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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의 경제에세이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유종일의 경제에세이입니다.


[4] 재정에 관한 아홉 가지 거짓말과 한 가지 진실 (1부)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11-12 14:27:22
  • 조회수 : 3389

재정은 곧 정부의 살림살이를 뜻하며, 조세 등 정부의 수입과 국방, 교육, 복지 등 정부의 지출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현대국가에서 재정은 경제의 25~55%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서 재정을 잘 활용하고 통제하는 것은 경제정책의 중심적인 과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제문제가 그렇지만 재정은 특히 정치에 의해 좌우된다. 흔히 세금을 누가 얼마나 낼 것인가, ‘큰 정부’를 지향할 것인가 ‘작은 정부’를 지향할 것인가 등을 놓고 정치적 대립이 존재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무상복지와 증세 등에 관한 논란이 거세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관점과 입장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민주적 공론의 토대 위에서 합리적으로 재정정책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재정의 경제적 기능과 아울러 정치적 성격 또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때론 가치중립적인 경제논리인 것처럼 제시되는 이론들이 정치적 편향이나 심지어 속임수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 분별력이 더욱 필요하다.

 


첫째 거짓말: 복지여왕과 부정수급
 

신자유주의 정책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출세한 계기는 197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의 승리였다. 당시 레이건 선거운동의 주제는 '웰페어 퀸(welfare queen)' 혹은 '복지여왕'에 대한 공격이었다. '복지여왕'이란 수십개의 가명을 이용해서 정부로부터 복지혜택을 잔뜩 받아서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인 캐딜락을 몰고 다닌다는 한 흑인 여성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레이건은 복지가 얼마나 악용되고 세금이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지 강조하기 위해 '복지여왕'의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안 그래도 세금 내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복지여왕'의 얘기를 들은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세금이 낭비되는 것에 분노했고 감세와 복지개혁을 내세운 레이건의 공약에 쉽게 현혹됐다. 레이건은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4년 후에는 그 여세를 몰아 대통령 선거마저 이겼다. 레이건의 정치적 성공에 일등공신 노릇을 한 '복지여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임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러한 사실은 레이건의 앞길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레이건의 후예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틈만 나면 복지축소론을 외치고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보수언론이 대표선수다. 일례로 작년 8월 세법개정안 파동 당시 조중동이 일제히 세금인상 전에 복지예산 누수를 막아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한 것을 들 수 있다.1)  박근혜 대통령도 "부정수급은 도덕적 해이를 넘어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정말 필요한 분들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채는 범죄 행위”라며 부정수급자 색출과 엄단을 지시한 작년 6월의 수석비서관 회의를 비롯해서 여러 자리에서, 급기야는 금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까지 부정수급 문제를 강조했다.


과연 새는 돈이 얼마길래 이런 주장들을 하는 것일까?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내용을 보자. 복지부가 제출한 ‘2013년 주요 복지사업의 부정수급 현황’ 자료를 보면 대부분 사업의 부정수급 비율은 1% 미만에 그쳤다. 특히 부정수급 논란이 거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 부정수급 비율은 인원기준 0.76%, 금액기준 0.22%에 불과했다. 총지급액 3조 3천 3백억원에 비해 부정수급액 72억원은 새 발의 피다. 우리 정부가 돈 써가며 하는 일 중에 이렇게까지 낭비가 없는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복지부는 주요 복지사업 수급자 전체를 대상으로 1년에 두 차례 소득재산을 확인해서 기준초과자에 대한 급여를 중지하고 있으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새정치민주연합 양승조의원은 “부정수급자 적발에 행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복지 사각지대 발생의 원인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긴급복지지원을 확대하는 등 기초생활수급에서 소외되는 비(非)수급 빈곤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국감에서 한국의 ‘복지여왕’은 또 만들어졌다. 새누리당 김현숙의원은 부정수급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일에 앞장섰는데, 차량을 2대 이상 보유한 수급자가 2천명이 넘었고, 심지어 한 사람이 차량을 80대 보유한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자동차 매매상에게 명의를 도용 당하거나, 차량을 처분하고 명의를 정리하지 않는 등의 착오로 생겨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80대를 보유한 사람은 노숙 당시 자동차 매매상에 명의가 도용됐으며, 29대로 차량 소유 2위인 경우도 지인이 명의를 빌려 대포차를 만들어 팔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에 대한 조세감면이나 전기 값 지원은 조 단위로 해도 아까운 줄 모르고, 4대강사업이나 자원외교 등으로 수 십조씩 돈을 날릴 때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던 한국의 보수언론과 보수정치인이 부정수급 몇 푼을 표적 삼아 한국의 ‘복지여왕’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자극적인 사례를 부각시켜 복지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을 불러일으키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일이다.


둘째 거짓말: 래퍼곡선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당시까지만 해도 70%였던 소득세 최고세율을 35%까지 낮추는 대대적인 부자 감세를 실시했다. 그러면서 감세를 하면 부자들이 신이 나서 일도 더 열심히 하고 투자도 더 많이 할 것이기 때문에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세금이 더 걷힐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것이 소위 래퍼곡선(Laffer-curve)의 논리였다. 이는 케인즈의 수요관리정책에 대항하여 감세와 규제완화로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공급중시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의 핵심논리가 되었다. 


필자가 대학원 시절에 들은 얘기에 의하면 래퍼 교수는 어느 날 워싱턴의 한 음식점에서 대통령 후보 레이건에게 자신의 논리를 설명하면서 냅킨 위에다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나타내는 곡선을 그려 보였는데, 이것이 래퍼곡선이 처음 탄생한 사연이었다고 한다. 세율이 0이면 당연히 세수는 0이고, 세율이 증가함에 따라 세수가 증가한다. 그런데 세율이 너무 높으면 근로의욕과 투자의욕이 꺾여서 국민소득이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세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래퍼는 극단적으로 세율이 100%라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할 테니 세수는 0이 될 것이라는 추론에 입각해서 원점에서 시작하여 세율이 증가하면 세수가 증가하다가 세율이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세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마침내 0으로 떨어지는 곡선을 그렸다. 이 냅킨 위의 그림 하나는 레이건 이후 전 세계의 우파 정치인들에게 과도한 사랑을 받았다.


래퍼곡선의 논리는 그럴듯하다. 문제는 그것이 ‘복지여왕’과 마찬가지로 단지 머릿속에서 생각해낸 것이었을 뿐 실제로 현실에서 검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세율이 80~90%가 되어야만 세율과 세수가 반대로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날까 말까인데 우파정치인들은 무조건 지금 세금이 너무 높으니 세율을 낮추면 공급확대 효과로 세수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부자감세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이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갈고 닦은 연기력과 말솜씨 덕분에 인자하고 친근한 할아버지와 같은 인상을 풍기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레이건은 겉보기와는 달리 교묘한 거짓에 의한 여론조작과 국론분열을 도모하고, 노골적인 탐욕과 살벌한 정쟁이 판을 치는 참 나쁜 정치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복지여왕' 같은 거짓 선전이나 공급중시경제학 같은 허황된 이론을 동원해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후원세력인 부유층의 이익을 추구하고 강경보수 세력을 만족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레이건의 감세정책은 물론 이후 부시나 이명박의 감세 정책은 한결같이 세수감소를 초래했건만 아직도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래퍼곡선은 태생부터 지극히 정치적인 편향성을 지닌 이론이었고, 사실관계를 엄밀하게 검증해볼 생각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셋째 거짓말: 재정건전성을 위한 복지축소
 

레이건은 감세정책으로 세수가 줄어드는데도 다른 한편으로는 군비지출을 확대하여 심각한 재정적자를 초래했다. 당시 대통령경제자문회의 의장이던 하버드대학의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교수는 이를 무책임한 재정정책이라고 비난하며 의장직을 사임하기도 하였다. 레이건의 정책은 ‘쌍둥이 적자’라고 불리는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라는 거시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했으니 재정건전성을 신봉하는 펠드스타인의 항의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레이건이 부자감세와 군비지출 확대를 통해 재정적자를 만든 것은 고의적이었다. 유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복지지출 삭감에 나서지 못하는 의회를 재정건전성이라는 명분으로 압박하려고 한 것이다. 재정적자 해소를 중요한 정책과제로 만들어놓고 이를 위해서는 복지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겠다는 전략이었다. 민주당이 이를 거부하면 방만하고 무책임한 정당으로 몰아붙이겠다는 것이 레이건의 정치적 노림수였던 것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부러 재정적자를 만들어 놓고 마치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척 하면서 복지지출을 억제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동일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클린턴 대통령 시절 정보기술(IT) 붐과 부자 증세로 재정이 흑자로 돌아섰지만 부시 대통령은 부자 감세와 전쟁놀음으로 대규모 재정적자 문제를 야기했다.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가 더욱 첨예한 문제가 된 상황에서 공화당은 복지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계속 오바마 정부를 압박해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유사한 길을 걸었다. 부자 감세와 4대강 사업으로 재정적자를 만들어내더니 정권 말기에 부쩍 재정건전성을 내세우면서 정부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그러니 함부로 복지지출을 늘리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기는 재정을 실컷 원하는 곳에 퍼붓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균형재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다니 과연 MB다운 염치없음이라고나 해야 할까?


최근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재원 문제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및 교육청, 여당과 야당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대통령 공약사업인 무상보육사업 예산편성을 종용하고 있고, 여러 지방교육청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예산편성을 거부하고 있다. 지방교육청의 예산부족 사태는 상당부분 이명박 정부의 감세로 인한 지방교부금 감소, 그리고 작년에 취해진 취득세 폐지 등 감세정책으로 지방정부 재정이 심한 압박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지방교육청에 대한 예산배정도 감축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앙정부는 지방교육청에게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해서 무상보육에 사용하라고 압박을 하고 있어, “형 밥그릇 빼앗아 동생 먹이라”는 정책이라는 힐난을 듣고 있다. 애초에 잘못된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를 초래해놓고 이를 기화로 복지정책을 압박하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감세정책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유효수요 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되어 있을 때 감세를 통해 가처분소득을 늘림으로써 경기부양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정부지출 확대가 감세에 비해 부양효과가 더 크지만 이미 정부지출을 충분히 하고 있어서 효율적인 지출확대 방안이 없을 경우에는 감세가 올바른 정책이다. 하지만 일부 보수정권은 복지를 축소하고 ‘작은 정부’를 실현하기 위한 꼼수로 감세를 추진했다. 처음부터 복지를 축소할 예정이니까 세금도 덜 걷겠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이에 관한 민주적 토론을 한다면 문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감세를 해서 경기를 활성화하고 오히려 세수도 늘릴 것이라는 둥 허황된 주장으로 국민을 미혹하면서 세율을 낮춰서 재정적자 문제를 고의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난 후 세금을 싫어하는 국민심리를 활용하여 복지축소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면 올바른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넷째 거짓말: 돈이 없어 복지를 못한다
 

아프리카에 모리셔스라는 나라가 있다. 마다가스카르 동쪽 인도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이 무상이고, 의료도 무상이다. 이 나라가 엄청 부자라서 이런 정책을 시행하는 건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3분의 1 정도다. 아프리카치고는 괜찮은 편이지만 결코 소득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반세기 전 모리셔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미드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하면서 정책조언을 했었다. 그런데 모리셔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룩해냈다. 


반면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인 미국은 대학 등록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다. 더군다나 영화 <식코>를 통해 많이 알려졌듯이 의료비가 굉장히 비싸고 많은 국민이 의료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 선진국 중에 전국민 의료보장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극단적으로 자유시장을 신봉한 하이에크조차도 무슨 나라가 이러냐고 불평했을 정도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정책이 의료보험 개혁이다. 공화당의 발목잡기로 상당히 약화되긴 했지만 여론의 지지를 동원하여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화당의 끈질긴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전국민의료보장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모리셔스가 돈이 많아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듯이, 부자나라 미국에 돈이 없어서 대학교육과 의료가 세계 최고로 비싼 것은 아니다. 미국이 전국민 의료보장을 실시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은 보험회사들이 뿌리는 돈의 영향력과 복지 확대에 반대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복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 공약을 비롯해서 각종 복지공약을 줄줄이 축소 수정했다. 재원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공약대로 하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건 근본적으로 틀린 얘기다. 나라에 돈은 넘쳐난다. 정부가 필요한 만큼 걷으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걷으면 그 돈이 어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기초연금과 같은 이전지출에 쓰일 경우, 그 돈은 고스란히 국민의 호주머니로 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나가는 호주머니와 들어오는 호주머니가 다르다. 바로 그것이 복지고 재분배다.


물론 세금을 아무 제한 없이 마구 걷어서는 안 된다. 세금 때문에 경제적 유인이 왜곡되어 비효율이 발생할 수도 있고, 정부가 민간보다 더 유용하게 돈을 쓸 것인가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정부가 과연 우리에게 걷어간 세금을 정말 효율적으로 잘 쓰는지 의구심이 많다. 비근한 예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가 얼마나 황당한 세금낭비를 초래했던가?
하지만 국민 호주머니로 돈이 다시 돌아오는 복지지출은 다르다. 행정적인 낭비의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혜자에게 돈이 가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고 해도 재분배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할수록 식구들의 소득을 모아서 아껴 쓰고 나눠 쓴다. 복지라고 해서 한없이 해도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나친 복지 또한 경제적 유인을 왜곡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복지수준이 너무 저급하고 지체되어 복지 확대가 시급하다. 이것이 국민적 합의다. 누구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앞장섰었다. 이제 와서 돈이 없어 복지를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섯째 거짓말: ‘복지병’과 재정파탄
 

과거에 남미에 경제위기가 오면 언론을 비롯해서 보수진영에서는 이게 다 성장에 힘을 쓰기보다 복지에 돈을 낭비한 결과라는 식으로 평하곤 했다. 근래에는 남부유럽의 위기에 대해서도 같은 투다. 일례로 남부유럽 위기가 발발했을 당시 <한국경제>는 “유럽의 재정위기는 과잉 복지, 분수에 넘치는 과소비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전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에서 “유럽은 과도한 복지로 '복지병'을 유발, 근로의욕을 떨어뜨렸고 국민들을 나태하게 만들었고 그 나태는 필연적으로 부패를 불러왔다"며 그리스와 스페인 등이 과잉복지로 재정파탄을 맞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홍원 총리는 대국민 담화에서 “과다한 복지로 재정이 피폐해진 유럽 일부 국가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  


레이건이 복지여왕이라는 허구로 부자감세를 정당화한 것처럼 김무성 씨를 비롯한 많은 보수논객과 정치인들은 복지병이라는 허구로 복지국가 프로그램을 공격한다. 하지만 복지병 때문에 유럽 사람들이 나태하고 부패했다는 얘기는 적어도 한국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유럽 선진국들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부패지수는 훨씬 높으니까 말이다. 복지지출을 가장 많이 하는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노동생산성도 투명성도 세계 최고수준이다.


과도한 복지가 근로의욕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얼핏 생각해도 그럴듯하다. ‘과도한’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사회주의 하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복지가 ‘과도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복지수준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도 복지병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복지지출이 이에 비해 1/3 정도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가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사실 복지병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 창작물이고 대다수 복지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린더트(Peter H. Lindert)는 <공공부문의 성장>에서 “복지의 비용은 제로”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실제 복지국가들은 근로유인을 왜곡하지 않도록 복지제도를 설계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3)  게다가 복지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복지지출은 건강과 교육수준 및 직업훈련의 향상 등 인적자본의 질을 높여서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고, 삶이 안정됨에 따라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가 완화되고 구조조정도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내수를 진작하여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도 있다.


복지병의 또 다른 발현은 재정적자 혹은 재정파탄이다. 정치인들의 인기영합주의 때문에 당장엔 달콤하게 복지를 즐기면서도 이를 위한 비용부담은 회피함으로써 재정적자를 누적시키고 재정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재정적자는 복지수준과는 무관하다. 그리스나 스페인 등 근래에 재정위기를 겪은 나라들이 복지지출이 특별히 높은 나라가 아니다. 유럽평균수준에 불과하다. 스페인의 경우에는 재정이 매우 건전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은행부실이 발생했고 그것을 정부가 떠안아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복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재정위기다. 그리스의 문제는 복지지출을 늘리면서 그에 상응하여 세수를 늘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복지지출이 많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세금을 걷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실제로 복지지출 수준과 재정상태에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과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복지가 가장 부실한 편이지만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다. 반면 스웨덴, 덴마크 등 북구의 복지선진국들은 하나같이 재정이 건실하다.


이상에서 복지의 수준이 높아지면 ‘복지병’이 발생하고 재정파탄이 초래된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허구로 만드는 것은 복지제도 설계를 효율적으로 한다는 것과 복지지출에 대한 충분한 재원마련이다. 만약 제도설계가 엉망이고 재원마련이 안 되면 ‘복지병’도 재정파탄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리스가 바로 이에 해당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은 우려를 자아낸다. ‘보편적 복지’를 획일적 복지로 오해해서 효율적 제도설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부분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재원마련 없는 복지확대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공히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이야말로 복지 포퓰리즘과 재정파탄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 허황된 공약은 물론 지킬 수 없는 것이었는데, 박근혜 정부는 증세를 회피하고 복지공약의 축소를 택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보수언론의 주문을 따른 것이다.4) 
 (경제에세이5에서 2부 계속됩니다)   

 

1) <중앙일보> 2013년 8월 15일자, [사설] 증세 논쟁 앞서 복지 예산 누수부터 막아라. <동아일보> 2013년 8월 15일자, [사설] 세금 올리기 전에 줄줄 새는 복지예산부터 막아라, <조선일보> 2013년 8월 15일자, [사설] 수천억원 들더라도 당장 '福祉 파이프' 漏水 막아라.

2) <한국경제> 2010년 11월 26일 기사입력, [Cover story] 과잉복지 • 정부실패가 경제위기 초래. <머니투데이> 2014년 10월 30일 기사입력, [전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 <조선닷컴> 2014년 11월 6일 기사입력, [전문] 정홍원 총리의 공무원연금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문.
 

3) Peter H. Lindert, Growing Public: Volume 1, The Story: Social Spending and Economic Growth since the Eighteenth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4) “보수언론은 단 이틀을 참지 못했다. 선거가 치러진 지 하루가 지나고 21일 아침부터 보수언론은 일제히 이구동성으로 박 당선자에게 공약은 잊어버리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공약의 재앙도 걱정해야", 조선일보 칼럼은 "반값세상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앙일보 세상읽기는 "장밋빛 공약은 싹 잊어라"고 충고하고 나선 것이다. 한마디로 공약폐기 주문이었다.” 유종일, “보수언론은 왜 이틀을 못 참았나?”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2. 12. 27.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2014.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