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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의 경제에세이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유종일의 경제에세이입니다.


[5]재정에 관한 열 가지 거짓말과 두 가지 진실(2부)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3-03 10:15:07
  • 조회수 : 2345

경제에세이 4에 이어 재정에 관한 쟁점들을 짚어본다. 원래 아홉 가지 거짓말과 한 가지 진실을 다루려고 계획했으나, 쓰다 보니 거짓말과 진실을 하나씩 추가하게 되었다. 이 편에서 아홉째 거짓말까지 다루고 다음 편에서 마지막 거짓말과 두 개의 진실, 그리고 맺음말을 추가한다.

 


여섯째 거짓말: 워렌 버핏과 누진세의 허구 

 

투자의 귀재이며 세계 최고 갑부 중의 하나인 워렌 버핏은 사회적 책임감이 강한 편이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하고 부자감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특히 2011년 8월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연방정부에 내는 세금을 소득으로 나누어 본 결과 자신의 여비서를 포함한 직원들 어는 누구보다도 낮은 세율로 세금을 내고 있다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의 소득은 대부분 투자로 얻은 소득으로서 일반적인 소득세율이 아닌 자본이득세율 15%를 적용 받기 때문이다. 버핏은 부시 대통령의 부자감세가 이런 황당한 일을 초래했다면서 부자증세를 주장했다.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여론을 등에 업고 연 소득 백만 달러 이상을 올리는 경우 실효세율이 최소한 30%가 되도록 하는 소위 ‘버핏세’를 도입하고자 했으나, 공화당의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다. 

 

흔히 미국에는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처럼 기부도 많이 하고 부자감세에 반대하는 부자들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양식 있는 부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수다. 부자들을 대변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이나 공화당이 얼마나 부자감세에 앞장서고 얼마나 부자증세에 반대하는지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소득과 부가 점점 더 극소수에게 집중되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뿌려가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그 결과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상속세 폐지, 자본소득세율 인하 등 최상위 소득계층을 위한 막대한 감세가 이루어졌다. 

 

경제학 교과서는 현대국가의 조세에 있어서 기본 원리의 하나로서 누진세를 언급한다. 소득이 높을수록 세율이 높게 책정하여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소득재분배에 기여하도록 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세나 상속세 등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누진세의 형태를 취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세 세율을 보면, 과세표준 소득 1,200만원 이하에 대하여 6%에서 시작하여 1억5천만원 이상에 대하여 38%까지 상당히 누진적인 체계로 되어있다. 그러나 소득 대비 실제로 내는 세금 총액을 따져서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보면 소득계층간 조세부담률의 차이는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소득자일수록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를 활용한 조세회피에 능하고 또한 역진적인 성격이 있는 부가가치세나 여타 소비세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니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유사하다. 따라서 조세에 의한 소득재분배는 미미한 편이며 지출수준이 재분배의 정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전반적으로 현대국가의 조세는 약하게 누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버핏이나 게이츠 같은 극상위계층에게는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 소득계층의 최상위로 갈수록 기업과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로부터 얻는 자본소득이 중요한데,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가 점점 더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유층의 로비에 의한 최고세율 인하뿐만 아니라 조세경쟁에 따른 법인세 등 자본과세의 인하가 일어났다. 세계화에 따른 자본이동성의 증대로 조세경쟁이 벌어진 탓이다. 자본과세의 인하로 인해 모자라는 세수는 결국 노동소득에 대한 과세의 증가로 메워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도 마찬가지라고 피케티는 <21세기자본>에서 말하고 있다. 

누진세는 소득재분배를 통하여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실시하는 것인데, 누진세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두 가지 흐름이 근래에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최상위 계층으로 소득이 집중되는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최상위 계층에 대하여 세 부담이 현저히 낮아지는 조세제도의 역진적 변화다. 그 결과 누진세제라는 개념은 점차 현실의 세계에서 환상의 세계로 밀려나고 있다. 

 

 

일곱째 거짓말: 세율과 경제성장


재분배나 복지 등 공공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적자재정을 편성하든지 아니면 증세를 해야 한다. 적자재정은 지속될 수 없는 것이므로 언젠가 증세는 불가피하다. 그런데 증세는 보통 인기가 없는 정책이며 특히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파들은 적극 반대한다. 증세에 반대하는 논리로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이 경제성장 문제다. 세금이 올라가면 경제활동을 위축시켜서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며칠 전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지금 만약 증세를 하면 회복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부자증세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최근 피케티의 부자증세 제안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이 뜨거운데, 한결같이 증세는 투자위축과 성장률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1)

  

이런 상투적인 주장은 얼핏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득세와 상속세의 최고세율이 90%를 넘나드는 등 세율이 매우 높았던 전후 황금시대(1950~73)에 성장률이 전무후무하게 높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율과 성장률에 관한 보다 엄밀한 실증적 연구들도 대부분 세율인상이나 인하가 성장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2)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기업들의 투자유인과 투자여력을 높여주어 성장률을 올려보겠다는 취지에서 법인세 인하를 거듭해서 단행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성과는 금년 봄에 IMF가 발표한 “재분배, 불평등, 그리고 성장”이라는 연구논문이다.3)  이 논문은 기존의 관련 연구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153개국에 대하여 재분배 이전의 시장소득 분배와 이후의 가처분소득 분배를 측정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초로 계량경제학적 분석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재분배 이후의 순불평등이 낮을수록 성장률이 높고 성장의 지속기간이 길며, 재분배 자체는 성장에 악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불평등이 높으면 성장에 해롭다는 것은 최근 연구의 대세인데, 그렇다고 재분배가 바로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재분배를 위해서 세금을 걷고 복지지출을 하는 것이 유인을 왜곡하고 성장을 저해함으로써 불평등 감소의 긍정적 효과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연구는 극단적이지만 않으면 재분배가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며, 따라서 재분배로 인한 불평등 감소는 고스란히 성장률을 제고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세율이 성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증세가 효과적인 재분배로 이어져서 불평등을 감소시킨다면 오히려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덟째 거짓말: 팽창적 긴축과 하버드 교수들의 망신 

 

 

정부가 긴축을 하면 총수요가 줄어들고, 정부가 재정팽창을 하면 총수요도 늘어난다는 것은 상식이기도 하고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표준적인 이론이기도 하다. 특히 민간 수요의 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되었을 때는 정부가 국채발행을 통해 과잉저축을 흡수하고 재정지출을 통해 수요를 팽창시키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처방이다. 이는 케인즈 경제이론의 핵심이며,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2010년 유럽과 미국에서는 정말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재정적자와 과도한 정부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정부가 과감하게 긴축정책을 실시하면 시장의 신뢰가 높아져서 정부수요 축소의 직접적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 민간수요의 증가가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경기가 팽창한다는 “팽창적 긴축(expansionary austerity)” 이론이 득세하였다.  

 

특히 하버드 대학의 라인하트와 로고프 교수가 발표한 ‘부채 시대의 성장’이라는 논문은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4)  이 논문은 2차 대전 이후 선진국의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90% 이하일 때는 성장률이 3~4%대로 비슷하지만, 90% 문턱을 넘으면 -0.1%로 뚝 떨어진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정부부채가 급등하여 긴축을 외치는 보수적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높았고, 그리스 위기의 발발로 과도한 정부부채의 위험성이 부각되던 시점이었다. 경기불황을 심화시킨 2010년의 긴축정책은 이 논문에 의해 크게 탄력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관련 논문들은 부채비율이 90%가 넘을 때 성장률이 급락한다는 결과를 찾지 못했다. 저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한 데이터를 적시에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의심을 자아냈고, 2013년에 마침내 데이터를 얻은 매사추세츠주립대학의 폴린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원래 논문의 치명적인 실수들을 찾아냈다. 가장 황당한 것은 엑셀의 코딩 실수로 평균을 계산할 때 5개국이 누락된 것이었다. 실수들을 모두 교정하고 계산하니 부채비율이 90% 이상일 때의 평균성장률이 2.2%였다. 이 내용이 발표되자 언론은 큰 관심을 보였고 저명한 하버드의 교수들은 일대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긴축정책이 초래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보상할 길은 없었다. 

 

재정건전성은 중장기적으로 유지해야 할 목표이지 결코 매년 매순간 지켜야 하는 원칙이 아니다. 특히 수요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되어 있을 때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긴축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스다. 2009년 10월 정권을 탈환한 사회당 정부는 이전 보수당정부가 회계장부를 조작하였으며 실제 정부부채와 재정적자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2010년의 유럽재정위기가 시작되었다. IMF와 유럽중앙은행 등은 그리스에 구제금융의 대가로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했고, 그리스 정부는 지출삭감과 조세인상으로 무려 GDP의 15%에 달하는 긴축을 감행했다. 그 결과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18%로 곤두박질 쳤고, GDP 대비 정부부채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일찍이 미국에서 대공황이 발생한 후 후버 정부가 경기침체로 세수가 줄어드는데 재정건전성을 유지한다고 지출을 줄임으로써 경기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과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위기를 맞은 그리스나 다른 남부유럽 국가들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2008년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연이은 “대침체(Great Recession)” 탓에 재정이 악화되었던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그리스 위기 이후 긴축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러한 긴축은 대침체 이후 경기회복이 역사상 가장 느리고 완만하게 진행되어온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폴 크루그만은 <지금 당장 공황을 끝내자>라는 책에서 대공황 때는 몰라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알면서도 왜 긴축을 하느냐고 따져 물으며 재정확대를 주장한 바 있다. 5) 

 

“팽창적 긴축”이라는 해괴망측한 이론은 긴축을 실시한 모든 나라들이, 또한 긴축의규모에 정확하게 비례하여 경기후퇴를 겪었다는 사실에 의해 완벽하게 무너졌다. 이 이론을 지지했던 국제통화기금(IMF)도 나중에는 반성문을 썼다.6) 처음에는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팽창적 긴축” 이론이 득세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경우 재정적자에 대한 반대는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와는 관계없이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다. 경제에서 정부의 공적 역할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 사적 이윤창출의 기회를 최대화하며 그 여건을 최적화하고자 정부의 긴축을 옹호하는 것이다. 빚쟁이 정부더러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는 것은 채권자와 자산가에게는 유리한 것이지만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정체하여 고통 받는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한 것이다. 일찍이 케인즈와 동시대에 독립적으로 유효수요 이론을 개발한 칼레츠키는 완전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에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완전고용의 유지가 가능하지만 자본가와 금리생활자 등이 이런 정책을 반대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던 것이다. 7) 

 

 

아홉째 거짓말: 리카도 대등정리와 루카스의 착각 

 

리카도 대등정리(Ricardian equivalence theorem)라는 게 있다. 정부지출 수준이 일정할 때, 정부가 재원조달 방법을 변화시키는 것은 민간의 경제활동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이론이다. 세금을 삭감하고 대신 국채를 발행해서 정부지출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흔히 사용하는 경기부양 정책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그런 정책은 경기부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언젠가는 늘어난 부채를 갚기 위하여 세금을 올려야 할 텐데, 이를 예상한 사람들이 감세로 현재 소득이 늘어난 만큼 저축을 늘려 미래의 증세에 대비하기 때문에 민간소비지출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19세기 초에 번득이는 통찰력의 소유자 리카도(David Ricardo)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현명한 그는 이런 논리가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논리는 리카도와 같은 통찰력이나 현명함을 갖추지 못한 배로(Robert Barro)에 의해 현대경제학에서 부활되었고, 케인즈의 주장과는 달리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경기조절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자리잡았다.8)  

 

리카도 대등정리는 케인즈에 반대하고 정부의 경제개입을 백안시하는 시카고학파 시장만능주의자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았다. 이들은 신이 나서 이 이론을 주장했지만 실제 데이터를 이용해서 경험적으로 입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레이건의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가 불어난 시기에 민간저축이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든 사실을 비롯해서, 일반적으로 경험적 데이터가 이 이론에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카도 대등정리는 온갖 비현실적 가정 하에서 성립되는 논리적인 말장난일 뿐 실제 경제의 작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실제 데이터가 이론과 부합할 리 없었다.9) 하지만 데이터가 협조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구슬리기도 하고 고문도 해서 이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은 경제학에서 상투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어서 리카도 대등정리와 같은 비현실적인 이론도 쉽게 폐기되지는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에 나서자, 이에 반대하는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리카도 대등정리를 애용했다. 그런데 정치적 동기가 앞서다 보니 그랬는지 이 과정에서 저명한 학자들이 망신스러운 논리적 오류를 범한 적도 많았다. 대등정리는 현실성이 결여되었지만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이를 바탕으로 재정정책을 반대하다 보니 논리적 오류까지 포함한 과도한 주장들을 해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카고 학파의 리더인 루카스(Robert Lucas)가 2009년 3월 뉴욕의 외교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서 행한 연설을 들 수 있다. 그는 정부가 다리를 지으면서 화폐증발로 자금을 조달하면 이는 통화팽창정책일 뿐이고, 세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돈을 납세자에게 걷어서 다리공사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옮겨준 것일 따름이니 수요진작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세금을 걷지 않고 국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한다고 해도 리카도의 대등정리에 의해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루카스는 재정정책이란 게 이렇게 쓸모 없는 것인데 멍청한 케인즈주의자들이나 정부지출 확대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경기를 부양한답시고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런데 루카스의 주장은 착각과 오류 그 자체였다. 경기부양을 위해 새로 다리를 건설 하는데, 그 비용 천만 달러를 국채발행으로 조달했다고 하자. 이 때 리카도 대등정리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미래의 조세증가를 합리적으로 예측하여 생애소득에 대한 기대치가 천만 달러 줄어든다고 하자. 그러면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예를 들어 매년 백만 달러 정도만 줄여도 충분한 조정이 될 것이다. 당장 천만 달러만큼 소비를 줄일 필요는 전혀 없다. 정부지출로 수요는 당장 천만 달러 증가하지만 납세자들의 저축 증가로 인한 소비수요 감소는 기껏해야 백만 달러에 불과할 것이기에 총수요는 늘어난다. 루카스가 범한 근본적인 오류는 리카도의 대등정리가 전제하는 정부지출 수준이 일정하다는 가정을 간과한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다리를 건설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지출증가지 영원한 지출증가가 아니다. 정부가 앞으로 매년 천만 달러씩 지출을 늘린다면 이에 대비하는 합리적 소비자는 매년 천만 달러만큼 소비지출을 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기침체기에 경기부양을 위한 일시적인 지출증가에 대응해서 동일한 양의 소비수요 감소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루카스는 ‘합리적 기대 가설’을 제기하여 거시경제학에서 반케인즈혁명을 주도한 경제학계의 거장이고 노벨상 수상자다. 그가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다. 진실을 덮어버리는 이데올로기의 힘은 막강하다. 루카스의 시카고 대학 동료이자 역시 노벨상 수상자인 파마(Eugene Fama)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버블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여 비웃음을 샀는데, 위기 이후에도 버블은 전혀 없었고 금융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했다고 강변하여 듣는 이들의 귀를 의심케 하였다.10)  마찬가지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아무리 수많은 경험적 데이터와 사례가 재정정책의 효력을 입증하더라도 재정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결코 바꾸지 않는다.11)

 

 

1) 지난 9월에는 한국경제연구원과 아시아금융학회가 ‘피케티 <21세기 자본론>과 한국 경제’란 주제로 공동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위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2) 일례로 Piketty, Thomas, Emmanuel Saez, and Stefanie Stantcheva (2011), "Optimal Taxation of Top Labor Incomes: A Tale of Three Elasticities", CEPR Discussion Paper 8675, December..
   

3) Jonathan D. Ostry, Andrew Berg, Charalambos G. Tsangarides,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 SDN/14/02, IMF, 2014.
   

4) Carmen Rheinhart and Kenneth S. Rogoff, "Growth in a Time of Debt,"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100 No. 2, May 2010, 573-578. 논문 발표 당시에는 라인하트는 메릴랜드대 소속이었다.
   

5) Paul Krugman, , Norton, 2012). 필자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IMF가 긴축재정을 강요한 것을 비판한 한겨레신문 칼럼 <재정건전성의 신화>에서 동일한 논지를 펼친 바 있다.
 
 

6) Independent Evaluation Office of the IMF, IMF Response to the Financial and Economic Crisis, 2014.
 
 

7) 유종일, “경기부양의 정치경제학,”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경제에세이 3, 2014.
 
  

8) Robert J. Barro, “Are Government Bonds Net Wealth?,"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82 (6): 1095–1117, 1974.
 
 

9) 대등정리가 성립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형성하고, 정부지출 수준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인구도 일정해야 하며, 자본시장이 완전해서 저축과 차입이 자유롭고 저축 이자율과 차입 이자율이 동일해야 한다. 한결같이 지극히 비현실적인 가정들이다.
 
 

10) John Cassidy, “Interview with Eugene Fama,” New Yorker, 2010. 1. 13.
 
 

11) 최근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며 종합부동산세 폐지, 법인세 감면 등 감세정책을 밀어붙였던 강만수 전 장관이 비망록을 냈다(강만수,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 삼성경제연구소, 2015). 여기서 그는 자신의 감세정책이 부자감세로 ‘매도’된 것에 분개하면서, 세율의 인하가 세수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래퍼곡선 이론을 또다시 주장하고 있다. 이미 자신의 감세정책으로 인하여 세수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재정압박이 심화된 것이 다 드러났는데도 이런 견강부회를 계속한다.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2015. 3. 2