수 있다는 그의 유효수요이론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그런데 케인즈에 앞서 독자적으로 유효수요이론을 개발한 뛰어난 경제학자가 있었다. 폴란드 출신의 칼레츠키(Michael Kalecki)인데, 폴란드어로 논문을 썼으니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마치 대륙의 라이프니츠와 영국의 뉴튼이 각각 독자적으로 미적분학을 발명한 것처럼 대륙의 칼레츠키와 영국의 케인즈가 각각 독자적으로 유효수요론을 전개한 것이다. 칼레츠키는 케인즈처럼 세련된 화폐이론을 구축하진 못했지만, 유효수요론 만큼은 케인즈보다 더 명료하게 정리했다. 더군다나 그것이 지닌 정치적 함의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꿰뚫어보았다. 일찍이 1943년에 발표한 “완전고용의 정치적 측면”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재정정책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것은 간단한 기술적 문제지만, 정치적 반대로 인해 완전고용의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4)  완전고용이 장기간 지속되면 노동규율이 약화되고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가 거세져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그 결과 자본가들과 금리생활자들이 긴축을 요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미국과 영국 등에서 1960년대 말부터 일어난 현상이었다. 1980년대에 대세를 장악한 통화주의는 바로 칼레츠키가 예언한 자본가들과 금리생활자들의 정치적 반격이었던 셈이다.

 

재정팽창에 대한 반대가 완전고용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반대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재정이 팽창한다는 것은 곧 경제에서 정부의 공적 역할이 확대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사회복지나 소득재분배가 확대되거나 사적 이윤창출의 기회가 제한된다는 의미다. 부유층이나 재계에서 반대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을 얘기할 때 항상 재정지출 확대가 아닌 감세를 주장한다. 이들은 정부역할을 제한하면서 부유층과 기업의 조세부담을 완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감세정책의 효과는 지출확대에 비해 훨씬 제한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에 대한 반대논리로 흔히 주장되는 것이 재정건전성이다.5)  복지나 공공부문의 확대를 드러내놓고 반대하기 민망할 때도 재정건전성은 좋은 핑계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에 보수언론이 일제히 이구동성으로 복지공약을 폐기하라고 주문한 것이 좋은 사례다. 재정건전성의 논리를 내세워 선거과정에서 국민에게 수없이 반복하여 약속한 공약을 그야말로 잉크도 마르기 전에 헌신짝처럼 버리라고 요구한 것이다. 재정건전성에 관한 많은 이론적 논란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정치적 편향과 함의가 담뿍 담겨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자본주의의 특수성

 

한국의 진보는 왜 경기부양을 싫어하나? 필자가 항상 궁금하게 생각해온 문제다. 서구의 진보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경기를 부양하기를 바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보적 학자들이 대개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물가안정을 주장하고 금리인하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이는 아마도 한국자본주의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과거에 정부가 매우 왜곡된 경기부양책을 남발했던 탓일 것이다.

 

첫째, 과거 박정희 시대에 인플레이션은 강제저축과 자본축적의 주요수단이었다. 당시의 인플레이션은 경제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약간의 물가상승이 아니라 두 자리 수에 이르는 고공행진을 하면서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압박했다. 국내저축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의 특혜성 금융지원에 의한 과도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만성적 초과수요로 인한 과도한 물가상승이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 인플레이션보다 명목 임금이 더 빨리 올라서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있었으나, 인플레이션에 의한 강제저축으로 실질임금이 노동생산성증가를 밑돌게 되었던 것이다.6)

 

반면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는 기업들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였기 때문에 대출을 많이 받을수록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로써 두 가지 큰 문제가 발생했는데, 하나는 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이었다. 고도성장이 지속되면 높은 부채비율이 별 문제가 아니지만 경기가 악화할 때는 심각한 금융부실을 발생시켜 경제위기를 초래한다. 70년대초와 70년대말에도 그러한 위기가 왔었고, 모두가 기억하다시피 97년의 외환위기도 바로 금융부실을 배경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부동산 투기였다. 빚을 더 빌릴수록 이익이 되기에 기업들은 최대한 많이 빌리고자 했고,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초과하는 부분은 부동산에 투자했다. 부동산 투기의 열풍이 몇 차례 불어 닥치면서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소득 흐름에 비해 과도하게 뛰었고, 기업들은 영업이익보다도 부동산 투기에서 더 큰 이익을 얻는 일이 흔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부는 금융자산에 비해 부동산이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중산층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고, 부의 편중은 심화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한국에서 저금리와 통화팽창은 진보진영의 경계심을 발동시킨다. 특히 부동산 투기에 대한 우려가 크다. 반면에 서구와는 달리 한국의 기업과 자산가들은 저금리와 통화팽창을 별로 반대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당연히 저금리를 선호했고, 노동조합이 약하고 노동시장이 이중구조화 되어있기 때문에 완전고용에 따른 부담이 그다지 없었던 것이다. 자산가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떼돈을 벌던 기억 때문에 저금리를 선호하는 것 같다.

 

둘째, 재정정책과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경험이 많다. 사실 한국의 경제관료들은 재정건전주의에 매우 집착한 편이어서 심각한 재정적자나 정부부채의 누적을 초래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는 과거의 성장정책이 특혜금융과 통화팽창을 위주로 실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민간부문의 과도한 부채가 부실화되면서 문제가 되었는데, 이 때 재정이 건실했기 때문에 적자재정 편성으로 경기부양을 하고 공적자금 투입으로 구조조정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통화금융정책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제 경기부양은 재정이 담당할 몫이 되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대대적 경기부양정책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의 재정정책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지출확대보다 경기부양 효과가 작은 감세에 치중했으며, 감세 중에서도 특히 부양효과가 작고 사회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 부자감세에 치중했다. 지출확대 면에서도 고용창출이나 효율성 면에서 최악의 사업인 '4대강 사업' 등 대형토목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했다. 결과적으로 경기부양 효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으며,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재정은 필요 이상으로 악화되었다. 외환위기 당시에 한번 급격히 늘어났던 정부부채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다시 한번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사실 재정지출 구조의 문제는 박정희 시대 이래 지속된 것으로서 과거의 재정지출도 복지와 교육 등 사회지출에는 인색하고, 토목사업이나 투융자 등 경제사업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었다.

 

셋째,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박정희 시대부터 한국의 경제정책을 지배해온 성장지상주의 패러다임의 문제다. 심각한 금융부실이나 산업간, 지역간, 계층간 불균형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모든 문제를 급속 성장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이런 맥락에서 경기부양이나 경제성장 자체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식이 구조적인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식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상처가 깊은데 수술하면 고통스럽다고 진통제만 맞으면서 버티다가 치명상으로 악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잉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자본시장을 개방하여 외국에서 싼 금리에 단기자금을 마음대로 들여오게 한 것이나, 양극화가 심화되어 서민들의 호주머니는 비어있는데 신용카드를 남발하도록 해준 것이나, 정책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부동산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부양 등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경기부양에 대한 올바른 접근

 

서구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대체로 보수가 경기부양에 적극적이고 진보가 오히려 소극적인 까닭이 어느 정도는 설명된 것 같다. 첫째 이유와 관련해서 아직도 부동산 경기부양에 매달리는 정부의 태도와 과도한 가계부채 수준을 고려할 때 여전히 금리인하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지속적으로 물가상승률이 1%대에 머물고 있어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관련 규제를 제대로 하면서 통화신용정책은 탄력적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 재정정책과 관련해서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재정의 역할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부자증세를 앞세우고 보편증세가 따라가는 증세정책과 지출구조 개혁을 병행해서 복지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공교육과 공공의료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성장지상주의는 당연히 폐기처분하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시절 주장처럼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정책으로 국민행복시대가 열려야 한다. 경기부양책은 어디까지나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연에 그쳐야 한다.

 

경기부양정책, 특히 단기적으로 적시에 실행하는 수요증대정책은 필요성과 효과성이 학문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하지만 단기적 수요증대정책이 불건전한 부채의 축적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해 안정적인 수요기반을 만들어내야 한다. 가처분소득의 분배는 조세와 복지를 통해 재분배를 확대하면 신속하게 개선할 수 있지만, 정치적 제약이 존재한다. 더욱 근본적으로 시장소득의 분배를 개선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경제활성화의 대립물로 여기고, 경기부양을 위하여 경제민주화는 창고에 처박아버렸다. 경제민주화 없는 경기부양에만 매달리는 것은 사상누각을 짓는 위험한 일이다.


 

1) 피케티의 추정에 의하면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모두 동일하게 1700년부터 1913년 사이에는 물가에 거의 변화가 없었으나, 이후에는 상당한 물가상승이 지속되었다. Thomas Piketty,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Arthur Goldhammer (trans.), Belknap, 2014, Figure 2.6, p. 108.

2) Barry Eichengreen, Globalizing Capital: A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2nd e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3) 레이건 정부의 부자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의 이론적 기초가 된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 80년대 이래 거시경제학의 신 주류로 등장한 새고전파 거시경제학(New Classical Macroeconomics) 등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 있다.

4) Michael Kalecki, “Political Aspects of Full Employment,” Political Quarterly, 14/4, 1943, pp. 322-31.

5) 재정건전성 문제는 다음 에세이에서 상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6) 강제저축(forced saving)이란 투자가 국내저축보다 큰 초과수요 상태에서 물가가 오르면서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저하되어 결과적으로 소비가 감소하고 저축은 늘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2014. 9. 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